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사업의 일환으로 버추얼 유튜버 분야에 지속 투자를 하고 있는 소니가 콘텐츠를 넘어 하드웨어 분야까지 공략하기 시작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 등 업계 라이벌들과의 '메타버스 패권 경쟁'에서 앞서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소니는 최근 유튜브를 통해 스마트폰용 주변기기 '모코피(mocopi)'를 공개했다. 모코피는 6개의 센서를 신체 각 부위에 부착하면 스마트폰에 송출된 3D 그래픽 가상 캐릭터가 이용자의 움직임을 즉각따라하는 모션 캡처 전용 장비로, 가격은 4만9500엔(약 47만원)이다.
모코피는 그간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가 추진해온 버추얼 유튜버 사업과도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소니 뮤직은 현재 '버스엔(VERSEⁿ)', '비(VEE)', '놋봇(NHOT BOT)', '프리즘(PRISM) 프로젝트' 등 4개 그룹을 통틀어 총 41명의 버추얼 유튜버들을 지원하고 있다.
아울러 그간 라이브2D 그래픽 아바타가 주류였던 버추얼 유튜버 업계에 3D 아바타를 대중화, 콘텐츠 크리에이터는 물론 아바타·오브젝트·월드 등을 제작하는 크리에이터 생태계 전반에 걸쳐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란 기대도 받고 있다.
아이언마우스·냐타샤 냐너스·케이손 등 구독자 100만 버추얼 유튜버 3명이 소속된 '브이쇼죠'의 최고기술책임자(CTO) '마우텐두(MowtenDoo)'는 모코피를 두고 "큰 게 왔다"며 "3D 기반 버추얼 유튜버에 대한 접근성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것"이라고 호평했다.
실제로 소니는 모코피 출시에 발맞춰 크리에이터 생태계 지원을 위해 3D 게임 엔진 유니티, 가상현실(VR) 소셜 서비스 VR챗과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두 플랫폼은 각각 게임 개발, VR 콘텐츠 제작에 있어 가장 대중적인 플랫폼으로 손꼽힌다.
소니가 버추얼 유튜버 사업을 통해 크리에이터 생태계의 주도권을 쥔다면, 콘솔게임계 라이벌 MS나 최근 MS와 B2B(기업 간 비즈니스) 메타버스 시장 공략을 목표로 파트너십을 체결한 메타 플랫폼스(이하 메타) 등 라이벌 빅테크들에게 적잖은 위협이 될 전망이다.
MS 메타버스 사업의 핵심 축으로 클라우드·콘텐츠·크리에이터 등 '3C'가 꼽힌다. MS는 올 1월 미국 대형 게임사 액티비전 블리자드를 687억달러(약 82조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업계 전문가들은 해당 계약이 마무리된다면 MS가 소니를 상대로 콘텐츠 분야에서 확실히 앞서갈 것으로 보고 있다.
메타는 올 10월 선보인 VR 헤드셋 '퀘스트 프로'가 비슷한 시기 공개된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VR 2'에 비해 기술적으로 앞선다는 평을 받았으나, 최근 유튜브의 구글, 트위치의 아마존, 틱톡의 바이트댄스 등에 비해 크리에이터 분야에서 뒤쳐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소니가 크리에이터 분야에서 앞서간다면 MS와 메타 모두에게 효과적인 반격을 가할 것으로 점쳐진다.
소니가 버추얼 유튜버에 투자하던 과정에서 중국 업체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는 점 역시 빅테크 간 경쟁에서 강점이 될 전망이다. 소니 뮤직은 버추얼 유튜버 그룹 '놋봇' 운영 과정에서 중국 최대 동영상 플랫폼 빌리빌리와 협업했다. 양사는 올해 도쿄 증권거래소에 상장한 버추얼 유튜버 전문 기업 애니컬러에도 일찍이 함께 투자해 빌리빌리가 지분 7.34%, 소니는 5.14%를 보유하고 있다.
