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성 향상·고용 둔화·물가 자극·금융불안 가능성 동시 부상
워시 “역사의 변곡점”…장기 성장 낙관하면서도 정책 답변은 유보
워시 “역사의 변곡점”…장기 성장 낙관하면서도 정책 답변은 유보
이미지 확대보기인공지능(AI)이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통화정책 판단을 뒤흔드는 새로운 경제 변수로 급부상하고 있다.
불과 2년여 전까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록에 거의 등장하지 않았던 AI가 이제는 생산성, 고용, 물가, 금융시장 안정에 동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핵심 논쟁거리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FOMC 회의록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가을까지만 해도 정책회의에서 드물게 언급되던 AI가 올해 들어 수십 차례 등장하며 연준의 주요 정책 논의 대상으로 부상했다고 29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케빈 워시 연준 의장 역시 전날 와이오밍주 잭슨홀 경제정책 심포지엄 연설에서 AI를 장기적인 미국 경제의 핵심 변수로 지목했다.
워시 의장은 “우리는 역사의 변곡점에 도달했다”며 AI가 미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크게 높일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연준이 당장 풀어야 할 문제는 AI가 경제를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아직 명확하지 않다는 데 있다.
AI가 노동자의 생산성을 높여 경제가 물가 상승 없이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는 낙관론이 있는 반면, 대규모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투자가 수요와 가격을 끌어올리고 일부 일자리를 줄이며 금융시장 위험까지 확대할 수 있다는 경계론도 연준 내부에서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 2024년 첫 등장한 AI…2년 만에 정책 핵심 의제로
AI가 회의록에 명시적으로 처음 나타난 것은 2024년 4~5월 회의였다.
당시 일부 참석자는 기업들이 AI를 기존 사업에 적용하면 높은 생산성 증가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새로운 기술기업의 탄생이 경제성장과 고용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가 반영됐다.
AI에 대한 연준의 관심은 2025년 들어 크게 달라졌다.
IT 대기업들이 데이터센터와 AI용 반도체 등 인프라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기 시작하면서 AI 투자가 미국 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무시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커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FOMC에서는 AI가 생산성을 높이면 물가 압력을 크게 자극하지 않고도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그러나 같은 생산성 향상이 기업의 노동 수요를 줄여 일자리 증가를 둔화시킬 가능성도 함께 거론됐다.
경제가 더 빠르게 성장하는데도 기업이 이전만큼 많은 사람을 고용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물가 안정과 최대 고용이라는 연준의 두 가지 핵심 책무가 AI로 인해 이전보다 복잡하게 얽힐 수 있음을 의미한다.
◇ 올해는 ‘AI 거품’과 금융불안까지 논쟁 확대
올해 들어 연준의 AI 논의는 생산성과 고용을 넘어 금융시장 안정으로 확대됐다.
1월 FOMC에서는 AI 관련 기업들의 높은 주식 가치와 소수 기업에 집중된 시장가치, AI 인프라 투자를 위한 부채 증가가 위험요인으로 논의됐다.
일부 참석자는 공개시장이 아닌 불투명한 사모시장을 통해 AI 인프라 자금조달이 확대되는 현상도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마크 잔디 무디스 애널리틱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WP와 인터뷰에서 “연준 관계자들이 AI가 경제에 미칠 실질적인 위험을 경계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평가했다.
논쟁은 7월 FOMC에서 한 단계 더 확대됐다.
일부 참석자는 AI 인프라 구축이 소비자물가에 미친 영향이 아직 일부 품목에 제한돼 있다고 판단했다.
반면 다른 참석자들은 AI 투자가 총수요를 끌어올리면서 이미 광범위하게 가격에 영향을 주고 있거나 조만간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대규모 데이터센터 건설과 AI 반도체·컴퓨터 장비 투자가 경제의 공급능력을 확대하기 전에 수요부터 크게 자극할 경우 단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을 높일 수 있다는 논리다.
