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천하의 앙숙' 머스크-베조스가 뜻밖에 의기투합

천하의 라이벌 관계를 유지해왔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제프 베조스 전 아마존 CEO가 뜻밖의 사안을 둘러싸고 이례적으로 의기투합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미국 사회 안팎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머스크 테슬라 CEO와 베조스 전 아마존 CEO가 천하의 라이벌로 꼽히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천하의 앙숙으로 묘사될 수 밖에 없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두 사람 모두 세계 최고의 초일류 기업을 이끌고 있거나 창업한 혁신의 아이콘이다.

머스크는 세계 최대 전기차 제조업체 테슬라를 경영하고 있고 베조스는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인 아마존을 창업해 최근까지 경영했다.

둘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세계 최고 부호다. 머스크 CEO는 올해 세계 최고 억만장자로 등극했고 베조스 전 CEO는 지난해까지 세계 최고 부자였다.
지구상에서 펼치는 경쟁도 모자라 두 사람은 우주 탐사 분야에서도 뜨거운 경쟁을 벌이고 있다. 머스크가 스페이스X를 이끌며 인류 최초의 유인 화성탐사 계획을 추진 중이고 베조스는 스페이스X의 최대 경쟁사인 블루오리진을 먼저 창업했다.

최근에는 머스크가 글로벌 소셜미디어업계의 양대산맥에 속하는 트위터의 최대주주가 되면서 두 사람이 격돌하는 전선이 추가되면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머스크가 트위터 창업자 잭 도시보다 지분이 많은 최대 주주가 된 직후 트위터의 신임 이사로 임명된 것은 전통 미디어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는 소셜미디어라는 뉴미디어 시장에까지 머스크가 화려하게 진출했음을 뜻한다.
베조스는 전통적인 언론매체이면서 미국 3대 유력 일간지에 속하는 일간 워싱턴포스트(WP)의 대표다. WP는 경영난에 허덕이다 베조스가 사들이면서 회생한 신문사이기도 하다. 미디어라는 새로운 분야에서 불세출의 두 기업인이 새로 맞붙게 됐다는 뜻이다.

그러나 10일(이하 현지시간) 폭스뉴스 등 외신에 따르면 이처럼 사사건건 격돌해온 두 혁신 기업인이 전혀 뜻밖의 사안에 관해 의기투합하는 모습을 연출하면서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두 사람 사이에 이뤄지고 있는 논의 내용은 단순히 트위터 직원들이 놀라고 샌프란시스코 당국이 당혹스러워 하는 차원을 넘어서는 수준의 사안이어서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트위터 직원들과 트위터 본사가 위치한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당국은 머스크 신임 트위터 이사가 10일 트위터에 올린 설문조사 때문에 당혹감에 휩싸여 있다.

머스크가 8000만명이 넘는 자신의 팔로워들을 상대로 다양한 사안에 대해 의견을 묻는 일을 여러차례 해왔고 대개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지만 이번 설문조사는 경우가 다르다.

그 이유는 질문의 내용이 매우 파격적이라서다. 어차피 트위터가 재택근무제를 유지하기로 한 마당에 현재 시행중인 재택근무제로 비어있는 샌프란시스코 본사를 노숙인 쉼터로 전용하는 방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

트위터는 재택근무를 희망할 경우 계속 허용하는 방향으로 탄력성이 큰 근무제를 유지한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는데 이를 전제로 샌프란시스코 본사를 놀리기 보다는 노숙인 보호시설로 적극 활용하자는 게 머스크의 취지로 풀이된다.

이 설문조사가 더 이목을 끄는 이유는 개인적으로 올린 설문조사가 아니라 트위터 이사로 새로 선임돼 트위터 경영진에 합류한 직후 올린 설문조사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실제로 채택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

10일까지 진행된 이 설문조사의 결과도 뜻밖이다. 총 190만여명이 조사에 참여한 가운데 무려 91.3%가 트위터 본사를 노숙인 보호시설로 활용하자는 머스크의 제안에 찬성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미국 언론들에 따르면 머스크가 이 설문조사를 위시해 트위터 경영진에 합류하자마자 대대적인 혁신을 예고하는 일련의 행동을 벌이는 것에 대해 트위터 내부에서는 급격한 변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당국도 놀라기는 마찬가지. 비싸기로 악명 높은 샌프란시스코의 부동산 가격 때문에 노숙인 보호시설을 짓고 싶어도 여의치 않았는데 특정 기업인이 시 차원에서도 엄두를 내기 어려웠던 사안을 단숨에 해결할 수도 있는 파격적인 제안을 하는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미국 전문 통계 사이트 USA바이넘버스에 따르면 인구 80여만명의 샌프란시스코는 굴지의 IT 업체들이 모여 있는 미국의 대표적인 경제 중심지에 속하지만 노숙인 비율은 미국 전체에서 6위를 기록하고 있을만큼 노숙인 문제가 심각한 지역이다.




머스크 신임 이사의 파격적인 제안은 제안으로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설문조사를 통해 압도적인 지지 여론이 확인된 것도 그럴 가능성을 뒷받침할뿐 아니라 천하의 라이벌인 베조스가 머스크의 노숙인 쉼터 제안에 맞장구를 치고 나왔고 베조스의 맞장구에 머스크도 화답하고 나서는 이례적인 상황이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베조스 전 아마존 CEO는 11일 올린 트윗에서 머스크의 제안에 적극 찬동한다는 입장을 밝히는데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조언까지 하는 모습을 보여 커다란 이목을 끌었다.

베조스는 이 트윗에서 조언한 내용은 “아마존에서 한 것처럼 본사의 일부를 노숙인 보호시설로 운영하는 방안도 고려해보라”는 것.

시애틀에 있는 아마존 본사에서 실제로 이같은 방식으로 노숙인 쉼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반응이 매우 좋고 직원들에게도 자원봉사의 기회를 줄 수 있어 일석이조라는게 베조스의 조언이다.

실제로 아마존은 시애틀 본사 건물의 일부를 노숙인 200명, 가족까지 합치면 1000명 이상이 매일 묵을 수 있는 노숙인 보호시설로 용도변경해 지난해 5월부터 운영에 들어간 바 있다.

베조스의 트윗은 연쇄반응을 일으켰다. 머스크가 베조스의 트윗에 단 댓글에서 “훌륭한 아이디어”라며 화답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정겨운 트윗 교환이 이뤄진 것을 목격한 일부 팔로워들 사이에서 “이번 기회에 이 문제를 공론화시켜 추진하자”는 제안이 나오고 있어 머스크 트위터 이사가 향후 어떤 행보를 보일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혜영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