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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구독 시대, '구속 경제' 경보음

글로벌이코노믹 김지유 기자
글로벌이코노믹 김지유 기자
"거기 내 정보가 다 있어서 끊고 싶어도 쉽게 끊을 수가 없다." 한 콘텐츠 플랫폼 구독 서비스 이용자의 하소연이다.
최근 OTT·음악·전자책뿐 아니라 인공지능(AI) 모델·클라우드·배달 멤버십 등 다양한 구독 서비스가 일상에 자리 잡았다. 서비스 자체의 콘텐츠에 더해 관련 기록과 개인화된 데이터 아카이브, 이용 패턴 등이 얽히면서 다른 플랫폼으로 옮기기 어려운 구조가 형성됐다. 구독의 편리함이 어느새 '디지털 족쇄'로 변하고 있는 모양새다.

구독 경제는 한때 기존 매매 방식의 가격 부담을 덜어주는 혁신 모델로 주목받았다. 넷플릭스가 월정액 스트리밍으로 미디어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꾼 뒤, 모빌리티·가전·자동차·식품까지 다양한 생활 전반으로 확산됐다. 국내 시장은 2020년 40조 원에서 올해 100조 원에 이를 전망이며, 글로벌 규모는 내년 200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급성장과 함께 소비자 피로감도 커졌다.

소비자들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 사용량에 따라 해지와 재가입을 반복하는 '구독' 노마드 전략을 택한다. 저가 요금을 적용받기 위해 VPN 우회를 활용하는 사례도 많다. 이에 기업은 계정 공유 단속과 자동 갱신 강화로 대응한다. 무료 체험 후 자동 유료 전환, 탈퇴 버튼 숨기기 등 해지를 어렵게 만드는 '다크 패턴'도 활용한다. 이는 2024년 CHI 학회에서 'Staying at the Roach Motel' 논문을 통해 지적됐다.
핵심 쟁점은 데이터 이동성이다. 구독을 옮기고 싶어도 개인 데이터가 묶여 있으면 사실상 이동이 불가능하다. 현재 소비자가 데이터를 자유롭게 이전할 권리는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다.

유럽연합은 GDPR로 데이터 이동권을 제도화했고, 오는 9월 발효되는 데이터법(Data Act)을 통해 이를 B2B·IoT 분야까지 확대한다. 미국 캘리포니아도 2020년부터 CCPA를 시행해 소비자가 기계 판독 가능한 형태로 데이터를 내려받을 권리를 명문화한 바 있다. 반면 한국은 정기 결제 사전 고지 요구와 다크 패턴 단속 등 절차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본인전송요구권'을 준비 중이지만 아직 초기 단계다.

여기에 구독료 인상이 더해져 비용 이점도 줄어들어 불만을 키운다. 한국 유튜브 프리미엄 요금은 2023년 한 해 약 42% 상승했다. 쿠팡 와우 멤버십도 출시 당시 2990원에서 7890원으로 약 163%가 올랐다. 마이크로소프트는 M365에 AI '코파일럿'을 포함하며 관련 한국 개인용 요금을 40% 인상했다.

데이터 이동권과 소비자 선택권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면 구독 경제는 언제든 '구속 경제'로 전락할 수 있다. 기업의 로크인(lock-in) 전략과 국가 규제 사이 균형을 찾지 못한다면, 구독 경제의 성공 신화는 곧 피로와 반발로 되돌아올 것으로 보인다.

김지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tainmain@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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