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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겨울 청평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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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12월의 첫 주말, 첫눈이 내렸다. 이른 아침, 도봉산의 안부가 궁금하여 창문을 열어젖혔을 때 눈앞에 순백의 세상이 환하게 펼쳐져 있었다. 초등학교 운동장을 하얗게 덮은 첫눈을 보니 갑자기 찾아든 한파 때문에 꽁꽁 닫았던 창문처럼 단단히 걸어 잠갔던 마음의 빗장이 한순간에 풀리는 듯하다.

정호승 시인은 ‘첫눈 오는 날 만나자’란 시에서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라고 노래했다. 그의 말처럼 ‘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것과 눈 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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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리면 어른이나 아이나 모두가 순수해진다. 꽃들이 사라진 혹한의 계절 속에 피는 눈꽃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눈이 내린 날은 숲으로 가서 나무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진다. 잎을 모두 내려놓은 가지마다 하얗게 눈꽃을 피우고 있는 나무들을 바라보면 자연의 경이로움에 절로 몸도 마음도 경건해지는 기분이 든다. 눈 내린 숲에 가지 못한 아쉬움을 며칠 전 다녀온 춘천 청평사의 기억으로 달래 본다. 한순간에 세상의 풍경을 바꾸어 놓는 눈처럼 따분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훌쩍 떠날 수 있는 곳이 춘천이 아닐까 싶다.

춘천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여행지 가운데 하나가 북산면 오봉산 자락에 자리한 청평사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생활의 발견>에서 주인공 경수(김상경)가 남루한 일상을 벗어나 홀로 떠나간 첫 번째 여행지가 춘천 청평사였다. 아침 일찍 청량리에서 기차를 타고 춘천역에 내려 버스로 30분을 달린 뒤, 다시 배를 타고 10여 분 호수를 거슬러 올라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라서 여행의 맛이 남다른 곳이다. 영화 <생활의 발견>에선 청평사로 향하는 배를 타고 가며 청평사 회전문에 얽힌 전설만 듣고 청평사를 코앞에 두고 돌아서지만, 우리는 계곡의 물소리를 벗 삼아 낙엽이 쌓인 산길을 걸어 무탈하게 청평사의 회전문을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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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사 회전문에 깃든 전설은 중국에서 당 태종의 딸을 사랑한 평민이 상사뱀으로 환생한 이야기다. 당 태종은 자기 딸을 사랑하는 청년을 무참하게 죽였고, 청년은 뱀으로 환생하여 사랑하는 공주의 몸을 칭칭 감고 떨어지지 않았다. 한 스님으로부터 고려의 청평사에 가면 뱀을 떼어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청평사로 간 공주는 뱀에게 기도하고 오겠노라며 청평사로 갔다. 오지 않는 공주를 기다리다 지친 뱀이 공주를 찾아 청평사에 들어서다 회전문 앞에서 벼락을 맞고 폭우에 떠밀려 죽고 만다. ‘청평사의 보물’ 회전문(廻轉門, 보물 164호)의 ‘회전’은 ‘윤회전생(輪廻轉生)’의 줄임말로 윤회의 이치를 상징한다.

선착장에서 배를 내려 청평사에 이르는 숲길 곳곳엔 청평사 전설 속 공주와 뱀의 조각상과 거북바위, 구송폭포, 삼층석탑 등이 늘어서 있다. 공주와 상사뱀의 애틋한 전설이 깃들어 있어서일까. 평일인데도 간간이 연인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사랑도 도를 넘어 지나치게 집착하면 상사뱀처럼 괴물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영화 속엔 이런 명대사가 나온다. “우리 사람 되기는 힘들어도 괴물은 되지 말고 살자.” 괴물이 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나무처럼 사는 일이다. 한 번 뿌리내리면 죽는 날까지 그곳을 떠나지 않고 하늘을 우러르며 사는 착한 나무처럼 살면 절대 괴물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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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사에서 수령 800년 된 주목을 보았고, 숲길 어디쯤에선가 자작나무 숲을 만났다. 추위가 매서워질수록 흰빛을 더하는 자작나무 숲을 거닐며 나는 조이스 킬머의 ‘나무들’이란 시와 곽재구 시인의 ‘나무’의 시를 주문처럼 읊조렸다. “시는 나 같은 바보에 의해 쓰여지지만/ 나무는 하느님만이 만들 수 있네” “… 이렇게 등이 굽지 않은/ 言語들은 처음 보겠구나//이렇게 사납지 않은/마음의 길들은 처음 보겠구나…”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사진없는 기자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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