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분기 성장률 1.9%로 추락, 베트남(8.39%)·말레이(6.0%)에 완패… "끓는 물 속 개구리 신세"
'상원 선거 매표 의혹'에 지지율 급락·야당 불신임 추진… 국면 전환용 21억 달러 중국 투자 성사
'대만 평화통일' 지지하며 친중 외교 급선회… 日 대비 낮은 현지 부가가치 창출은 숙제
'상원 선거 매표 의혹'에 지지율 급락·야당 불신임 추진… 국면 전환용 21억 달러 중국 투자 성사
'대만 평화통일' 지지하며 친중 외교 급선회… 日 대비 낮은 현지 부가가치 창출은 숙제
이미지 확대보기취임 1주년을 맞은 태국의 아누틴 차른비라쿨(Anutin Charnvirakul) 총리가 동남아 최하위권으로 추락한 경제성장률과 정권을 뒤흔드는 대형 정치 스캔들을 돌파하기 위한 핵심 승부수로 '중국 자본 유치 가속화'를 전격 선언했다.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등이 글로벌 인공지능(AI) 및 반도체 붐을 타고 가파른 고성장을 구가하는 반면, 태국은 전통 제조업과 관광업의 늪에 빠져 2분기 경제성장률이 1.9%로 곤두박질쳤다. 여기에 상원 선거 매표 의혹 등 권력형 비리 스캔들로 정권 지지율이 급락하자, 베이징과의 전략적 밀착을 통해 대규모 중국 투자금을 유치함으로써 국면 전환을 꾀하겠다는 구상이다.
9월 7일(현지시각) 일본 종합 경제 미디어 닛케이 아시아(Nikkei Asia) 보도에 따르면, 아누틴 총리는 취임 1주년을 맞아 반도체와 AI 등 첨단 미래 산업에서 뒤처진 태국 경제의 활로를 열기 위해 중국 투자 유치를 국가 경제 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설정했다.
'상원게이트'에 흔들리는 정권… 불신임 투표 직면
아누틴 총리의 친중(親中) 드라이브 이면에는 극심한 정치적 코너 몰림이 자리 잡고 있다.
태국 정국은 2024년 6월 치러진 상원 선거 당시 후보자 간 조직적 담합과 매표 의혹을 뜻하는 이른바 ‘상원게이트’로 발칵 뒤집힌 상태다. 수사 당국은 전체 상원의원의 약 70%에 달하는 140여 명을 조사하고 있으며, 이들 대다수는 아누틴 총리가 이끄는 보수 집권당인 품차이타이당(Bhumjaithai)과 깊숙이 연계된 것으로 파악된다.
여기에 아누틴 총리가 직접 관할하는 내무부의 지방 공무원 채용 비리 의혹과 정부 AI 조달 사업의 불투명한 계약 문제까지 겹쳤다.
태국 국립개발행정연구원(NIDA)의 8월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38%는 현 정부가 스캔들을 극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답했으며, 제1야당인 인민당은 수 주 내에 총리 불신임안을 발의하겠다고 예고했다.
싱가포르 ISEAS-유소프 이삭 연구소의 나폰 자투스리피탁(Napon Jatusripitak) 연구원은 "아누틴 정부는 수십 년 만에 의회 다수파와 보수 왕실·군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동시에 업고 출범한 첫 정권"이라면서도 "뚜렷한 비전과 정책 일관성 없이 표류하며 국민들에게 깊은 환멸을 안겨주었다"고 비판했다.
2분기 성장률 1.9% 쇼크… 베트남·싱가포르·말레이에 완패
가장 뼈아픈 대목은 '경제 성적표'다.
방콕 정부는 연간 최소 3% 이상의 경제성장을 공언했으나, 올해 2분기(4~6월) 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1.9% 증가에 그쳤다.
이는 전 분기보다도 0.9%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같은 기간 베트남이 8.39%의 폭발적 성장을 기록하고, 싱가포르(5.9%)와 말레이시아(6.0%)가 글로벌 AI 반도체 공급망 특수를 누리며 질주한 것과 극명히 대비된다.
태국에도 엔비디아에 핵심 부품을 납품하는 대만 델타 일렉트로닉스 등의 생산 기지가 있지만, 핵심 원자재와 중간재를 해외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구조 탓에 국내 산업으로의 낙수효과가 극히 제한적이다.
한 전직 태국 경제부 장관은 "우리는 저부가가치 단순 조립 제조업과 관광업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끊어내지 못했다"며 "마치 서서히 가열되는 끓는 물 속의 개구리처럼 국가 성장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시진핑 만나 21억 달러 투자 유치… "대만 평화통일 지지"로 화답
성장 절벽과 정치 위기 속에서 아누틴 총리가 내민 카드는 '차이나 머니'였다.
아누틴 총리는 지난 7월 중순 중국을 공식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세계인공지능대회(WAIC)에 참석했다.
이어 샤오미 등 주요 빅테크 경영진과 연쇄 회동을 갖고 총 약 21억 3,000만 달러(약 2조 8,665억 원) 규모의 신규 투자 약속을 성사시켰다.
태국 투자청(BOI)에 따르면, 2025년 승인된 중국의 대(對)태국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전년 대비 14% 급증한 1,981억 바트(약 8조 1,000억 원)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태국 정부가 중국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외교적 안보 노선을 지나치게 양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방중 당시 발표된 양국 공동성명에서 태국 정부는 대만 문제와 관련해 "중국과 대만의 '평화적 통일'을 확고히 지지한다"는 문구를 채택하며 베이징의 입장에 노골적으로 보조를 맞췄다.
티티난 퐁수디락(Thitinan Pongsudhirak) 쭐라롱꼰대학교 교수는 "국내 정책 성과가 전무하고 스캔들에 포위된 아누틴 정부에 중국 투자 유치는 정권 연장을 위한 가장 절실한 탈출구"라며 국내 정치적 위기가 친중 외교 급선회의 핵심 동력이라고 짚었다.
'일자리·기술 이전' 앞장섰던 日 자본과 대조… 부가가치 창출 시험대
하지만 중국 자본 일변도의 경제 정책이 태국에 실질적인 산업 고도화를 가져올지에 대해서는 회의론이 적지 않다.
1980년대 이후 태국 경제를 견인했던 도요타 등 일본 자동차·제조 대기업들은 현지 하청 부품망을 육성하고 대규모 일자리와 핵심 기술을 이전하며 탄탄한 산업 생태계를 구축했다.
반면 최근 태국으로 밀려드는 중국의 전기차·전자 투자는 중국 본토 부품을 그대로 들여와 조립만 하거나 자국 인력을 대거 파견하는 형태가 많아 현지 기여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솜키앗 탕키트바니치(Somkiat Tangkitvanich) 태국개발연구소(TDRI) 소장은 "중국의 대태국 FDI는 역사적인 일본의 투자와 비교할 때 태국 국내 경제에 창출하는 실질적인 부가가치가 현저히 낮은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현재 태국에 대규모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는 대체 투자국이 사실상 전무하기 때문에 중국 자본이 정부의 유일한 선택지가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아누틴 총리의 '중국 자본 올인' 전략은, 향후 ‘동남아 주요국 간의 첨단 반도체·AI 유치전에서 탈락 위기에 몰린 태국이 중국의 거대자본을 발판 삼아 산업 구조 전환에 성공할 것인가, 아니면 대중국 경제·외교적 종속을 심화시킨 채 실속 없는 조립 기지로 전락할 것인가를 가를 중대한 갈림길’로 작용할 전망이다.
신경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