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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설산을 오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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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이른 아침 창문을 열고 도봉산을 바라본다. 밤새 눈이 내려 희끗희끗한 눈을 이고 선 바위 봉우리가 듬직하면서도 신성하게 느껴진다. 티끌만 한 번뇌도 붙을 틈이 없을 듯한 청정한 이미지의 설산과 마주하는 순간 문득 산에 가고 싶어졌다. 옷을 단단히 차려입고 작은 배낭 하나 메고 산으로 향했다.

뺨을 스치는 바람이 맵다. 숲길로 들어서니 청정한 겨울의 숨결이 서늘하게 가슴을 훑고 지나간다. 이 차고 정(靜)한 맑은 기운은 겨울, 그것도 눈 내린 숲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각별한 기쁨이다. 앞서간 사람들의 발자국들이 혼자 산을 오르며 자칫 쓸쓸해지기 쉬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숲속에도 작은 산짐승들의 발자국이 눈에 띈다. 살아있는 것은 모두 흔적을 남긴다. 그런 면에서 발자국은 살아있다는 징표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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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무는 한 해의 끝에서 눈 내린 산을 오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눈길을 걷다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뒤돌아보면 내가 걸어온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 잠시나마 뒤돌아볼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사람들은 살아갈수록 삶이 녹록하지 않다. 많은 사람이 삶이 너무 팍팍해서 자신을 돌아볼 틈조차 없다고 한다. 하지만 원래 삶이란 늘 힘겹고 세월은 쏜살같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 다만 그렇게 흘러가는 삶 속에서 잠시라도 자신을 뒤돌아볼 시간을 갖는 게 중요하다. 뒤돌아보면 우리가 놓치고 살았던 행복한 순간들이 하늘의 별만큼이나 무수히 박혀 있음을 알게 된다. 일상에 부대끼며 정신없이 사느라 까맣게 잊고 있었던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 눈 덮인 산길을 걷다 보면 절로 그런 순간이 축복처럼 찾아온다.

날마다 오가던 길도 눈이 쌓이면 처음 걷는 길처럼 낯설고 서툴게 마련이다. 특히나 눈 쌓인 산을 오르는 일은 훨씬 힘들고 어렵다. 발은 푹푹 빠지고 자칫하면 미끄러져 넘어지기 쉽다. 흔히 산을 오르는 일을 인생에 비유하는 것은 어느 산길이나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가파른 비탈을 오를 때는 숨이 차고 힘이 들지만, 경사도가 완만하거나 내리막을 걸을 때는 힘들었던 순간을 잊어도 좋을 만큼 편안하고 수월하다. 세상이 흰빛에 고요에 싸여 적막한 겨울 산에서 뒤를 따라오는 자신의 발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라. 한 걸음 한 걸음 떼어놓는 일이 수행처럼 느껴지고 남은 날들을 성실하게 살아야겠다고 마음속 다짐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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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린 다음 날은 거지가 빨래한다는 속담이 있을 만큼 기온이 따뜻하기 마련인데 요즘 날씨는 그런 예상을 여지없이 뒤엎는다. 정상을 오를 생각으로 집을 나선 것도 아니었지만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에 북한산의 전경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곳에서 일단 산행을 멈추었다. 전망이 좋은 곳을 골라 눈 덮인 북한산과 도봉산의 봉우리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방학 능선에 올라 북한산을 카메라에 담으며 깨달은 것은, 숲을 온전히 보려면 숲을 벗어나야 하듯이 산을 제대로 보기 위해선 그 산에서 적당히 떨어져 바라봐야 한다는 사실이다. 비단 숲이나 산뿐이랴. 우리들의 인생도 가끔은 몇 걸음쯤 벗어나서 바라보는 순간이 필요하다.

이제 다사다난했던 2022년도 노루 꼬리만큼 남았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경기 침체로 저마다 힘들고 어려웠지만 잘 견디며 여기까지 왔다. 반칠환 시인은 ‘새해 첫 기적’이란 시에서 이렇게 말했다.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라고. 시인의 말처럼, 혹은 온 산을 뒤덮은 눈처럼 새해는 모두에게 한날한시 공평하게 다가올 것이다. 새해를 맞이하기 전 설산에 올라 자신을 돌아본다면 가장 어두운 밤이 가장 밝은 별을 만드는 것처럼 올해가 힘들었던 사람에겐 더욱 큰 희망의 새해가 될 것이라 믿는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사진없는 기자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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