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게임쇼 2023을 한 마디로 정리한다면 '확장'이었다. 단순히 참가사 수, 전시장 규모 모두 예년 대비 커졌다는 것을 넘어 일본 게임업계 전체가 콘솔 게임 시장이란 '안방'을 넘어 PC·모바일 등 타 플랫폼 시장 공략을 본격화했다는 의미다.
올해 도쿄 게임쇼에서 가장 눈에 띈 변화는 기조 연설자였다. 세계적인 PC 게임 유통망 스팀의 에릭 피터슨 마케팅·비즈니스 개발 디렉터, 피에르-루 그리파 개발자가 주요 연설자로 나섰다. 여기에 캡콤 미국 지사의 윌리엄 야기-베이컨, 기조 연설의 단골 손님인 하라다 가츠히로 반다이 남코 '철권' 총괄 디렉터가 함께했다.
이들은 "지난 5년에 걸쳐 일본 스팀 이용자가 수백만명에 이를 정도로 급성장했다", "스팀 상위 게임 중 20%는 일본 게임이 원작"이라며 일본 PC 시장의 성장세를 강조했다.
그간 도쿄 게임쇼의 기조 연설자는 일본 게임업계 베테랑, 콘솔 게임 개발자들이 중심이 됐다. 지난해에는 아리 스테이먼 로블록스 중국 지사 사장이 함께하긴 했으나 핵심 연사라기보단 당시 핵심 화두였던 '메타버스'의 대표주자로서 함께한 것에 가까웠다.
현장 전시에서도 '탈 콘솔', '플랫폼 다각화'에 대한 의도가 엿보였다. 2017년 '철권 7'을 스팀에 출시함으로서 글로벌 시장에서 톡톡이 재미를 본 반다이 남코는 부스의 메인으로 내년 1월 출시를 앞둔 '철권 8'을 내세웠다. 올해 정식 서비스를 개시한 오리지널 IP 기반 PC MMORPG '블루 프로토콜'은 덤이었다.
캡콤 역시 행사 개최 직전인 14일, 나이언틱과 공동 개발해 출시한 모바일 AR(증강현실) 게임 '몬스터 헌터 나우'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내년 3월 '몬스터 헌터' 20주년을 앞두고 연 쇼케이스에서도 "오는 12월 몬스터 헌터 나우의 대규모 업데이트를 기대해달라"고 발표했다.
코에이 테크모에선 행사 3일차인 23일, 자사 간판 '아틀리에' 시리즈의 최신작 '레슬레리아나의 아틀리에: 잊혀진 연금술과 극야의 해방자'의 정식 서비스를 개시했다. 콘솔 게임인 원작 IP와 달리 이 게임은 사상 처음으로 모바일 수집형 RPG로 출시된다.
지난 몇 해 동안 대형 게임 전시 행사에선 '중국 게임의 약진'이 이어졌으며, 이는 도쿄 게임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원신'과 '붕괴'의 호요버스, '제5인격'과 '해리포터: 깨어난 마법'의 넷이즈, '퍼니싱: 그레이 레이븐'의 쿠로 게임즈, '명일방주'의 하이퍼그리프까지 중량감 있는 업체들이 대거 전시에 나섰다.
특히 행사 첫 날인 21일 넷이즈가 공개한 '러스티 래빗'은 어떤 새로운 소식보다도 놀랄만한 '깜짝 발표'란 평을 받았다. 치명적 뇌손상을 입고 인지 감각이 뒤틀려버린 소년의 파격적 사랑을 그린 '사야의 노래', 사이버펑크 세계관 속 금단의 사랑을 다룬 '귀곡가' 등 실험적인 비주얼 노벨들을 선보여온 니트로 플러스, 우로부치 겐 작가가 참여했기 때문이다.
시연 부스 또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호요버스의 '젠레스 존 제로', 쿠로 게임즈의 '명조: 워더링 웨이브', 하이퍼그리프의 '팝유컴' 모두 시연을 원하는 관람객들의 줄이 길게 늘어설 정도로 큰 관심을 받았다.
중국 업체들은 그간 일본 게임사에 적지 않은 돈을 투자해왔다. 넷이즈는 이미 2021년, 세가 '용과 같이' 시리즈를 총괄하던 나고시 토시히로를 영입했다. 이번 행사에는 참여하지 않았으나, 텐센트는 올 7월, '클라나드', '리틀 버스터즈' 등 오랜 기간 서브컬처 팬들의 사랑받은 IP를 다수 보유한 비주얼 아츠를 인수했다.
현장에서 만난 업계 관계자는 "중국 게임들이 예전 같지 않고, 더 이상 얕볼 수 없다는 지적도 이젠 옛 말"이라며 "아시아 게임계에서 명백히 중요한 요소로 자라났으며, 이들로부터 원천 IP를 지켜내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고 평했다.
이원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wony92k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