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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반도체 열전 (46) SMIC(中芯國際)...시진핑 파운드리

김대호 박사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이미지 확대보기
김대호 박사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베이징의 허를 찌른 스마트폰 한 대, 워싱턴을 뒤흔들다
<미-중 무역마찰 최전선>

바이든 대통령 시절 베이징을 방문 중이던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은 외교 관례상 유례를 찾기 힘든 당혹스러운 장면과 마주해야 했다. 미국의 대중(對中) 첨단 기술 수출 통제를 진두지휘하며 강력한 제재를 밀어붙이던 바로 그 시점에, 중국의 화웨이(Huawei)가 아무런 사전 예고도 없이 최신 5G 플래그십 스마트폰인 ‘메이트 60 프로(Mate 60 Pro)’를 기습적으로 시장에 출시한 것이다.세계 IT 업계와 미국 정부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시작된 전방위적 제재로 인해 화웨이는 첨단 반도체 공급망에서 완전히 퇴출당했고, 네덜란드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 반입조차 철저히 봉쇄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화웨이가 5G 스마트폰을 다시는 생산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글로벌 반도체 전문 분석 기관 테크인사이츠(TechInsights)가 해당 스마트폰을 전격 분해해 밝혀낸 사실은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모바일 AP ‘기린(Kirin) 9000s’는 다름 아닌 7나노미터(nm) 미세공정으로 제작된 칩이었으며, 칩을 생산한 주인공은 바로 중국 최대의 국유 파운드리 기업 SMIC(中芯國際·중신궈지)였다. 미국 상무장관의 면전에서 벌어진 이 상징적인 사건은 워싱턴의 강력한 제재 장벽에 거대한 균열이 생겼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EUV 장비 없이는 7나노 진입이 불가능하다는 글로벌 반도체 업계의 통념을 깨뜨린 SMIC의 이 반격 뒤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집요한 ‘반도체 굴기’와 대만 TSMC 출신의 파운드리 천재 엔지니어 량멍쑹(梁孟松) 박사의 집념이 자리 잡고 있었다.
SMIC는 2000년 4월, 중국 상하이 장장하이테크파크(張江高科)에서 닻을 올렸다. 이 회사를 세운 창업주는 대만 출신의 반도체 거물 리처드 창(Richard Chang, 장루징·張汝京) 박사였다. 미국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에서 전설적인 엔지니어이자 훗날 TSMC 창업주가 되는 모리스 창(Morris Chang, 장중머우)과 함께 20년간 공장 건설 및 제조 라인을 진두지휘했던 리처드 창은, 1997년 대만으로 돌아와 WSMC(월드와이드반도체)를 설립했다.2000년, 대만 반도체 업계의 패권을 장악하려던 모리스 창의 TSMC가 WSMC의 주요 주주들을 포섭하여 기습적인 적대적 인수를 단행했다. 하루아침에 자신이 피땀 흘려 세운 회사를 TSMC에 빼앗긴 리처드 창은 깊은 배신감과 울분을 안고 대만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가 향한 곳은 반도체 자립을 갈망하던 중국 대륙이었다.

<모리스창 VS 리차드 창>

리처드 창은 당시 자신을 따르던 대만 WSMC와 TSMC 출신의 핵심 엔지니어 수백 명을 규합하여 상하이로 건너갔다. 상하이 지방정부와 해외 투자 펀드의 자본을 유치하여 세운 회사가 바로 SMIC(Semiconductor Manufacturing International Corporation)였다. 리처드 창의 초기 전략은 놀라운 속도전이었다. 그는 대만과 미국의 최신 팹(Fab) 건설 노하우를 그대로 상하이에 이식하며, 창립 불과 몇 년 만에 8인치 및 12인치 웨이퍼 라인을 대거 완공했다. SMIC는 설립 4년 만인 2004년 뉴욕증권거래소(NYSE)와 홍콩증권거래소에 동시 상장하며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순수 파운드리(Pure-play Foundry)로 부상했다. 리처드 창은 중국 반도체 산업의 초석을 놓은 ‘중국 반도체의 대부’로 칭송받았다.

중국 지도부에게 반도체는 단순한 산업 부품이 아니라 국가의 안보와 체제 생존이 걸린 전략 물자였다. 매년 원유 수입액보다 많은 3,000억 달러 이상의 막대한 외화를 반도체 수입에 쏟아붓던 중국은, 글로벌 공급망이 차단될 경우 IT 제조업 전체가 마비될 수 있다는 구조적 취약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시진핑 주석이 집권한 이후 내건 핵심 국정 철학은 바로 '기술 자주(自立自强)'와 '제조 2025'였다. 핵심 원천 기술을 외부에 의존해서는 결코 글로벌 패권 국가로 도약할 수 없다는 판단하에, 중국 정부는 2014년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기금'(일명 빅펀드)을 출범시켰다. 수백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국가 자본이 반도체 팹리스, 파운드리, 패키징, 소재·부품·장비 전 분야로 흘러 들어갔고, 그 중심에 선 국가대표 기업이 바로 파운드리의 기둥인 SMIC였다.
시진핑 체제 아래서 SMIC는 단순한 상장 민간 기업의 차원을 넘어, 국가 주권과 직결된 ‘전략적 공공재’로 격상되었다. 막대한 국유은행 저리 대출, 무제한에 가까운 연구개발 보조금, 세제 혜택, 그리고 상하이·베이징·선전 등 주요 거점 도시에 대한 공장 건설 부지 무상 지원이 이어졌다. 시진핑의 파운드리 꿈은 곧 SMIC를 대만의 TSMC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최강의 제조 요새로 탈바꿈시키는 것이었다.

