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형식승인제도 강화 이후 제작기간 대폭 증가
문제의 근본 배경에는 2014년 철도안전법 개정에 따라 도입된 철도차량 형식승인제도가 있다. 기존 3단계(설계승인 → 초도제작, 검사, 시운전 → 양산)였던 승인 절차가 8단계(설계적합성 → 초도제작 → 형식승인 → 제작자 승인 → 양산제작 → 완성검사 → 납품 등)로 대폭 강화되면서 차량 제작기간이 평균 12~15개월 늘었다. 실제로 고속철도차량의 경우, 납품까지 36개월이 걸리던 것이 49개월로 늘었고, 간선형 EMU(전기동차)도 32개월에서 33개월로, 그리고 도시형 전동차 역시 29개월에서 32개월로 증가했다.
이 과정에서 승인기관인 한국철도기술연구원 1곳에 철도차량 형식승인·검사 업무가 집중되며 병목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승인 장비와 인력 부족으로 각 단계별 지연이 연쇄적으로 발생하고, 한 단계라도 일정이 밀리면 전체 납품이 연달아 늦어지는 구조적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 노후차량 운행 연장, 국민 안전성 우려
지속적인 납품지연은 철도차량 제작 3사(현대로템, 다원시스, 우진산전)와 협력업체의 경영난을 심화시키고 있다. 서울시 등 주요 발주처는 지체상금(납기지연 벌금)만 1200억 원 이상 부과했으며, 단일 계약에서 수백억 원대 벌금이 발생한 사례도 있다. 그러나 발주기관은 여전히 생산능력과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촉박한 납기 일정을 고수하고 있어, 제작사와의 갈등과 소송도 이어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형식승인제도가 도입된 이후 행정적 절차와 중복된 단계로 인해 예측 불가한 비용과 장기화된 제작기간이 불가피하다"고 토로한다. 또, "생산설비 부하율이 이미 높아진 상황에서 대규모 발주가 쏟아지면 납기 지연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며, "발주처가 제작사의 의견을 수용해 현실적인 납기 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형식승인제도에 따른 실질적 제작기간을 발주 일정에 반영하고 △형식승인·검사 인력과 장비 확충 △외부 요인(부품수급, 팬데믹 등)에 따른 유연한 계약기간 조정 △생산능력에 맞춘 합리적 발주계획 수립이 시급하다고 제안한다. 또한, 오송 철도차량시운전선 부족 등 인프라 병목 해소도 필요하다.
서울시의회 등에서는 "지체상금 부과만으로는 근본 해결이 어렵고, 시민 안전을 위해 연간 생산능력에 맞는 발주와 지연방지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업계에서는 "현실적인 제작기간 반영, 제도적 유연성 확보, 승인·검사 인프라 확충이 시급하다"며 "불가항력적 외부 요인에 따른 지체상금 면제와 계약 연장, 기술력 중심의 입찰제도 전환, 최소 발주 물량 보장, 협력사 지원 확대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또한 "쌓이고 있는 지체상금으로 인해 제작 업체들은 단기적인 자금난을 겪기도 한다"며 "이러한 문제는 제작사에 납품을 하는 중소 부품업체에 까지 영향을 미치는 만큼 합리적인 해결방안이 시급한 실정"이라고 현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이상훈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angho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