◇ 워시 “AI, 새로운 생산요소 될 수도”
워시 의장은 잭슨홀 연설에서 AI가 단순한 신기술을 넘어 경제의 새로운 ‘생산요소’가 될 가능성까지 제기했다.
그는 AI가 경제 전반의 생산성을 장기간 끌어올릴 수 있는지, 그렇다면 그 효과가 언제 나타날지에 주목했다.
AI 사용이 노동자를 보완할지 아니면 대체할지, 차세대 AI 모델이 더 많은 자본을 필요로 할지, AI의 경제적 가치가 AI 기업과 반도체업체·에너지업체·클라우드기업에 얼마나 돌아가고 장기적으로 기업과 소비자에게 얼마나 확산될지도 연준이 풀어야 할 문제로 제시했다.
특히 AI가 노동시장에 미칠 영향은 최대 고용을 책무로 하는 연준에 직접적인 정책 문제가 된다. 그러나 워시 의장은 이 같은 질문에 아직 답을 내리지 않았다.
WP는 “워시가 AI가 미국 노동자의 생활수준을 높일지 반대로 타격을 줄지, 기업들이 AI 투자에서 언제 실질적인 생산성 효과를 얻을지 일련의 질문을 던졌지만 구체적인 결론은 제시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 “생산성 기적 아직 없다”…AI 투자는 당장 물가 자극
워시 의장은 장기적으로 AI의 경제 효과를 낙관하는 쪽에 가깝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AI가 경제성장을 높이고 노동자의 생산성을 개선하면서 물가를 낮추는 조합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기대를 나타내왔다.
그러나 현재까지 실제 경제에서 이런 효과가 충분히 확인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기업연구소(AEI)의 마이클 스트레인 이코노미스트는 “AI가 아직 경제 전체의 ‘생산성 기적’을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AI 데이터센터를 건설하기 위한 막대한 투자는 오히려 단기적인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결국 연준이 직면한 문제는 AI의 장기 효과와 단기 효과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다.
장기적으로 생산성이 크게 높아지면 경제는 더 빠르게 성장하면서도 물가 압력을 낮출 수 있다. 반대로 그 효과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데이터센터, 반도체, 전력 등 AI 인프라 투자가 수요를 자극해 물가를 밀어올릴 수 있다.
AI가 일자리를 얼마나 대체할지도 아직 불분명하다는 관측이다.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경제성장과 기업이익이 확대되더라도 고용 증가세가 둔화한다면 연준은 물가와 고용 사이에서 이전과 다른 정책 판단을 내려야 할 수 있다.
◇ 당장 정책의 중심은 AI보다 물가
워시는 AI의 장기적인 성장 가능성을 강조하면서도 현재 통화정책에서는 물가 안정이 우선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잭슨홀 연설에서 미국 경제의 전반적인 강세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기조적인 인플레이션이 의미 있게 개선됐다고 판단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연준의 물가상승률 목표인 2%도 ‘확고한 고정 목표’라고 재확인했다.
최근 6개월 동안 연준이 추적하는 개별 품목 가운데 거의 절반은 연율 3%가 넘는 가격 상승률을 기록했다.
워시는 기조적인 인플레이션이 목표를 향해 분명하고 충분히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확신이 없다면 연준에는 “해야 할 일이 있다”고 강조했다.
시장은 이를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놓은 발언으로 받아들였다. 잭슨홀 연설 이후 9월 금리 인상 가능성을 반영한 시장의 베팅은 30%대에서 60%에 가까운 수준으로 높아졌다.
다만 워시는 AI에 관한 장기 연구 결과가 당장의 통화정책 결정을 좌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AI가 장기적으로 미국 경제의 생산능력을 크게 높일 수 있다는 기대와 현재 진행 중인 AI 투자 붐이 물가와 고용, 금융시장에 어떤 충격을 줄지에 대한 우려를 분리해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WP는 “AI는 이제 연준에 주변적인 기술 문제가 아니라 물가 안정과 고용, 경제성장, 금융시장 안정이라는 핵심 정책 목표 모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로 자리 잡았다”고 분석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