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서 389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해외 유명 크리에이터가 단 한 푼의 광고비도 받지 않고 40분 길이의 영상을 통해 게임을 리뷰했다. 대형 게임사에겐 별 것 아닌 성과일 수 있지만 한국에서 단 3명의 젊은 개발자들이 내놓은 게임이라면 더없이 놀라운 성과다.
크래프톤 산하 독립 스튜디오 오민랩(5minlab)이 지난달 21일 스팀에 출시한 '킬 더 크로우즈'는 바로 이러한 성과를 거둔 게임이다. 이 게임은 서부시대를 배경으로 한 리볼버 슈팅 액션물로, 2D 도트 그래픽을 독특한 감성으로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킬 더 크로우즈' 스팀 공식 페이지에는 7일 기준 총 389명의 리뷰어가 평가를 남겼으며 이 중 96%가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수치 자체는 적지만, 영미권, 심지어 스페인어권 이용자들까지 호평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기록이다.
게임의 총괄 엄태윤 오민랩 프로듀서(PD)는 '킬 더 크로우즈'가 커리어 상 처음으로 선보이는 데뷔작이다. 그는 "2D 픽셀 그래픽으로 구현된 서부극, 리볼버 한 자루를 들고 복수에 나선 여장부라는 '로망'을 담은 것이 바로 킬 더 크로우즈"라고 밝혔다.
킬 더 크로우즈가 거둬온 성과에 대해 엄태윤 PD는 "시장에서 이렇게 좋은 반응이 나오리라곤 예상치 못했고, 당연히 업데이트 등 사후 지원도 명확히 고려하진 않던 상황이었다"고 발언했다.
그는 또 "영미권이나 국내 외에도 튀르키예, 브라질, 멕시코 등에서도 이용자 지표가 유의미하게 발생해 놀라웠다"며 "오민랩 안에서도 실제로 게임을 플레이해 후 업데이트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엄태윤 PD는 서부극에 푹 빠진 '웨스턴 덕후'로, 이를 게임에 옮기는 것을 꿈꿔왔다고 밝혔다. 그는 "스티븐 킹의 '다크타워'가 서부극 덕질의 시초점이 된 것 같다"며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장고', 락스타의 게임 '레드 데드 리뎀션' 등 종류를 불문하고 수많은 웨스턴 장르 콘텐츠을 접해왔다"고 말했다.
킬 더 크로우즈는 간편한 게임성을 가진 '캐주얼 게임'인 만큼 총 개발기간은 7개월, 개발 인원은 단 세명이었다. 엄태윤 PD는 "최초 빌드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단 4일 만에 제작했다"며 "박문형 대표님이 빌드 단계 콘텐츠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게임'이라고 호평했고, 그렇게 개발이 시작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엄 PD는 2020년 오민랩에 입사하며 커리어를 시작, 올해로 입사 3주년을 맞았다. 킬 더 크로우즈 개발팀 '리볼버'의 동료인 최윤정 아트 디렉터와 임경우 디렉터는 모두 업계 경력이 크게 차이나지 않는, 소위 '주니어'급 직원들이었다.
엄 PD는 "업계 경력도 비슷하고 또 한 번 쯤은 팀을 총괄해 본 경험이 있는 이들이 모였는데, 갈등보다는 서로의 아이디어를 적절히 평하고 피드백을 주는 분위기가 형성돼 큰 도움이 됐다"며 "상대의 의견에 반대할 때, 무거운 분위기를 풀기 위해 팀 명에 걸맞게 모형 리볼버를 겨누는 장난을 치는 팀 나름의 문화도 있었다"고 언급했다.
일반적인 건 슈팅 게임들이 총알이 다 떨어진 후 자동으로 장전하는 것을 지원하지만 킬 더 크로우즈는 꼼꼼하게 'R'키를 눌러 재장전을 해야 한다. 또 탄창과 기 게이지 등 이용자 인터페이스(UI)가 화면 하단에 낮게 배치돼 직관적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엄태윤 PD는 이렇게 다소 불편할 수 있는 설계들이 철저히 의도된 사항이라고 밝혔다. 그는 "UI나 편의 기능을 최소화해 게임적 정보가 아니라 실제 총잡이들의 살 떨리는 긴장감을 구현하고 싶었다"며 "자동 장전을 추가하지 않은 것 역시 '총알이 다 떨어진 총을 찰칵거릴 때의 긴장감'을 주려는 의도였다"고 설명했다.
게임의 슬로건에 대해 묻자 엄 PD는 "원 샷 원 킬, 조금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보스 몬스터를 구성할 때 '한 방에 죽는 적'이라는 기본 틀은 유지하면서도 보스전에 걸맞은 난이도와 긴장감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고 술회했다.
킬 더 크로우즈의 배경은 '까마귀'를 섬기는 광신도들이 횡행하는 서부세계다. 엄 PD는 "정통 서부극과 달리 초자연적 요소가 개입된 '위어드 웨스턴(Weird Western)' 장르"라며 "기획 초기에는 '매드맥스'와 같은 포스트 아포칼립스와 웨스턴의 결합도 고려했는데, 최종적으로는 광신도 집단을 빌런으로 정하게 됐다"고 언급했다.
본 기자는 지난달 말 이 게임의 리뷰 기사를 통해 탑 다운 도트 그래픽 슈터라는 점에서 '뱀파이어 서바이버'의 영향을 받은 이른바 '뱀서 라이크' 장르의 게임이라 추측했다.
이에 대해 질의하자 엄 PD는 "뱀서 라이크라는 관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사실 직접적인 레퍼런스가 된 게임은 아니었다"며 "실제로는 브라질의 인디 게임 '아카네'나 미국의 인디 게임 '카타나 제로', '엔터 더 건전' 등의 영향을 받았다"고 답했다.
게임에 꼭 추가하고 싶은 콘텐츠가 있냐고 묻자 엄 PD는 "우리 팀은 모두 명확한 스토리, 내러티브가 있는 게임을 좋아하고, 자연히 게임에 있어 완결이 되는 엔드 콘텐츠, 나아가 명확한 엔딩을 만들고 싶다"며 "엔딩의 전개에 대해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멀티엔딩'은 내지 않으려고 한다"고 답했다.
킬 더 크로우즈의 업데이트 방향에 대해 엄태윤 PD는 "게이머들에게 재미를 주려면 우리가 먼저 만족하는 형태로 검증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검증되지 않은 내용을 미리 공개하는 것은 거짓말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며 "지금으로선 검증된 콘텐츠는 준비되지 않았지만, 늦어도 연말 안에 작은 부분이라도 업데이트를 선보이고 싶다"고 전했다.
이원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wony92k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