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세계 최대의 정보기술(IT) 제국 애플이 거대한 기로에 섰다. 스티브 잡스의 혁신 유전자를 이어받아 팀 쿡의 실용적이고도 치밀한 글로벌 공급망 경영 시대를 거쳐, 이제 애플은 새로운 사령탑을 맞이했다. 주인공은 바로 존 터너스(John Ternus) 신임 최고경영자(CEO)다.
지난달 팀 쿡의 뒤를 이어 애플의 지휘봉을 잡은 터너스는 최근 미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전 세계적인 메모리반도체 품귀 현상을 '절대적인 위기'로 진단하며, "모든 선택지를 탁자 위에 올려두고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이 발언은 단순한 수사적 표현을 넘어선다. 핵심은 바로 미국 정치권의 강력한 경고와 국가 안보적 압박에도 불구하고, 창신메모리(CXMT)를 비롯한 중국산 메모리반도체의 도입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이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하고 미 의회가 '중국산 메모리 미사용 서약'을 압박하는 상황 속에서, 애플의 최고경영자가 왜 하필 중국을 향한 손길을 거두지 않는 것인가. 존 터너스라는 인물의 궤적과 애플이 처한 거시경제적 현실, 그리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펼쳐지는 거대한 지정학적 줄다리기를 깊이 있게 조명해 볼 시점이다.
하드웨어 엔지니어링의 거장, 존 터너스는 누구인가
존 터너스는 스티브 잡스 생전의 애플 영광기와 팀 쿡 체제의 황금기를 현장에서 직접 이끌어온 하드웨어 엔지니어링의 적자(嫡子)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2001년 애플의 하드웨어 디자인 및 엔지니어링 팀에 합류한 이래, 애플의 성장을 상징하는 거의 모든 주요 제품군의 개발을 진두지휘해 왔다.
그의 이력에서 가장 눈부신 대목은 아이패드(iPad) 전 라인업의 성공적인 안착이며, 특히 혁신적인 초슬림 디자인과 고성능 하드웨어 아키텍처를 구현해 낸 주역이라는 점이다. 나아가 맥(Mac) 라인업 전반에 걸쳐 인텔 프로세서에서 독자적인 자체 칩셋인 '애플 실리콘(Apple Silicon)'으로의 전환을 완벽하게 주도한 인물이 바로 터너스다. 하드웨어의 성능과 효율성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데 탁월한 능력을 증명해 온 그는, 팀 쿡의 뒤를 이어 애플의 새로운 수장으로 낙점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기술적 권위를 지니고 있다.
타임지가 2026년 최고 발명품 특집호의 표지 모델로 그를 선정하며 애플의 첫 접이식(폴더블) 스마트폰 '아이폰 듀오'를 들고 있는 모습을 대서특필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터너스가 이끄는 애플이 하드웨어적 혁신과 폼팩터의 다변화를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러나 혁신을 향한 그의 엔지니어링적 야심은 현실의 거칠고 차가운 벽, 즉 '메모리 공급망 위기'라는 거대한 암초와 정면으로 부딪히고 있다.
왜 애플은 중국인가?
현재 글로벌 IT 산업을 뒤흔드는 가장 치명적인 변수는 단연 메모리반도체 대란이다. 인공지능(AI) 인프라의 폭발적인 확산과 데이터센터 증설 경쟁으로 인해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비롯한 첨단 반도체 품귀 현상이 심화되었고, 이는 범용 메모리 시장 전체의 가격 폭등과 수급 불균형으로 이어졌다. 프리미엄 스마트폰과 모바일 기기를 대량으로 생산해야 하는 애플로서는 부품 수급 차질이 곧바로 매출 타격과 직결되는 절대적인 위기 상황이다.
이러한 국면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기존 전통의 메모리 강자들만으로는 전 세계에 쏟아지는 애플 기기의 수요를 완벽하게 감당하기 어렵다. 대안을 찾아야 하는 애플의 시선이 닿은 곳은 역설적이게도 미국 정부가 가장 경계하는 중국, 그중에서도 급성장하고 있는 창신메모리(CXMT)다.
애플은 이미 CXMT의 메모리반도체를 자사 기기에 시험 적용하며 품질과 수급 가능성을 면밀히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용 효율성과 공급 다변화라는 기업의 생존 논리 측면에서, 거대 생산 기지이자 일정 수준 이상의 기술력을 확보한 중국산 메모리는 외면하기 힘든 유혹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거센 압박 속에서도 터너스가 "모든 선택지를 검토해야 한다"며 정면 돌파를 시사한 배경이 여기에 있다.
애플과 중국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은 유대
애플과 중국의 관계는 단순한 하청 생산 기지 이상의 깊은 역사적·경제적 맥락을 지니고 있다. 스티브 잡스 시절부터 폭스콘(Foxconn) 등을 통해 공급망의 중추를 중국에 구축해 온 애플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중국 노동력과 제조 인프라를 바탕으로 거대한 제국의 기틀을 다졌다.
나아가 중국은 애플에게 세계 최대의 소비 시장이자 막대한 이윤을 창출하는 핵심 요충지다. 팀 쿡 집행의장은 지난 8월 CEO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중국 시장의 중요성을 잊지 않고 직접 현지를 방문해 '아이폰 듀오' 및 신제품 촬영 현장을 찾았으며, 칭화대 경제관리학원 자문위원회에 참석하는 등 최고위급 인맥과 네트워크를 가동해 왔다. 쿡 의장이 중국 시장 판매용 기기에 한해 중국산 메모리를 사용하는 타협안을 제시하며 미국 정부 설득에 공을 들이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 정치권은 국가 안보와 기술 패권의 관점에서 중국산 반도체 배격을 외치고 있으나, 애플의 입장에서는 거대 시장인 중국 소비자를 만족시키고 공급망의 안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중국과의 끈을 쉽게 잘라낼 수 없는 구조적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이다.
새로운 사령탑의 결단, 그리고 다가올 미래
존 터너스 체제의 애플이 마주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기술 혁신을 상징하는 폴더블폰 '아이폰 듀오'를 세상에 선보이며 새로운 시대를 선언했으나, 그 기기를 구동할 핵심 부품인 메모리반도체의 조달이라는 기초적이고도 거대한 장벽 앞에서 국가 안보와 기업 생존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산을 마주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압박에 굴복하여 공급망을 폐쇄적으로 가져갈 경우, 심각한 원가 상승과 생산 차질이라는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반대로 CXMT 등 중국산 메모리를 전격 도입할 경우, 미 의회와 행정부로부터 불어닥칠 정치적 역풍과 규제의 칼날을 피하기 어렵다.
존 터너스가 내린 "모든 선택지를 검토하겠다"는 선언은 치밀한 엔지니어이자 실용주의적 경영자로서 내릴 수밖에 없는 고뇌에 찬 결단이다. 애플의 새 사령탑이 미·중 패권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이 공급망의 위기를 돌파해 나갈지, 그리고 그 선택이 글로벌 기술 질서에 어떠한 파장을 몰고 올지 전 세계의 경제·산업계가 숨을 죽인 채 주목하고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