HD현대그룹의 모태 기업인 HD현대중공업이 방산 사업 위상 알리기에 나섰다.
그런데 대상이 회사와 그룹 임직원이다. HD현대중공업인 최근 발간한 사보에서 머릿기사로 ‘수상함 명가, HD현대중공업’이라는 주제로 기획가사를 실었다. 사보에 방산관련 내용이 수록되는 경우는 많았지만, 이렇게 첫 기사로 방산 내용을 실은 것은 이례적이다.
사보는 최근 카를로스 델 토르 미 해군성 장관의 울산 HD현대조선소 방문을 계기로 미 해군이 추진중인 아시아태평양 함대 증강 및 MRO(유지‧보수‧정비) 사업 참여 가능성을 언급하고, 페루 해군 함정 수주 등 외국 해군 함정 건조 사업 등 사업의 우수성을 강조했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 1987년 뉴질랜드에 8400t급 군수지원함 인도를 시작으로, 2022년에는 필리핀으로부터 수출용으로 개발한 2200t급 원해경비함 6척과 페루의 호위함, 원해경비함, 상륙함 등 4척까지 총 18척의 해외 함정을 수주했다.
이번 기사가 특히 주목받는 것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회장의 특집 기획이 나간 직후에 방산을 소개했다는 점이다.
정주영 창업회장은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첫 국산 구축함인 ‘울산함’을 건조하는 등 각종 함정을 건조해 대한미국 해군의 선진화에 이바지했다. 이러한 역사를 되새기는 차원에서 기획이 마련된 것이 아니냐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반대로, HD현대중공업의 조급함이 묻어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HD현재중공업은 그동안 방산 부문을 크게 부각시키지 않았디. 상선 건조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만큼 상대방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는 군대 무기, 즉 함정사업은 선주에게 곱지 않은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이 한화그룹에 인수되어 한화오션으로 새출발하면서 상황이 뒤바뀌었다. 한화오션은 방산을 핵심사업으로 키우려는 한화그룹의 선도기업으로 앞세워 HD현대중공업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한화오션은 사명을 바꾼 뒤 HD현대중공업과의 첫 수주 경쟁이었던 대한민국 차세대 이지스 구축함인 울산급 배치-3(KDX-III) 5, 6번함 건조 사업을 수주하며 기선을 제압했다. HD현대중공업은 기술적인 면에서는 높은 점수를 받았음에도 실패했는데, 지난 2012~2015년 한화오션의 전신인 대우조선해양의 군사기밀을 HD현대중공업 직원 9인의 탐지 수집 및 누설해 유죄판결을 받아 도덕성 문제로 감점을 받은 때문이다.
이 문제는 한화오션의 경찰 고발로 여전히 수사가 진행중이다. 방위사업청은 최근 해군을 위한 총 8조원 규모의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건조사업 입찰을 개시했다. 6척을 건조할 예정인 KDDX 사업은 향후 해군의 함정 습득계획 중 가장 큰 규모가 될 예정이라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모두 놓쳐선 안될 사업이다. 더군다나 KDDX는 미국의 기술 지원없이 순수 국내기술로 만든 ‘한국형 이지스 시스템’이 적용되는 최초의 함정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만큼 국산화율이 높다는 것인데, 첫 한국형 이지스 함정을 건조한다는 의미와 함께 배수량 6500t급의 미니 이지스함이라 함정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그만큼 해외 시장 개척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지난해 창사이래 처음으로 산업 담당 취재진에게 울산조선소 특수선 건조 조선소를 공개하고, 2030년까지 특수선사업 부문의 연간 평균 매출 규모를 2조원대로 맞춰 독립성을 높이겠다는 중기 계획을 발표하는 등 방산사업 육성에 힘쓰고 있는 HD현대중공업은 정작 회사와 그룹 임직원들은 사업에 대한 관심이 적고, 불법 행위에 따른 불만 심리가 크다, 일반 국민도 한화오션의 공세에 밀리고 있다는 인식이 크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한 방안을 놓고 HD현대그룹 차원의 고민이 크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