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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근의 단상] ‘암살자’ 소동, 역사는 흥행보다 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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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근 (사)한국스마트유통물류연구원 이사장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비극이었다. 우리에게 실제 인물과 희생자가 존재하는 사건을 영화로 재구성할 자유는 있지만, 호기심과 논란을 위해 비극을 자극적으로 소비한다면 문제다. 역사는 흥행보다, 먼저 지켜야 할 인간적인 예의가 있다.
영화는 새로운 해석과 상상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할 때는 창작적인 설정과 역사적인 기록은 구분되어야 한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이나 국가기관의 배후설 같은 중대한 의혹은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극적 상상인지 관객이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1974년 사건에는 수사와 재판을 거친 공식의 기록이 있다. 다른 해석을 제기하는 것 자체를 금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가능성’과 ‘사실’은 전혀 다르다. 기록으로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면 관객에게 사실처럼 각인될 수 있다는 점에서 창작자의 책임이 따른다.

육영수 여사의 피격은 단순한 영화 소재가 아니라 한 인간의 죽음이었다. 당시 미국 대사관 보고에도 국민적 충격과 대규모 조문 행렬이 기록될 만큼 사회적인 파장이 컸다. 사건을 둘러싼 논쟁을 이어가더라도 희생자의 죽음과 국민의 슬픔까지 흥미 요소로 소비해서는 안 된다.
박정희 정부는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으로 수출과 산업화를 국가정책의 중심으로 추진했다. 경공업에서 철강·조선·기계·화학 등 중화학공업으로 산업구조를 확대하고, 고속도로와 기간산업에 투자했다. 이는 한강의 기적을 이룬 한국 경제의 역사적 전환이었다.

경제성장에는 정부 정책 외에도 앞선 정부의 개발 구상, 미국의 지원, 한일 국교정상화 자금, 기업과 노동자의 노력, 파독 광부·간호사, 베트남전과 중동 건설 등의 요인이 작용했다. 박정희의 역할은 인정하되, 모든 성과를 한 사람에게 귀속하는 것은 정확한 역사 서술이 아니다.

박정희 시대의 경제성장은 5천 년 가난을 앃어 낸 중요 역사적 성과지만 권위주의 통치와 정치적 억압, 인권침해, 노동문제도 외면할 수 없다. 과오 때문에 경제개발의 성과를 부정해서도 안 된다. 공과를 함께 기록하는 태도가 진영의 찬양이나 비난보다 훨씬 성숙한 역사관이다.

흥미로운 지난 장면은 박정희의 정치적 경쟁자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박정희기념관 건립을 추진했다는 사실이다. 김대중은 박정희의 경제적 공로를 인정하면서도 독재와 인권침해를 비판했다. 이는 과거를 지우기보다는 공과를 함께 기록하고 갈등을 화해로 바꾸려는 시도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박정희를 비판하면서도 인간을 절대적인 천사와 악마로 나누는 데 거리를 뒀다. 이 관점은 오늘날에도 의미가 있다. 역사적 인물을 평가할 때 공적을 지우거나 과오를 미화하면 결국 역사적 이해는 빈약해진다. 복잡한 인물일수록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역사다.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 성과를 인정한다고 독재까지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독재와 인권침해를 비판한다고 경제개발의 성과를 부정할 수도 없다. 일부 진영에서 유리한 사실만 선택하면 역사 인식은 선전으로 변한다. 진보와 보수 모두 불편한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암살자(들)’ 논쟁의 핵심은 영화가 의혹을 제기할 수 있느냐만이 아니다. 의혹이 역사적 사실과 어떻게 구별되어 관객에게 제시되는지가 중요하다. 창작자가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지만, 관객이 이를 역사적 결론으로 받아들이게 한다면 사회적인 책임 논쟁들은 피하기 어렵다.

논란이 된 것은 영화와 관련해 육영수 여사의 피격 장면을 연상시키는 홍보 상품이었다. 실제 총격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를 상품화했다면 단순한 마케팅으로 치부하기 어렵다. 기업의 사과와 남은 상품 폐기는 당연하며, 역사적 비극을 다룰 때 더욱 엄격한 검토가 필요하다.
논란은 영화의 관심을 높이고 흥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희생과 역사적 상처를 자극하는 장사가 반복되면 사회가 비극을 소비하는 구조에 빠질 수 있다. 표현의 자유와 상업적 성공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인간의 존엄과 역사적 사실을 희생시킬 권리까지 뜻하지는 않는다.

박정희 대통령의 공과는 우리가 지켜야 할 대한민국 현대사의 기록이다. 육영수 여사의 죽음도 기억해야 할 비극이다. 역대 대통령의 역사적 공과를 허물거나, 미화해서는 안 된다. 사실을 기록하고 공과를 평가하며, 죽음마저 흥행상품으로 만들지 않는 것, 그것이 역사적 정의다.


임실근 (사)한국스마트유통물류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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