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후생노동성 중앙최저임금심의회는 4일 전국 평균 시급 기준 최저임금을 현재 1055엔(약 9909원)에서 1118엔(1만501원)으로 63엔(약 592원)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금액과 인상률 모두 현재와 같은 집계와 조정 방식이 도입된 2002년 이후 최대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최저임금 결정에 대해 “(일본 정부의)목표를 고려하고 데이터에 근거한 진지한 논의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일본이 전국 평균 임금 1500엔이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연평균 인상률 7.3%가 필요하다. 이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향후 이를 달성하기 위해 더 노력하겠다는 입장도 보였다.
이런 흐름은 산업 전체에 퍼지고 있다. 올해 일본 춘계 노사 협상에서 임금 인상률은 평균 5.25%를 기록했다. 33년 만에 최고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가리지 않고 실질임금이 상승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일본이 파격 수준의 임금 인상을 결정한 것은 오랜 기간 동안 일본을 괴롭힌 디플레이션을 극복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로 해석된다. 일본 정부는 2020년대에 최저임금을 전국 평균 1500엔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임금과 물가의 선순환’을 목표로 삼고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하겠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의지다.
일본에서는 그간 임금이 물가 상승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디플레이션 압박이 심화됐다. 후생노동성 5월 근로통계조사에 따르면 직원 5명 이상 업체 근로자 1인당 평균 명목임금은 월 30만141엔으로 1년 전보다 1.0% 느는 데 그쳤다. 물가 변동을 고려한 실질임금은 1년 전보다 2.9% 줄어 5개월 연속 감소했다. 실질임금 감소폭은 2023년 9월 후 최대였다.
최저임금뿐만 아니라 실질임금이 상승하는 흐름을 보이면서 일본은 최대 경제 현안인 디플레이션 극복에 한 걸음 다가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결정으로 일본의 최저임금이 한국을 다시 앞지르게 됐다. 일본의 새 최저임금에 환율을 적용하면 내년 한국 최저임금인 시간당 1만320원보다 180원가량 많다. 우리나라는 이미 2026년 최저임금을 1만30원에서 290원(2.9%) 올리기로 결정했다. 2023년 역전된 최저임금은 일본이 다시 우리나라를 앞서게 됐다.
이는 단순히 ‘일본이 우리나라를 앞섰다’는 상징적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비정상적 임금 체계의 정상화’를 선언한 것이다. 일본의 임금체계가 정상화되면 그동안 제조업 인건비 격차로 우수한 인력을 확보한 우리나라에 적지 않은 파장을 미칠 전망이다. 산업과 제조업 부문에서 인프라와 기술이 탄탄한 일본의 ‘자국 내 생산’이 매력적인 글로벌 경제 키워드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우리나라의 산업 약화로 이어진다. 한국 노동시장에 적지 않은 압박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일본이 임금 주도 성장을 기치로 정밀가공, 자동차 부품 등에서 두각을 드러낼 경우 우리나라 수입이 증가하고 수출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잃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일본이 생산 시장으로서 매력을 키우면 투자 자본 이동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나라도 일본과 단순히 임금 경쟁만 벌일 게 아니라 일관성과 철학을 겸비한 정책 속에 새로운 임금 구조를 마련하는 게 절실한 시점이다.
이용수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iscrait@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