중국 업체들과 소니의 협력 관계는 버추얼 유튜버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례로 올 9월 중국 최대 빅테크 텐센트와 합작 투자, 세계적 히트작 '엘든 링'을 개발한 프롬소프트웨어의 지분 30.34%를 나눠가졌다. 또 지난 2년간 중국 외 지역에서만 25억달러(약 3조2473억원)의 매출을 올려 중국 게임 역사상 최대 히트작으로 꼽히는 '원신'의 콘솔판은 오직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으로만 이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로이터 통신은 올 10월 말 복수의 업계 관계자들의 발언을 인용, "MS가 콘텐츠 분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중국시장 전담 팀을 구성했다"며 "독점 퍼블리셔 계약은 물론 거액을 들여 중국 게임사를 자회사로 인수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버추얼 유튜버는 실제 인간이 모션 캡처 기술을 활용, 자신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따라하는 가상 캐릭터를 내세워 개인방송 활동을 하는 것을 뜻한다. 지난 2016년 12월 일본의 '키즈나 아이'가 데뷔한 이래 특히 서브컬처 팬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방송 장르다.
일본 개인방송 통계 분석 플랫폼 유저로컬에 따르면 버추얼 유튜버의 수는 세계적으로 2만명이 넘는다. 이중 파워 인플루언서의 영역인 100만 구독을 넘긴 방송인은 일본과 미국 외에도 한국·영국·호주·인도네시아·태국·멕시코·푸에르토리코·칠레·아르헨티나 등 세계 각국에 50명 가까이 존재한다.
버추얼 유튜버의 재정적 가치 또한 높다. 유튜브 통계 분석 플랫폼 플레이보드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슈퍼챗 수익 10억원 이상을 기록한 이는 7명인데, 이들 모두가 버추얼 유튜버다. 슈퍼챗 외에도 광고 모델, 굿즈화, 타 IP와 콜라보레이션 등 다양한 경로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애니컬러는 버추얼 유튜버 그룹 '니지산지'를 운영하고 있다. 올 6월 주당 4800엔에 상장된 후 3달만에 2배를 넘는 1만엔 선을 돌파, 메타버스 유망주로 손 꼽히고 있다. 또 니지산지의 업계 라이벌 '홀로라이브 프로덕션' 운영사 커버 역시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서브컬처와 직접적 관련이 있는 게임계는 이미 버추얼 유튜버와의 동행을 시작했다. 소니 외에도 일본의 세가·사이게임즈, 한국의 넥슨·스마일게이트·네오위즈 등이 버추얼 유튜버를 선보였다. 미국의 EA는 버추얼 유튜버로 활용 가능한 아바타를 선보였다. 게임계 외에도 미국의 식품 생산 업체 켈로그가 올 8월 자사 마스코트 '호랑이 토니'를 버추얼 유튜버로 데뷔시켰다.
버추얼 유튜버 사업에 있어 소니의 당면 과제는 '파워 인플루언서'를 확보하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수십명의 100만 구독 버추얼 유튜버들이 활동하고 있으나, 소니가 운영하고 있는 41명의 버추얼 유튜버 중 100만 구독을 달성한 이는 없다.
소니 그룹 산하에서 가장 이름이 있는 버추얼 유튜버는 놋봇의 '카구라 메아'로 유튜브 구독자 34만명, 빌리빌리 구독자 88만명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지난해 말 놋봇에 영입되기 전인 2018년부터 활동해 올해 데뷔 4년차를 맞이한 베테랑으로, 온전히 소니의 오리지널 IP라고 보기는 어렵다.
메아 외 40명의 버추얼 유튜버 중에서도 실질적으로 영향력이 있다 볼 수 있는 10만 구독 이상을 확보한 버추얼 유튜버 또한 프리즘 프로젝트의 '미요시노 시키', VEE의 '슈세츠 코하쿠' 뿐으로, 소니는 버추얼 유튜버 브랜드로서는 아직 강력한 영향력을 갖추진 못한 상황이다.
1인미디어 시장 분석 플랫폼 AFK스트리밍은 "버추얼 유튜버는 신상 노출을 최소화하면서도 높은 소통 밀도를 유지할 수 있다는 특장점이 있다"며 기술 발전과 더불어 지속 성장할 사업 분야로 전망했다.
미국 미디어 전문지 코타쿠는 "버추얼 유튜버 업계는 소비자와 직접 소통하는 콘텐츠인만큼 흥망이 빠르게 결판나는 역동적인 생태계"라며 "대다수의 최상위 버추얼 유튜버들은 이미 특정 그룹에 속해있으며, 빠른 시일 안에 그들과 겨룰 정도의 브랜드 인지도를 확보해야만 시장에서 쉽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