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서브컬처 게임들이 연달아 일본 시장에서 성공해 주목을 받고 있다. 매출 성과를 넘어 팬들 사이에 활성화된 2차 창작 문화 등을 통해 장기적인 '게임 한류'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일본 시장 공략에 앞장선 것은 넥슨과 시프트업이다. 지난 2021년 한국보다 먼저 일본에 발을 들인 넥슨의 '블루 아카이브'는 출시 초 애플 앱스토어 매출 한자릿수에 오르며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이달 25일에는 2주년을 앞두고 매출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시프트업의 '승리의 여신: 니케'는 지난해 11월 글로벌 동시 출시 후 일본 애플 앱스토어 매출 1위에 올랐다. 오픈 붐이 꺼진 후에도 여전히 매출 순위 한자릿수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는데, 센서타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일본 시장에서 난 매출이 국내 매출의 6배 수준이다.
두 게임은 소위 '오타쿠'라 불리는 서브컬처 마니아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일례로 일본 최대 일러스트 플랫폼 '픽시브'에선 두 게임 속 캐릭터를 주제로 한 그림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1인 미디어 방송인들이 업체 스폰서십과 무관하게 두 게임을 즐기는 사례도 여럿 발견되고 있다.
출시 2년차를 맞은 블루 아카이브는 팬들의 성원에 힘입어 미디어 믹스까지 이뤄졌다. 이달 22일, 온라인 쇼케이스 '블루아카 라이브!'에선 TV 애니메이션 '블루 아카이브 디 애니메이션(가칭)' 제작이 공식 발표됐다.
국산 게임이 일본 서브컬처 팬덤에서 성과를 거둔 전례는 여럿 있었다. 일례로 넷마블이 일본 IP를 바탕으로 제작한 '일곱 개의 대죄: 그랜드 크로스', '제2의 나라: 크로스 월드' 등이 매출 1위에 오른 바 있다.
중소 게임사 스마트조이의 '라스트 오리진'은 매출 면에선 부진했으나 일본 팬들의 컬트적 인기를 끈 바 있다. 멀리 보면 그라비티의 '라그나로크 온라인'도 2000년대 초 일본 서브컬처 팬들 사이에서 '한국 온라인 게임 붐'을 일으킨 전례가 있다.
블루 아카이브 등이 과거 흥행작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들이 온전히 국산 오리지널 IP라는 점, 팬들의 호응과 매출 성과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김용하 '블루아카이브' 총괄 프로듀서(PD)나 김형태 시프트업 대표가 업계 내 대표적인 '오타쿠'들이라는 점 또한 성공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블루 아카이브는 일본 안에서만 올 상반기 네 차례의 '온리전(특정 IP 관련 2차 창작물만을 교류하는 팬 행사)'이 열리는 등, 확고한 팬층을 다졌다. 게임 속 캐릭터를 넘어 넥슨의 개발자들이나 '청계천', '인왕산' 등 국내 특정 지역까지 유행어로 활용되는 등 다채로운 팬 문화가 형성됐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밈'에 대한 높은 이해도가 낳은 성과"라고 평했다. 밈이란 네티즌들 사이 유행하는 문구, 이미지, 음악, 영상 등을 총칭하는 말이다. 김용하 PD 또한 소셜 미디어에 청계천에서 찍은 사진을 게재하는 등 밈을 활용한 소통에 힘쓰고 있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일본 시장의 성과에 대해 "게임 생태계 다양화 측면에서 상당히 의미가 있다"며 "특히 한국에서 서브컬처 장르가 선정성 등 문제로 규제를 받고 있음을 고려하면 놀라운 일"이라고 평했다.
게임물관리위원회는 지난해 10월, 블루 아카이브의 리소스 일부를 문제 삼아 연령 등급 상향을 권고했다. 현재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블루 아카이브가 청소년 이용 불가 등급으로 서비스되는 나라다.
한국 게임사들은 올해에도 일본 시장을 향한 도전을 이어갈 전망이다. 시프트업의 콘솔 액션 게임 '스텔라 블레이드', 최근 국내 출시된 카카오게임즈 '에버소울' 일본판 등이 올해 출시될 전망이다. 넷마블의 '일곱 개의 대죄: 오리진', 빅게임 스튜디오 '블랙클로버 모바일' 등 일본 IP 기반 신작들도 출시를 앞두고 있다.
국산 서브컬처 게임들의 라이벌은 중국 게임들이 될 전망이다.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원신', '벽람항로', '명일방주' 등은 일본 애플 앱스토어에서도 매출 상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니케의 퍼블리셔는 텐센트 산하 레벨 인피니트, 블루 아카이브의 일본 퍼블리셔는 요스타인 등 중국계 퍼블리셔들이 국산 게임을 맡고 있다는 점 또한 걸림돌 될 수 있다.
위 학회장은 "중국 게임사들이 그만큼 현지 퍼블리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으로, 장기적으로는 국산 게임 성공에 독이 될 수 있다"며 "국산 게임들의 최근 성과가 단지 일부 개발자들의 성과로만 끝나지 않기 위해 개발력을 넘어 퍼블리셔, 현지화 등 다양한 능력을 갖추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원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wony92k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