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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에서 다 만날 거고 예나 지금이나 차이도 없어"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265)] "사랑해. 정말 보고 싶어. 우리 꼭 다시 만나!"

고려대 한성열 명예교수

기사입력 : 2023-07-19 08:15

가상인간을 통해 16년 전 불의의 사고로 순직한 조종사 고 박인철 소령이 어머니와 재회하는 영상이 공개됐다. 사진=국방홍보원이미지 확대보기
가상인간을 통해 16년 전 불의의 사고로 순직한 조종사 고 박인철 소령이 어머니와 재회하는 영상이 공개됐다. 사진=국방홍보원
22년 2개월 동안 총 1088회 방영되면서 역대 TV 드라마 최장수 방영 기록을 남긴 <전원일기>라는 드라마가 최근에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드라마에서 노총각 응삼이 역으로 열연했던 고(故) 박윤배 배우가 올해 구정 연휴에 '가상인간'으로 돌아와 오랫동안 함께했던 동료 배우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고인은 2020년 12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으니 2년여 만에 다시 만난 것이다.

<전원일기> 출연진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고인(故人)이 모니터 화면에 등장하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가상인간'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얼굴과 표정, 입 모양까지 생전 박윤배 씨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재현했기 때문이다. 전혀 뜻밖의 상황에서 죽은 동료의 '가상인간'과 마주한 배우들은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 하지만 곧 실시간으로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동료들은 "왜 거기 앉아있어?", "너랑 술 많이 마셨다"는 등 그와의 추억을 회상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특히 방송 막바지에는 딸이 출연해 아버지를 다시 만난 기쁨과 그리움으로 오열(嗚咽)하기도 했다. 해당 영상은 유튜브에도 공개돼 4일 만에 400만 조회수를 기록해 세간의 놀라움과 감동을 입증했다.

최근에 이와 유사한 만남이 또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이번 화제의 주인공은 2007년 서해안 상공에서 KF-16 요격 훈련 중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공군사관학교 52기 고 박인철 소령이었다. 공사 26기로 F-4 팬텀기 조종사였던 그의 아버지 박명렬 소령도 1984년 3월 팀스피리트 훈련에 참가해 사격 훈련을 하던 중 순직했다. 부자(父子)가 모두 조국의 하늘을 지키는 전투기 조종사로 순직(殉職)했던 것이다. 더구나 가슴 저렸던 사연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공사 52기로 입학해 전투기 조종사가 된 그는 2007년 현충일 부친의 묘비를 찾아 "못다 이룬 창공의 꿈을 대신 이루겠다"고 다짐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50여 일 뒤에 그 역시 순직했다.
그동안 잊혀져 가던 박 부자(父子)의 가슴 시린 순국(殉國)의 사연은 최근에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다. 16년 전 불의의 사고로 순직한 조종사 고(故) 박인철 소령이 전투기 조종사가 되는 것을 반대했던 어머니와 재회하는 영상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이 영상에서도 그는 어머니와 반갑게 재회해서 대화를 나누고, 사관학교 시절부터 친했던 동석한 두 명의 친구와 다정하게 속마음을 주고받으며 대화했다.

일찍 유명 달리한 사랑했던 사람과의 만남은 간절한 소망


상담심리학을 공부하는 필자는 어떤 기술로 이런 놀랄 만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 두 동영상을 보면서 이 기술이 앞으로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많은 생각을 했다. 앞으로 다양한 과학기술이 발전해 또 어떤 생각할 수 없는 결과를 대하게 될지 한편으로 기대되지만 또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하다. 일찍 유명(幽明)을 달리한 사랑했던 사람과의 만남은 아마 살아있는 사람 모두의 소망일 것이다. 그래서 두 에피소드에서 모두 "보고 싶다"라는 절절한 마음의 안부를 묻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먼저 유명(幽明)을 달리한 친근했던 사람을 만나는 상황 자체는 놀라움과 두려움을 준다. 전혀 뜻밖에 고인을 만난 한 동료 배우는 처음에는 믿기지 않는 상황에 처하자 눈을 가리고 "아이, 무서워"라며 얼굴을 돌렸다. 아마 우리 모두 뜻밖에 이미 죽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 거의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 하지만 분위기에 익숙해지자 곧 다양한 질문을 하기도 하고 서로 마음속에 있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비록 두 개의 에피소드에 불과하지만 이 영상들은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질문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경이롭기까지 하다. 분명히 죽었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그리워하고 애석해했던 대상을 마치 살아있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만나서 대화를 할 수 있다니! 이것은 모든 인간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마음이 아닐까? "다시 한번만 만나서 못다 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렇다면 이런 만남에서 제일 궁금하고 분명히 알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두 에피소드에서 공통으로 나오는 주제를 알아보자. 먼저 <전원일기>에서 같이 연기한 배우가 "너 큰일 당했을 때 갔었는데(코로나19 때문에) 문전에서 다시 왔어." 그러자 고 박윤배 배우는 "다 봤어. 알고 있어"라고 대답한다. 또 다른 배우가 "나중에 우리 꼭 만나요"라고 말하자 그는 "다음에는 꼭 같이 밥 먹자"라고 약속한다.

