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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눈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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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또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삼백예순다섯 날을 선물처럼 받았던 새해를 맞이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세모(歲暮)의 끝자락을 밟고 서 있다. 저문다는 것은, 빛이 사라진다는 것. 나를 비추던 빛이 점점 사라져서 끝내는 캄캄한 어둠 속으로 침잠한다는 말이다. 물처럼 흐르는 세월 속에 사람들이 쓸데없이 눈금을 그려 넣어 시간을 분절해 놓은 바람에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세모의 끝에 서면 가슴이 휑해지곤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자칫 쓸쓸해지기 쉬운 12월이 끝이 아니라 얼마 남지 않은 한 해가 저물면 선물처럼 또 다른 새해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뺨을 스치는 바람은 차고, 잎을 떨군 나무들이 빈 가지 끝으로 하릴없이 찬 하늘만 비질하고 있는 겨울, 나는 아이처럼 눈을 기다린다. 꽃들이 모두 사라진 겨울, 모든 나무가 함께 피우는 눈꽃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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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온난화의 영향 때문인지 겨울이 되어도 근래에는 좀처럼 눈이 내리지 않는다. 겨울이 되어도 기온은 온화하고 눈이 내리지 않아 스키장이 개장을 늦추고, 얼음이 얼지 않아 겨울 축제도 열지 못한다는 뉴스가 낯설지 않은 게 현실이다. 어린 시절엔 겨울이면 눈이 참 많이도 내렸다. 자고 일어나면 온 세상이 흰 눈에 덮여 있는 풍경은 얼마나 눈부셨는지 모른다. 눈을 치우는 아버지를 따라 마당의 눈을 치우고, 곱은 손을 호호 불며 마을 길을 쓸곤 했다.

자연주의 삶을 지향했던 미국 동화작가이자 삽화가인 타샤 튜더의 책 속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나는 눈을 치우지 않는다. 그건 시간 낭비다. 그냥 눈 속을 걸어 다니며 길을 낸다. 눈이 올 때 장화를 신지 않고도 헛간에 가서 염소젖을 짜고 일을 마칠 무렵 얼른 집에 가서 흔들의자에 앉아 무릎에 코기를 앉히고 따뜻한 차를 마실 때의 흐뭇함이란! 요즘 사람들은 너무 정신없이 산다. 카모마일차를 마시고 저녁에 현관 앞에 앉아 개똥지빠귀의 고운 노래를 듣는다면 한결 인생을 즐기게 될 텐데…."

눈이 내리면 타샤 할머니의 낭만과 여유를 즐겨보고도 싶은데 눈은 내리지 않고, 그녀의 말처럼 우리는 너무 정신없이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싶다. 어쩌다 한 번 하늘이 깜짝 이벤트처럼 눈을 뿌려도 우린 눈 내린 풍경을 감상할 여유도 없이 눈이 내리기 무섭게 염화칼슘을 뿌려대고 남보다 앞서가기 위해 늘 종종걸음을 치며 살아온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눈이 내리면 사람의 마을 쪽으로 난 길을 버리고 산으로 가는 길을 택해 걷고 싶다. 숲길을 따라 걸으며 나무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보고 싶다. 떡갈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 밤나무. 이깔나무. 너도밤나무. 소나무. 잣나무. 전나무. 노간주나무. 생강나무. 물푸레나무. 쪽동백나무. 오리나무. 사시나무. 싸리나무. 찔레넝쿨. 청미래넝쿨……. 눈을 이고 선 나무들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며 수피를 쓰다듬다 보면 나도 그들과 한 빛깔로 어우러질 수 있을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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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눈에 덮인 차고 정(靜)한 숲길을 따라 걸으며, 나를 돌아보고 나무들의 겨울눈처럼 새로운 희망을 세울 수 있다면 추운 겨울도 견딜 만하지 않을까 싶다. 법정 스님이 말하길 "개인이든 집단이든 삶에는 즐거움이 따라야 한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즐거움은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 긍정적인 인생관을 지니고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올겨울 몇 번이나 더 눈이 내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춥고 삭막해지기 쉬운 겨울이지만 눈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순수와 희망을 간직하고 살아야겠다. 비가 오면 비에 젖고, 눈이 오면 눈을 맞는 나무처럼 가슴속에 희망이란 겨울눈을 품고 이 추운 계절을 건너가야겠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사진없는 기자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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