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은 그동안 자동차 부품사업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않았다. LG화학이나 삼성SDI이 전기자동차 배터리 등 각종 자동차 관련 소재를 내놓고 있지만 롯데그룹 계열사는 경쟁업체에 비해 한 발 늦은 모습을 보여 왔다.
그러나 신동빈(65) 롯데그룹 회장은 최근 남다른 각오를 내비쳤다. 정의선(50)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의 회동에서 자동차 부품 소재사업에서 협력 의지를 내비쳤다.
롯데그룹이 현대차그룹과의 사업 협력으로 미래 친환경 자동차 시장에서 게임체인저(Game Changer: 판도를 바꾸는 요인)이 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롯데·현대차그룹, ‘미래車 큰 그림’ 그린다
신 롯데회장은 지난달 25일 롯데케미칼 의왕사업장에서 정 현대차그룹 회장과 만났다. 양측은 회동 후 구체적인 회동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롯데그룹 화학 계열사 롯데케미칼이 첨단 소재개발을 신(新)성장 동력으로 여기고 있어 두 사람이 미래 전기차와 수소차에 들어가는 각종 화학소재를 놓고 사업 협력 방안을 모색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이를 잘 보여주듯 정 회장이 방문한 롯데케미칼 의왕사업장은 과거 롯데케미칼 첨단소재 본사가 있던 곳이다.
이곳은 현재 자동차 내·외장재로 사용되는 고부가합성수지(ABS), 폴리프로필렌(PP)과 폴리카보네이트(PC) 등 고기능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을 연구개발(R&D)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LG화학, SK이노베이션, SKC 등 경쟁업체들이 전기차 배터리와 부품 소재 등 신사업으로 발빠르게 대응해 친환경차, 스마트카 등 미래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각축을 벌이고 있는 점과 비교하면 다소 늦은 감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롯데케미칼이 석유화학 제품 기초 소재 에틸렌 부문에서 국내 1위 업체이며 올 들어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새 먹거리 사업’에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며 “미래자동차 부문도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롯데그룹, 롯데케미칼 첨단화학소재로 미래 신사업 박차
이와 관련해 롯데케미칼은 지난해부터 사업 다각화에 박차를 가했다. 롯데케미칼은 올해 초 자회사 롯데케미칼 첨단소재 부문을 흡수통합해 ‘순수 화학업체’에서 각종 첨단 화학 분야로 보폭을 넓힐 수 있는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체제를 갖췄다. 이에 따라 롯데케미칼은 미래형 전기차와 수소차 등에 각종 화학소재를 제공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췄다.
업계 관계자는 “롯데그룹이 기존 그룹의 핵심축이었던 유통·식품 산업에서 최근 첨단 화학 소재 분야로 사업영토를 넓히고 있다”며 “이를 위해 신 회장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유망업체 인수에 적극적인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신 회장이 이번에 정 회장과 비공식 회동을 갖는 것도 롯데그룹의 미래차 사업 진출을 타진해 보기 위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풀이했다.
롯데케미칼은 신 회장에게 매우 중요한 계열사다.
신 회장은 1990년 롯데케미칼 전신인 호남석유화학 상무로 경영 수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롯데그룹에서 롯데케미칼은 롯데쇼핑과 함께 그룹의 핵심 캐시카우(Cash Cow:주요 수익원) 역할을 하고 있다.
◇신 회장, 최근 인사에서 미래 신사업에 힘 실어줘
이번 롯데그룹 인사도 미래 신사업에 대한 신 회장의 각오를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017년부터 롯데케미칼 대표이사를 겸하고 있는 김교현 사장은 이번 인사에서도 유임되는 저력을 보였다. 이를 계기로 김 사장은 롯데케미칼 신사업 추진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 일각에선 롯데의 거미줄 같은 국내 유통망과 롯데케미칼의 신소재를 현대차그룹의 전기·수소차 등 미래 친환경차에 적용하면 사업 시너지가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롯데케미칼은 올해 2월 컨퍼런스콜에서 첨단소재사업에서 글로벌 완성차의 협력 의지를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롯데케미칼이 생산하는 각종 첨단소재가 글로벌 완성차 부품으로 사용되고 있다”며 “신 회장은 현대차 등 글로벌 완성차와의 협력을 강화해 모빌리티(이동수단) 소재사업을 적극 육성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현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kamsa0912@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