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공개(IPO) 추진을 공론화했던 이커머스 업계가 깊은 고민에 빠졌다. IPO 대어로 꼽히는 기업들이 기업가치 훼손을 우려해 줄줄이 상장을 철회하거나 연기하고 있어서다.
23일 이커머스 업계는 IPO를 앞두고 시장 분위기를 예의주시 중이다. 전날(22일) 몸값을 낮춰 증시에 입성한 쏘카마저 상장 첫날부터 공모가를 하회하는 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어 상장 시기를 두고 신중한 모습이다.
IPO가 임박한 컬리의 경우 속내는 더 복잡하다. 22일 한국거래소가 컬리의 상장예비심사를 통과시켜 상장의 첫 관문은 넘었지만 공모가 산정 등 최종 상장까지 남겨진 과제는 여전히 많다.
증권가는 컬리의 경우 당장 시장에 제시할 몸값 산정부터 난관에 부딪힐 것으로 보고 있다.
컬리는 지난해 말 프리IPO(사장 전 지분투자)에서 홍콩계 사모펀드(PEF) 운용사 앵커에쿼파트너스(앵커PE)에게 2500억원의 투자를 유치해 기업가치 4조원을 인정받으며 기업공개를 추진했다. 그러나 현재 기업가치는 이보다 낮아진 것으로 전해진다.
2조~4조원 기업가치에 투자를 받은 컬리로서는 시장 분위기만 보고 공모가를 무작정 내릴 수 없는 노릇이다. 기업가치를 너무 낮춰버리면 재무적 투자자(FI) 손실이 불가피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기업가치를 높게 제시하기도 어렵다. 적자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자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데다 추가 금리 인상까지 예고돼 컬리가 기대하는 몸값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기관 수요예측도 넘어야 할 산이다. 유니콘 기업으로 큰 관심을 받은 쏘카도 올해 초까지 2~3조원대로 평가 받았으나 수요예측에서 부진한 성적을 내며 몸값을 1조원 아래로 낮춘 바 있다. CJ올리브영도 원하는 기업가치로 평가 받기 어렵게 되자 상장 계획을 철회했다. SSG닷컴도 상장 시점을 내년으로 미뤘다.
후속 주자들은 이 같은 상황을 지켜보며 우려의 끈을 놓지 못하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비우호적인 시장 상황에 이커머스 업계가 줄줄이 상장을 미룰 가능성을 제기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상장 기업의 의지에 달려 있겠지만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 상장 시기에 대한 고민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라며 "상장 시기를 조금 늦출 가능성이 엿보인다"고 전망했다.
컬리의 상장 의지는 확고했다. 그러나 연내 상장 추진에 대해서는 확답을 주지 못했다. 컬리 관계자는 "증시 상황을 살펴 상장 적기라고 판단되는 시점에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기대한 몸값을 받을 수 있는 적정한 시기를 노리겠다는 말로, 무리한 성장을 고집하지는 않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내년을 목표로 했던 11번가도 증시 상황을 고려해 IPO 추진할 예정이다. 지난 5월 주관사 선정을 위한 프레젠테이션(PT)를 진행한 11번가는 현재까지 주관사 선정 결과를 통보하지 않고 있다. 현 상황에서 기업가치를 제대로 받기 어렵다는 점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새벽배송 업체 오아시스마켓은 연내 상장 목표에 변함이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상장주관사인 NH투자증권과 한국투자증권과 함께 상장 예비심사를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오아시스마켓은 컬리와 11번가와 달리 유니콘 특례 상장이 아닌 일반 상장으로 증시 입성에 도전한다.
오아시스마켓 관계자는 "현재 증시 상황이 녹록치 않은 것은 사실이나 꼭 기업가치를 높게 평가 받는 게 최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몸값이 높아질수록 끌고 갈 시장가치도 그만큼 높아지는 부담이 생기기 때문에 상장 후 성장에 더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고 말했다.
송수연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sy1216@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