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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홍릉수목원의 복수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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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릉수목원의 복수초, 백승훈 시인
우수(雨水) 지나니 개울물 소리가 한결 명랑해졌다. 입춘이 마음에 봄을 세우는 시기라면 우수는 봄기운이 물처럼 몸을 흐르기 시작하는 때라 할 수 있다. 겨우내 꽁꽁 얼어붙었던 계곡물도 소리 내어 흐르기 시작하고, 선잠을 깬 버들강아지도 하나둘씩 고개를 내미는 것도 우수 무렵이다. 복수초를 보기 위해 홍릉수목원에 다녀왔다. 홍릉수목원에 복수초가 피었다는 소식을 처음 접한 것은 입춘이 막 지났을 때였다. 그런데도 우수가 지나서야 뒤늦게 찾아간 것은 순전히 나의 게으름 때문이었지만, 복수초는 그런 나를 나무라지 않고 황금잔 같은 노란 꽃잎을 활짝 펼치고 반겨주었다.
복수초는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가장 먼저 꽃망울을 터뜨려 봄소식을 전하는 새해를 희망으로 열어가는 선물 같은 꽃이다. '복수초(福壽草)'란 이름 속엔 '복 많이 받고 오래 살라'는 사람들의 소망이 담겨 있다. 아직 눈이 남아있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복수초는 꽃을 피운다. 옛사람들은 그 고고한 멋스러운 꽃을 '눈밭의 연꽃'이라 하여 '설연화(雪蓮花)'라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차디찬 흰 눈 속에 핀 복수초를 만나는 행운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복수초는 씨앗이 싹을 틔우고 6년가량 지나 꽃을 피우므로 기상 조건과 개화 시기 등 모든 조건이 맞아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영원한 행복'이란 꽃말을 지닌 복수초는 요즘은 원예종으로 개량되어 가까운 꽃집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꽃이 되었다.

사각의 나무 울타리가 쳐진 복수초 군락지엔 많은 사람이 카메라를 들고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다. 목책 안엔 황금 술잔을 닮은 복수초가 만개하여 노란 봄빛이 가득하다. 사람들 틈에 끼어 부지런히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꽃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의 얼굴이 화사하다. 높은 산에 올라 야생에서 만나는 꽃만큼의 감동은 아니더라도 겨우내 꽃에 허기진 마음을 달래기엔 부족함이 없다. 한나절 꽃을 보아도 질리지 않을 듯한데 꽃이 피어있는 장소가 협소하다 보니 마냥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수목원을 거닐며 봄을 기다리는 나무와 나무 사이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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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초 꽃을 보았다고 세상의 풍경이 갑자기 달라지진 않는다. 수목원의 나무도, 숲도 여전히 겨울빛을 머금은 채 고요하긴 마찬가지다. 달라진 것은 바쁘게 꽃나무 가지를 살피는 내 눈길과 꽃을 본 뒤 내 안에 일기 시작한 까닭 모를 설렘이다.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라 했던 어느 시인의 말처럼 꽃의 시간은 매우 짧다. 하지만 꽃 한 송이 피우기까지 무려 6년을 인내한 복수초를 생각하면 무심히 꽃을 바라볼 수가 없다. 우리는 저마다의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 심리학에서는 우리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저마다 처한 상황과 각자의 프레임을 통해 해석한다고 말한다. 꽃을 보는 일은 익숙한 일상을 다른 프레임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느릿느릿 더디게 오는 봄은 무언가를 바라보는 계절이다. 마른 가지에 새 움이 트는 것을 바라보고, 언 땅을 뚫고 솟아난 초록 새싹과 새로 피어난 꽃을 바라보는 계절이 봄이다. 꽃을 보는 시간은 꽃을 핑계로 소란스러운 사람의 거리를 떠나 꽃보다 아름다운 자신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꽃은 보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을 주지만, 그 꽃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마음 뜨락에 핀 꽃까지 발견할 수 있다면 더없는 행복이 될 것이다. 이제 복수초가 만개했으니 다투어 다채로운 꽃소식이 날아들 것이다. 가시밭길을 걸어도 꽃을 보고 걸으면 꽃길이 된다고 했다. 세상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고 들판 가득 꽃을 피우며 다가오는 봄, 새봄엔 향기로운 꽃길만 걸을 수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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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백승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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