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통신망을 이용하는 CP(콘텐츠제공자)에 망 사용료를 부과하도록 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망 사용료 법)이 뜻밖의 암초를 만났다.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의 법정 공방으로 주목을 받게 된 망 사용료 법은 당초 넷플릭스의 무임승차론이 불거지면서 그 당위성이 인정됐으나 국회에서 찬반의견이 갈라지면서 입법까지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망 사용료는 ISP(인터넷서비스제공자)의 통신망을 이용하는 CP가 통신망 이용에 대해 지불하는 대가를 말한다. 망 사용료는 ISP가 특정 콘텐츠나 CP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망중립성 원칙에 위배된다는 주장이 있었으나 넷플릭스 서비스로 인해 트래픽 과부하로 사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SK브로드밴드의 주장이 힘을 받으면서 망 사용료의 필요성이 커졌다.
그러나 국회에서 망 사용료 법제화의 움직임이 보여지면서 구글과 트위치 등 외국계 CP사들이 거세게 반발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도 우리 콘텐츠 기업의 해외 진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망 사용료 법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역시 SNS를 통해 "망 사용료 법 문제점이 있어 보인다"라고 밝혔으며 정청래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도 "소수의 국내 ISP를 보호하려는 편협하고 왜곡된 애국마케팅을 하다가, 국내 CP(콘텐츠사업자)의 폭망을 불러올 위험천만한 일이라 생각한다"며 "K-콘텐츠 경쟁력이 강한 K-CP의 재앙적 피해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국회 문체위 소속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망 사용료 부과 문제는 여러 이해 당사자 간 입장차가 매우 크고, 따라서 충분한 시간을 두고 다양한 목소리를 청취해야 한다"며 "국내 게임업계에 이어 글로벌 게임사들의 의견도 수렴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국회의 이 같은 기류변화에는 구글과 트위치 등의 적극적인 반대의사 표명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구글은 망 사용료 법제화 조짐 이후 망중립성 수호 서명운동을 진행했다. 서명운동 사이트인 오픈넷에서는 5일 오후 2시 기준 17만6000명 이상이 서명에 참여했다.
또 1인 방송 플랫폼인 트위치는 최근 망 사용료 부담을 이유로 방송 화질을 기존 1080p에서 720p로 제한한다고 밝혔다. 앞서 유튜브는 "망 사용료를 부담하게 되면 그 피해가 크리에이터에게 고스란히 넘어갈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트위치의 사례를 통해 이같은 내용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1인 미디어와 OTT 등은 망 사용료가 법제화될 경우 그 부담을 고스란히 이용자와 크리에이터에게 부담시킬 수 있다. 1인 미디어의 경우 슈퍼챗이나 도네이션 등 크리에이터에게 돌아가는 후원금에 대한 수수료를 올릴 수 있고 시청자가 크리에이터에게 내는 월 구독료도 인상될 수 있다.
OTT 역시 월 구독료 인상으로 맞대응할 수 있다. 앞서 딘 가필드 넷플릭스 정책총괄 부사장은 지난해 11월 방한 당시 "망 사용료를 내는 일이 생기더라도 구독료에 영향을 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망 사용료에 대해 거세게 반발하는 만큼 다른 명분을 내세워 구독료를 인상시킬 가능성이 있다.
국내 소비자뿐 아니라 콘텐츠 제작사들도 부담이 될 수 있다. 최근 티빙과 웨이브를 필두로 국내 OTT들이 해외 진출에 나서고 있고 정부에서도 이를 장려한다는 입장이지만, 해외에서도 같은 명분으로 망 사용료를 내야 하는 처지에 이를 수 있다.
이 경우 글로벌 영향력이 커진 K-콘텐츠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고 해외 진출을 노리는 제작사들이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플랫폼으로 향할 수도 있다.
영화계 관계자는 "넷플릭스의 자유로운 창작환경은 이미 창작자들 사이에서 소문이 나있다. 창작자들이 이미 넷플릭스에서 제작하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상황"이라며 "여기에 해외 진출에도 넷플릭스가 더 유리한 플랫폼이라면 창작자들의 넷플릭스 쏠림은 더 심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콘텐츠 제작사 외에 국내 CP사의 해외 진출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특히 네이버는 최근 포쉬마크와 2조3000억 규모의 M&A를 체결하고 글로벌 사업 확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여기에 망 사용료 법제화가 불거질 경우 해외 역차별을 받게 되면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이 같은 우려에도 국내 ISP의 통신망 운영 부담이 커지는 만큼 망 사용료를 외면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과거 인터넷 서비스는 텍스트와 이미지에 집중됐으나 최근 OTT, 1인 미디어 보급의 확대로 대용량, 실시간 동영상 서비스가 늘어나 통신사들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최근 통신망 트래픽 통계에 따르면 네이버나 카카오보다 구글, 넷플릭스의 비중이 월등히 높았다. 이용자 수는 네이버, 카카오가 훨씬 높았으나 대용량 동영상 서비스를 중심으로 한 구글, 넷플릭스가 네이버, 카카오보다 2배 이상 높았다.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와 법정공방 과정에서 2018년 1월 트래픽량은 22Gbps였으나 지난해 3월에는 900Gbps로 늘어났다며 2020년 2분기 기준 일평균 트래픽 상위 10개 사이트 중 해외 CP사 비중이 73.1%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이미 망 사용료를 내는 CP사와 형평성 문제도 나올 수 있다. 국내 인터넷 기업인 네이버와 카카오는 이미 망 사용료를 내고 있다. 또 지난해 11월 국내 서비스를 시작한 디즈니플러스와 애플TV플러스도 콘텐츠전송네트워크(CDN)를 통해 우회적으로 망 사용료를 내고 있다.
만약 망 사용료 법이 통과되면 직접 망 사용료를 내고 있는 네이버, 카카오는 ISP와 협상을 다시 해야 할 수 있다. 법의 내용에 따라 망 사용료 법은 네이버, 카카오에게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여용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dd093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