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계 기간 4분의 1 단축 이면에 도사린 원작자 없는 회로 수렴 병목
- 수정 불가능한 실리콘 트랜지스터 특성상 인간의 아키텍처 통제 불가피
- 삼성전자 파운드리 위탁 생산 책임 전이 막을 사전 검증 기준 시급
- 수정 불가능한 실리콘 트랜지스터 특성상 인간의 아키텍처 통제 불가피
- 삼성전자 파운드리 위탁 생산 책임 전이 막을 사전 검증 기준 시급
이미지 확대보기인공지능이 반도체 설계 영역을 빠르게 장악하며 칩 개발 기간을 4분의 1 수준으로 줄여놓았지만, 최적화 과정에서 타인의 특허를 무단 복제해 수천 개 칩으로 확산시킬 수 있다는 경고가 기술 석학들로부터 나왔다.
기술 전문매체 톰스하드웨어는 2026년 10월 1일(현지시각) 설계 자동화 도구가 기존 문헌을 학습해 도출한 결과물이 특허 침해 분쟁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을 보도했다. 제조 공정이 완료된 실리콘 칩은 소프트웨어처럼 사후 패치를 통해 물리적 결함을 고칠 수 없는 만큼, 파운드리와 팹리스를 동시에 육성하는 한국 반도체 산업 생태계 전반에도 비상이 걸릴 수 있다는 관측이다.
설계 자동화 가속과 출처 입증 불가한 회로 수렴 병목
반도체 설계 시장에서는 수개월이 소요되던 고난도 회로 배치 작업을 자율 에이전트가 단숨에 끝내는 기술 혁신이 안착하고 있다. 글로벌 전자설계자동화 기업 시높시스는 반도체 검증과 구현, 아날로그 회로 설계를 수행하는 '에이전트엔지니어' 도구군을 선보이며 연내 정식 상용화 계획을 공개했다. 이미 50개 이상의 고객사와 실증 협력을 진행 중이다.
경쟁사인 코그니칩은 에이시아이 플랫폼을 통해 사양 정의와 레지스터 전송 레벨 생성부터 검증 계획과 테스트 환경 구성을 자동화했고, 중국 엠피리언 테크놀로지는 AI 에이전트를 도입해 통상 4주가 걸리던 회로 레이아웃 작업을 1주로 단축했다고 밝혔다.
오픈AI 역시 브로드컴과 손잡고 AI 모델을 활용해 자체 맞춤형 추론 칩인 '할라페뇨'를 초기 기획부터 시제품 생산 직전 단계인 테이프아웃까지 9개월 만에 끝마쳤다.
문제는 AI가 자율적으로 생성한 하드웨어 도면의 발상 출처를 사후에 증명하기 어렵다는 구조적 한계다. 반도체 산업은 중앙처리장치 아키텍처와 컨트롤러 등 핵심 블록을 외부에서 사오는 지식재산권 라이선스 거래 생태계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영국 암(Arm)의 경우 2026 회계연도 기준 50억 달러(약 6조 7500억 원)의 연간 매출을 기록했으며, 이 가운데 절반은 설계 자산 라이선스 판매에서, 나머지 절반은 칩 양산에 따른 로열티 수입에서 나왔다.
AI는 방대한 학술 논문과 특허 명세서를 흡수해 최적 설계를 도출하는데, 전력과 성능 그리고 물리적 면적 제약 속에서 가장 효율적인 회로를 찾다 보면 필연적으로 기존에 공지된 특허 설계와 동일한 결과물로 수렴할 확률이 높아진다.
도메네크 포르테 미국 플로리다대학교 교수는 의도적인 도용이 아니더라도 AI가 기존 특허와 유사한 결과물을 수천 개 칩에 퍼뜨려 양산 라인에 태울 위험이 상존한다고 짚었다. 인간 엔지니어는 발상의 계기와 라이선스 계약 경로를 서류로 입증할 수 있지만 AI는 그러한 추적성을 갖추지 못하며, 논리 합성 도구로 회로 외형 표현만 달라질 경우 침해 여부를 가려내기도 어렵다.
