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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해맞이로 새해를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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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계묘년 새해 첫 아침, 해맞이를 위해 이른 새벽에 도봉산으로 향했다. 해가 바뀔 때면 일부러 해돋이 명소를 찾아 먼 길을 떠나기도 했는데 올해는 집에서 가까운 도봉산에서 해맞이를 하기로 했다. 잠시 잠깐의 일출을 보기 위해 먼 길을 오가는 수고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몸이 요령을 피우기 시작하면 나이 든 탓이라던데 나도 나이가 들긴 드는 모양이다. 채 어둠이 물러가기 전인데도 도봉산 입구 등산로는 이미 해돋이 인파로 넘쳤다. 사람들 사이에 끼어 어둠을 밟아 산을 오른다. 눈에 제대로 보이는 게 없는 어슴푸레한 여명만 있는 새벽,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걷다 보니 나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져서 나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게 쉽지 않다. 길을 안내하는 안전요원이 길목마다 배치되어 있었지만 인파에 떠밀려 걷다 보니 그들이 없어도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하지만 눈이 녹지 않은 길은 미끄럽고 가파른 산길에 금세 숨이 가빠 온다.

도봉산 해맞이 행사가 열리는 자운봉 아래 자리한 천축사는 일출을 보려고 몰려든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겨우 자리를 잡고 서서 해가 떠오를 동쪽 하늘을 주시한다. 일출은 태양이 수평선 위로 솟아오르는 순간을 가리키는 기상 용어다. 지구의 자전에 의해 날마다 나타나는 현상임에도 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해돋이 명소를 찾아 떠오르는 해를 보며 소원을 빌고 기도를 한다. 해맞이는 동양사상과 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자 동(東)을 파자하면 ‘날 日’과 ‘나무 木’이 된다. 나무 사이로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형상화한 게 동(東)자다. 그러므로 해가 솟는 동쪽은 생명이 잉태되고, 탄생하고, 만물이 생동하는 방향이다. 주역에서도 ‘東’은 만물의 시초이며, 생명의 탄생을 의미한다. 더욱이 동양사상에서 태양은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한 양기 덩어리이니 너도나도 일출을 보며 새해 소망을 기원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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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은 바다에서 보는 오메가 일출을 으뜸으로 치지만 산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는 감동도 그에 못지않다. 예로부터 산은 하늘의 신성한 기운이 내려오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신령스러운 기운이 감도는 산에 올라 해맞이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큰 축복을 받은 셈이다. 둥둥둥 북이 울리고 사람들이 목청 높여 숫자를 헤아린다. 수묵화처럼 산의 윤곽만이 하늘과 경계를 나누던 동쪽 하늘에 붉은 기운이 번지는가 싶더니 마침내 해가 솟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지른다. 나도 모르게 박두진의 시를 입속에 넣고 혀를 굴렸다.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천천히, 그러나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떠오른 해는 희망과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며 해맞이 나온 사람들의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흔히 일몰은 경건함과 위안을, 일출은 장엄함과 생명의 기운을 인간에게 준다고 한다. 한동안 넋 놓고 솟아오른 해를 바라보며 가슴에 품고 온 새해 소망을 빌었다.

어느 시인은 “해가 바뀐다는 것은/ 껍질을 한 꺼풀 벗는 일이다.// 사위어 드는 아픔 속에서/ 목숨을 태우는 양초의 심지가/ 또다시 한 매듭 줄었다는 얘기다”라고 했다. 나누어주는 떡국을 먹기 위해 장사진을 이룬 사람들 틈을 벗어나 산을 오르기로 마음을 굳히고 마당바위를 향했다. 눈 덮인 가파른 산길을 오르며 숨이 가빠 올 때마다 한 매듭 줄어들었을 내 생의 심지를 생각했다. 지난해에도 두 번이나 올랐던 산이기에 그리 두렵진 않았으나 눈이 덮이고 얼어 있어 오르는 길이 여간 만만치 않다. 오르는 길이 가팔라 힘에 겨우면 잠시 쉬기도 하며 나만의 속도로 신선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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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 바람은 시리도록 차지만 어느새 높이 솟은 해는 누리 가득 은빛 햇살을 쏟아붓고 있다. 새해 아침, 산에 올라 붉은 해를 가슴에 품어 안고 신성한 산의 기운도 받았으니 올 한 해는 거뜬히 살아낼 수 있을 것도 같다. 허덕이며 살아온 지난날 툭툭 털어버리고 비록 지금 힘들지라도 희망을 노래하는 새해가 될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사진없는 기자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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