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의 갑작스런 비상계엄으로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기업들이 밤잠을 못 이룬 채 파장을 예의주시했다.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일원으로 전세계에서 경제활동을 벌여온 한국이 이번 사태로 대외 신인도가 나빠지면 기업의 경영 불확실성이 가중되기 때문이다. 내년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른 '한미관계가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도 나오면서 한미 간 통상 외교에도 변수가 생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4일 재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경영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는 등 분주히 대응했다. SK그룹은 이날 오전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 주재하는 경영진 회의를 열고 향후 영향과 대응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LG그룹은 계열사별로 회의를 열고 해외 고객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무역협회 등 경제단체도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긴급 회의를 열었다.
비상계엄이 6시간만에 해제됐지만 재계가 긴박하게 대응한 이유는 불확실성 때문이다. 비교적 안정적인 정치 체제를 갖췄다는 한국의 ‘대외 신인도’가 나빠지면 경영자와 투자자들이 한국 시장에 투자하는 것을 망설인다. 실제 비상계엄이 선포된 후 한국 기업들의 주가와 원화 환율이 출렁였다. 해외 시장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의 경영계획에 영향이 불가피해진다.
한 재계 관계자는 “다수의 기업들이 해외 시장에 진출한 만큼 국내 반응보다는 장기적으로 해외 국가와 기업들이 한국을 어떻게 평가할 지를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해외 고객과 투자자 등 이해관계자들의 반응과 환율 영향 등을 점검하고 있다”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신뢰가 지속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전했다.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한국에서 비상계엄이 선포된 데다 이를 미국에 미리 통보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미동맹의 불확실성이 나타났다. 뉴욕타임스는 3일(현지 시각)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로 미국과 한국의 동맹이 수십 년만에 최대 시험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무역적자에 따른 관세 부과와 대중(對中) 수출통제 조치에 관한 한국의 통상 협상력이 불리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관세는 한국 수출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약화하고 원활한 통상무역을 방해한다. 대중 수출통제는 중국이라는 판매시장 뿐만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에 차질을 초래한다. 최근에는 미국의 대중수출 통제 품목에 고대역폭메모리(HBM)을 추가하면서 우방 30여 곳을 예외 국가로 지정했지만 한국은 예외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통상외교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이번 비상계엄 사건이) 한미 간에 있던 관세와 환율조작국 지정 등의 이슈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여지가 열려있다”며 “(수출기업에 직접 영향을 주는) 환율은 시장 심리가 안정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데다 (윤 대통령) 탄핵도 거론돼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승현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rn72benec@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