<TSMC 피비린내 나는 한판승부>

SMIC의 급격한 성장은 파운드리 종주국을 자처하는 대만 TSMC와의 정면충돌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TSMC는 SMIC가 자사의 영업비밀과 특허 기술을 무단으로 베끼고 인력을 불법적으로 탈취했다며 반격에 나섰다.2003년, TSMC는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연방법원에 SMIC를 상대로 대규모 특허 침해 및 영업비밀 도용 소송을 제기했다. TSMC는 SMIC의 공정 레시피와 마스크 데이터, 심지어 사내 문서 양식까지 TSMC의 것을 그대로 모방했다고 주장했다. 2005년 양사는 1억 7,500만 달러의 배상금과 기술 사용 계약을 체결하며 1차 합의를 맺었으나, 분쟁은 2006년 또다시 재점화되었다. TSMC는 SMIC가 합의안을 이행하지 않고 자사의 공정 기술을 지속적으로 유출해 0.13마이크로미터 및 90나노 공정에 불법 적용했다고 추가 제소했다.

2009년 11월, 미국 캘리포니아 배심원단은 전원 일치로 TSMC의 손을 들어주었다. 패색이 짙어진 SMIC는 백기 투항할 수밖에 없었다. SMIC는 TSMC에 현금 2억 달러를 배상하고, 자사 주식의 8%와 추가 워런트를 넘겨 총 10%에 달하는 지분을 TSMC에 헌납해야 했다. 더욱이 미국 법원의 판결 조건에 따라 창업주 리처드 창은 경영 실패와 법적 책임에 대한 대가로 CEO 자리에서 불명예 퇴진하고 반도체 업계를 떠나야 했다.창업주를 잃은 SMIC는 이후 수년간 기술적 정체기에 빠져들었다. 40나노와 28나노 미세화 문턱에서 번번이 수율 확보에 실패하며 글로벌 선두 그룹과의 격차는 끝없이 벌어지는 듯 보였다.
<량멍쑹의 반도체 삼국지>

수렁에 빠진 SMIC를 구원하기 위해 2017년 10월 등판한 인물이 바로 반도체 공정 분야의 세계적 석학, 량멍쑹(梁孟松) 박사였다. 그의 등장은 글로벌 반도체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인물 중심의 기술 이동사’를 완성시켰다.대만 국립성공대와 미국 UC버클리(지도교수: 핀펫 기술의 창시자 천밍밍 교수)를 졸업한 량멍쑹은 1992년부터 17년간 TSMC의 핵심 R&D를 주도했다. 그는 TSMC가 0.13마이크로미터 구리 배선 공정에서 세계 최강 IBM을 꺾고 세계 1위로 올라서는 데 결정적인 기술적 기여를 한 일등공신이었다. 500건이 넘는 핵심 특허를 쏟아내며 차기 R&D 수장으로 거론되었으나, 2006년 라이벌이었던 쑨위안청(孫元成)에게 부사장 자리를 내어주고 한직으로 밀려나자 2009년 모욕감을 안고 TSMC를 사직했다.

이후 량멍쑹은 한국의 삼성전자로 향했다. 대만 국립칭화대 교수직을 거치며 경업금지 기간을 우회한 그는 2011년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 부사장(CTO)으로 전격 합류했다. 당시 삼성은 20나노 평면 공정에서 심각한 병목현상을 겪고 있었다. 량멍쑹은 20나노를 과감히 건너뛰고 3차원 입체 소자 구조인 14나노 핀펫(FinFET) 공정으로 직행하는 승부수를 던졌고, 이를 완벽하게 성공시켰다. 삼성전자는 TSMC보다 먼저 14나노 핀펫 양산에 성공하여 애플의 아이폰6s에 들어가는 A9 AP와 퀄컴 칩의 수주를 독식하는 기염을 토했다.자존심에 치명타를 입은 TSMC는 량멍쑹을 상대로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제기했고, 대만 대법원에서 TSMC가 승소함에 따라 량멍쑹은 2015년 삼성전자를 떠나야 했다.