AI 통한 고인과의 조우, 두렵지만 경이로운 경험

이 짧은 대화에는 실로 엄청난 내용이 들어있다. 즉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평소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표현되고 있다. 이들은 박윤배 배우가 이미 죽은 것을 다 알고 있다. 직접 장례식장에 갔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들어가지 못하고 애석하게 발길을 돌렸다고 보고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말에 대해 고인은 "다 봤어. 알고 있어"라고 답한다. 죽은 후에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지내는데 동료가 자신의 장례식에 왔다 간 것을 알고 있을까? 그리고 "다음에는 꼭 같이 밥 먹자"라고 한 약속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다음 대사는 더욱더 놀랍다. 한 여배우가 "뭐가 제일 먹고 싶어?"라고 묻자 "수미 씨가 해준 김치가 아직도 제일 생각나"라고 대답한다. 지금 질문자는 고인(故人)은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다고 여기고 제일 먹고 싶은 음식이 무엇인지 물을 수 있으며, 또 고인은 어떻게 특정 인물이 담근 김치가 먹고 싶다고 대답할 수 있을까? 그 대답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잘 나와 있다. "하늘나라에서도 우리 모두 다 봐?" 그러자 "<전원일기> 재방송 보고 있다"라고 대답한다. 이 대화에 따르면, 질문자는 죽은 후에는 고인이 '하늘나라'에서 살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그러자 고인은 하늘나라에서는 이 세상에서 재방송되는 드라마 프로까지 다 볼 수 있다고 대답한다.

'하늘나라'가 어떤 곳인지는 다음 대화에서 더 뚜렷이 드러난다. "먼저 떠난 거 속상하지 않아?"라는 질문에 "다 만날 거고 이때나 저 때나 별로 차이도 없어요"라고 대답한다. 질문자는 분명 고인이 하늘나라에 있다고 믿으면서 '일찍 죽은 것'에 대한 소감을 묻기까지 한다. 그러자 고인은 언젠가는 그곳에서 다 만날 것이고, 살아있을 때나 하늘나라에 있는 것이나 별 차이가 없다고 덤덤하게 대답한다.

이런 마음은 딸과의 대화에서 더 절실히 드러난다. 딸이 "잘 지내지?"라고 안부를 묻자 고인은 잘 지낸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딸은 "조만간 구정인데 그때 꼭 보러 와…. 하늘나라에서 우리 꼭 지켜봐줘…열심히 잘 살게"라고 부탁한다. 그 딸의 마음에는 하늘나라에 있는 아버지가 구정에는 자신을 보러 다시 올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또 "잘 지내다가 또 보자"는 아버지의 말에 딸은 "아빠, 사랑해"라고 대답하고 아빠도 "그래, 아빠도 사랑한다. 혜미야"라고 애절하게 딸의 이름을 부르며 답한다. 딸은 "잘 지내 아빠, 안녕" 하고 오열하며 대화를 끝낸다. 마치 살아있는 사람들끼리의 애달픈 이별 장면을 보는 것과 같다.

이와 똑같은 대화가 16년 만에 만난 고 박인철 소령과 어머니의 만남에서도 나온다. "인철이는 잘 지내니?"라고 어머니가 묻자 아들은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아버지도 만났어요"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어머니는 죽은 아들이 죽은 남편을 만났다는 사실이 당연하다는 듯이 "그래, 아버지 만나서 어땠어?"라고 묻는다. 어머니의 마음에는 죽은 후에 가는 곳은 어디이고, 또 그곳에서는 23년 전 먼저 죽은 아버지와 아들이 만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질까? "아버지랑 그동안 못 한 이야기 많이 했어요. 저는 아버지 만나서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 아버지가 엄마, 연지 걱정 많이 하세요"라며 다정한 대화가 지속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우리 떨어져 있어도 항상 마음속에 같이 있다고 생각해요. 많이 웃고 행복하게 지내셔야 돼요. 그리고 이건 잊어버리시면 안 돼요. 사랑해요, 엄마"라는 아들의 부탁에 "엄마도 많이 사랑해"라고 답하면서 짧고 아쉬운 해후(邂逅)는 끝난다.

죽은 후의 삶에 대한 궁금증 우리가 가장 듣고 싶은 대답


이 글에서는 내세(來世)의 존재 여부나 현세(現世)와의 관계 등을 다루려고 하지 않는다. 사실 그 주제는 태초부터 인간이 물어온 아주 심오한 종교적인 주제인 동시에 난해한 철학적인 주제다. 현재 또는 과거에 존재했던 모든 종교에서는 예외 없이 거의 다 내세에 대한 나름의 교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현세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역시 나름의 교리를 가지고 있다. 뛰어난 철인(哲人)들 또한 나름의 사생관(死生觀)을 피력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두 개의 에피소드에 나타난 짧은 대화를 가지고 그 교리나 주장의 진위를 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이 두 에피소드에서 드러난 중요한 점은 종교의 유무가 아니다. 그리고 고답적인 논쟁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리나 담론에 물들지 않은 오히려 소박하고 진실한 보통 사람들의 깊은 속마음을 알 수 있다는 점이다. 다만 위 대화를 통해 이승과 저승에 대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막연한 믿음이나 간절한 소망에 대해서는 대략 윤곽을 그릴 수는 있다는 것이다. 지구상에 생존하는 수많은 종(種) 중에 인간만이 자신이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아는 유일한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유명(幽明)을 달리한 인물을 다시 만났을 때 무엇보다 먼저 죽은 후의 삶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죽은 후에 어떻게 되는지, 또 다른 세상이 있다면 그 세상은 어떤 모습인지, 그리고 현세와의 관계는 어떤 것인지에 대해 질문할 것이다. 그리고 사실 여부를 떠나서 듣고 싶은 대답은 그 삶은 '하늘나라'에서 계속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하늘나라에서도 역시 이 땅에서 사는 모습과 유사한 모습으로 살아갈 것이고, 또한 가족을 포함해 그리운 사람들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과학과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도 대부분의 인간이 하는 삶과 죽음에 대한 근원적 질문은 동일(同一)할 것이다. 그리고 듣고 싶은 대답 또한 동일할 것이다. 그 대답은 아주 간결할 것이다. "사랑해. 정말 보고 싶어. 우리 꼭 다시 만나!"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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