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출국하던 날, 새벽까지도 비가 내려 은근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연길 공항에 내렸을 땐 하늘이 맑았다. 가벼운 식물탐사로 첫날 일정을 마치고, 다음 날 일찍 백두산 꼭대기의 하늘 호수인 천지(天池)를 보기 위해 서파(西坡)로 향했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서파는 백두산 서쪽의 언덕이란 의미라고 했다. 가이드는 어제까지만 해도 비가 많이 와서 일주일 동안이나 통행로가 막혀 있었다면서 여러분은 정말 복 받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내가 생각하는 여행이란 일상의 자장이 미치지 않는 낯선 곳을 찾아서 그 장소만의 특별한 기운과 감동을 오감으로 느끼고 교감하는 것이다. 나는 막연하게 백두산은 한반도에서 제일 높은 산이니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만큼 우뚝 솟아있을 거라 상상했는데, 버스는 원시림이 우거진 숲속 도로를 하염없이 달릴 뿐 차창 밖으로는 산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들어보니 백두산 화산암 분포지는 약 3만㎢에 이르기 때문에 해발고도 1800m까지는 완만한 경사(8~12도)를 이루고 있는 방패 모양의 순상화산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자작나무와 침엽수가 우거진 삼림을 끼고 얼마만큼 달렸을까, 타고 간 버스에서 내려 순환버스를 갈아타고 30여 분을 달렸다. 중간 주차장에서 또 한 번 버스를 바꿔 타고 숲길을 달린 뒤에야 마지막 주차장에 도착했다. 지나는 길섶엔 말나리랑 나리꽃, 자주꽃방망이, 꿩의다리 등 수많은 꽃이 피어 있어 가도 가도 꽃길의 연속이어서 지루할 틈이 없다.
이미지 확대보기
이미지 확대보기
이미지 확대보기
이미지 확대보기
이미지 확대보기
이미지 확대보기
이미지 확대보기주차장에서 차를 내리니 바람이 차다. 배낭에서 바람막이 옷을 하나 더 꺼내 겹쳐 입고 1442개의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나무 계단과 돌계단이 놓인 통로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어 그야말로 사람 천지다. 금매화, 비로용담, 호범꼬리, 두메구절초, 두메양귀비, 좀참꽃 등 다양한 꽃들이 지천이어서 천상의 화원이 따로 없는데 지정된 통로 외엔 갈 수가 없어 아쉬웠다. 꽃 사진을 찍으며 오르다 보니 어느새 붉은 글씨로 1442라 쓰인 마지막 계단을 밟았다. 러시아워의 지하철 안만큼이나 사람들로 북적이는 틈을 비집고 드디어 꿈에 그리던 천지를 보았다. 이중 화산의 외륜산에 해당하는 해발고도 2500m 이상 봉우리 16개가 둘러싸고 있는 천지는 마치 거대한 청동거울 같다.
칼데라 호수인 천지는 최대 너비 3.6㎞, 둘레 14.4㎞, 최대 수심은 384m에 이른다고 한다. 끝없이 불어오는 바람에 구름과 안개가 수시로 풍경을 바꾸어 놓는 천지를 바라보고 있자니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인지 쉽게 가늠이 안 된다. 그 푸른 물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기운을 오롯이 받고 싶어 다가서 보지만 번번이 사람들에게 떠밀려 인증샷 한 장 남기기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TV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마다 가슴 벅차게 했던 천지의 모습을 이렇게라도 오롯이 직관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아쉬웠던 것은 연길공항에서 백두산 천지에 오르기까지 어딜 가나 백두산이 아닌 장백산이라 쓰여 있었다는 점이다. 마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홍길동처럼 백두산을 크게 한 번 소리쳐 외치고 싶었던 건 비단 나뿐이었을까.
이미지 확대보기백승훈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