그의 다음 종착지가 바로 중국 SMIC였다. 2017년 SMIC 공동 CEO로 영입된 량멍쑹은 부임하자마자 실리콘밸리와 한국, 대만에서 축적한 모든 노하우를 쏟아부었다. 부임 300일 만에 그는 3%에 불과하던 SMIC의 14나노 공정 수율을 95% 이상으로 끌어올렸으며, 12나노, 10나노, N+1(1세대 7나노), N+2(2세대 7나노) 공정 로드맵을 단숨에 완성했다.대만 업계는 량멍쑹을 향해 "조국 대만(TSMC)을 배신하고 한국(삼성)을 거쳐 적성국(중국)에 기술을 팔아넘긴 배신자"라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나 량멍쑹 본인은 "오직 엔지니어로서 기술적 한계를 돌파하고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여정이었을 뿐"이라며 정치적 논란을 일축했다. 그가 거쳐 가는 곳마다 글로벌 파운드리의 패권 지도가 완전히 재편되는 '기술 유목민'의 파괴력이 입증된 셈이었다.

<ASML 반도체 노광장비>

반도체 미세공정에서 7나노 이하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파장이 13.5나노미터에 불과한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가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미국 정부는 2019년부터 네덜란드 정부와 ASML을 압박하여 최첨단 EUV 장비의 대중국 수출을 원천 차단했다.EUV가 없는 상태에서 SMIC가 7나노 ‘기린 9000s’ 양산에 성공한 비결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심자외선(DUV) 액침(Immersion) 노광 장비를 한계까지 쥐어짜 낸 '다중 패터닝(Multi-Patterning, SAQP)' 기술이었다.

기존의 DUV(파장 193나노미터의 불화아르곤 광원) 장비로는 단 한 번의 빛 조사(Single Exposure)로 7나노 수준의 미세 회로 선폭을 그릴 수 없다. 량멍쑹과 SMIC 기술진은 웨이퍼 위에 회로를 한 번 새긴 후, 박막 증착과 식각 공정을 반복하여 선폭을 절반, 다시 그 절반으로 쪼개는 더블 패터닝(SADP) 및 쿼드러플 패터닝(SAQP) 공정을 극한으로 적용했다.1회의 노광으로 끝낼 작업을 3~4회의 복잡한 추가 식각 및 증착 공정으로 대체하여 물리적 한계를 강제로 뚫어냈다.화웨이 산하 하이실리콘의 설계 인력과 밀착 협력하여, 공정의 물리적 한계를 소프트웨어적 회로 설계로 보완했다. 다이(Die) 간 연결 구조를 개선하여 칩의 면적 증가와 발열 문제를 패키징 단계에서 완화했다.

이 기술적 돌파구는 명백한 양날의 검이다. DUV를 이용한 다중 패터닝은 공정 단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생산 시간이 배 이상 소요되며, 마스크 어긋남에 따른 불량률이 치명적으로 높아진다. 당시 업계 분석에 따르면 SMIC 7나노 라인의 수율은 40~50% 수준에 불과했으며, 웨이퍼 장당 생산 단가는 EUV를 사용하는 TSMC 대비 최소 2배 이상 비싼 것으로 추정되었다.정상적인 시장 논리라면 막대한 적자로 인해 포기해야 마땅한 비경제적 공정이었으나,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보조금 지원과 화웨이라는 확고한 내수 고객이 있었기에 양산 유지가 가능했던 것이다.

SMIC는 미국의 강력한 봉쇄망 속에서도 첨단 7나노 칩을 찍어내며 중국 반도체 자립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축배를 들기에는 이들이 마주한 구조적 장벽이 너무나 높다. 첫째, 장비 및 부품의 물리적 고갈이다. 미국은 7나노 사태 이후 DUV 노광 장비와 첨단 식각·계측 장비에 대한 수출 통제 기준을 더욱 옥죄고 있다. 기존에 확보해 둔 외산 장비의 소모품 교체와 유지보수가 차단되면 라인 가동률 저하는 불가피하다. 둘째, 5나노 및 3나노 초미세공정 진입의 한계다. DUV 다중 패터닝으로 5나노 시제품까지는 억지로 구현할 수 있을지 몰라도, 수율과 상업적 채산성 측면에서 TSMC나 삼성전자와의 격차를 좁히기는 기술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MIC는 시진핑 주석의 확고한 비호 아래 28나노 이상의 범용(레거시) 공정 라인을 공격적으로 증설하며 글로벌 자동차·가전·전력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무섭게 잠식해 들어가고 있다. 최첨단 공정에서는 국가 안보용 칩을 생산하고, 범용 공정에서는 막대한 물량 공세로 글로벌 공급망을 장악하겠다는 '이원화 전략'이다. 대만 출신 창업주의 원한에서 출발하여, 삼성과 TSMC를 뒤흔든 천재 엔지니어의 야심을 품고, 마침내 시진핑의 국가적 야망과 결합한 SMIC. 이 기업은 단순한 반도체 파운드리를 넘어, 21세기 세계 패권을 둘러싼 미·중 테크 냉전의 가장 뜨거운 화약고이자 최전선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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