수정 불가한 하드웨어 한계와 아키텍처 인간 통제 원칙
반도체 공학 전문가들은 생산성 향상과 별개로 최종 아키텍처 결정권까지 AI에 넘겨주는 것은 위험하다고 선을 긋는다. 사이먼 무어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교수는 소프트웨어와 달리 한 번 제조 공정을 거쳐 출하된 실리콘 칩은 트랜지스터 배치를 물리적으로 바꿀 수 없다고 지적했다.
현재 반도체 개발 공정의 절반 이상이 검증 작업에 투입되는 현실에서 AI에 결함 탐색과 테스트 케이스 생성을 맡기는 것은 합리적이지만, 칩의 뼈대를 바꾸는 근본적인 아키텍처 결정 단계는 반드시 인간 엔지니어가 통제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검증 이력을 보증하는 기성 지식재산권 전문 기업들의 가치는 단기적으로 견고하게 유지될 전망이다. 암이나 시높시스가 파는 공인 블록은 설계 파일 자체뿐 아니라 엄격한 규격 적합성 검증과 법적 배상 담보를 함께 제공하기 때문이다.
포르테 교수는 지식재산권 보호를 위해 암호화 설계를 공유 저장소에 예치해 원본 노출 없이 중복 여부를 가려내는 기술 체계를 제안했다. 아울러 전자설계 지식재산권 암호화 표준인 국제전기전자공학자협회 1735 규약을 개정해 AI 에이전트가 자동화 설계 도구 안에서 학습하고 보존할 수 있는 데이터 범위를 규제하는 거버넌스 수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 파운드리 제조 책임 전이와 검증 가이드라인 과제
AI 설계 자동화가 몰고 온 특허 불확실성은 제조를 전담하는 위탁생산 파운드리와 독자 칩을 기획하는 팹리스 양대 축을 운영하는 한국 반도체 산업 생태계에 실질적인 운영 리스크로 작용한다.
팹리스 고객사로부터 도면을 넘겨받아 웨이퍼를 가공하는 파운드리는 전달받은 회로 자체의 특허 저촉 여부를 사전에 전수 조사하기 어렵다. 하지만 완제품 출하 이후 글로벌 특허 소송이 불거질 경우 생산 라인 가동 중단 요구나 수입 금지 처분 같은 물류 타격을 입을 수 있다.
한국 주요 기업의 제조 및 수주 현장에서도 사전 검증 비용 증가가 현실화되고 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는 첨단 2나노미터 공정에서 턴키 수주 경쟁력을 높이고자 '삼성 첨단 파운드리 에코시스템' 파트너십을 통해 엄격히 검증된 설계자산만을 공급해 왔다.
만약 고객사가 개발 기간 단축에만 치중해 검증되지 않은 생성형 AI 툴로 회로를 작성해 위탁 생산을 맡길 경우, 수율 저하뿐 아니라 사후 특허 분쟁에 따른 제조 책임 공방이 발생할 수 있다. 리벨리온과 퓨리오사AI 등 글로벌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는 한국 AI 반도체 팹리스 기업들 역시 미국 특허청 등록 특허들과의 비의도적 저촉 가능성을 사전에 입증해야 하는 추가 검증 비용을 짊어지게 된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특허청이 추진 중인 차세대 지능형 반도체 지식재산권 지원 사업과 연계해, AI 설계 도구 도입 시 출처 보증과 비침해 확인을 사전 평가하는 공인 기술 가이드라인 마련이 시급한 과제다. 다만 글로벌 거대 설계자동화 독점 기업들이 자체 도구 안에서 원천 특허 필터링 체계를 조기에 완성할 경우, 특허 리스크는 줄어드는 대신 한국 기업들의 해외 상용 툴 및 지식재산권 종속도가 한층 더 심화될 수 있는 산업적 딜레마가 도사리고 있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