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스테판 방셀 모더나 CEO
"암 재발을 막는 기적의 백신이 나왔다." 수술 후 언제 닥쳐올지 모를 전이와 재발의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던 전 세계 암 환자들에게 마침내 거대한 구원의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메신저 리보핵산(mRNA) 기술을 기반으로 환자 개개인의 고유한 유전 변이를 정밀하게 추적하고, 인체의 면역 시스템에 암세포 식별 암호를 직접 주입하는 '개인 맞춤형 암 치료 백신'이 대규모 확증 임상에서 결정적인 성과를 입증하며 의학계의 숙원을 현실로 바꾸어 놓았다.
이 역사적 대전환의 중심에는 미국의 글로벌 바이오테크 기업 모더나(Moderna)와 그 사령탑인 스테판 방셀(Stéphane Bancel) 최고경영자(CEO)가 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미증유의 바이러스가 전 지구를 집어삼키던 혼돈 속에서 단 48시간 만에 백신 설계를 완료하며 인류를 방역의 절벽 끝에서 구해냈던 인물이다.
그는 감염병 특수로 부상한 일시적 '코로나 영웅'이라는 칭호에 안주하지 않았다. 그는 21세기 생명공학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뒤바꾼 'mRNA 전도사'로서 이제 인류 질병사의 가장 깊고 어두운 장벽인 암(Cancer) 정복이라는 궁극의 전장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건 두 번째 승부수를 던졌다. 스테판 방셀은 1972년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최고 명문 이공계 그랑제콜인 에콜 상트랄 파리에서 공학 석사를, 미국 미네소타 대학교에서 화학공학 석사를 취득한 뒤 하버드대에서 MBA 과정을 마쳤다. 그는 연구실에만 갇혀 있던 순수 생물학 연구자가 아니라 엔지니어링의 정밀한 수학적 사고와 글로벌 비즈니스의 통찰력을 체화한 입체적 혁신가였다.
프랑스의 대표적 진단 전문 글로벌 기업 비오메리외(bioMérieux)의 최연소 CEO로 승승장구하던 방셀은 2011년, 인생 최대의 모험을 감행한다. 하버드 의대와 매사추세츠공대(MIT) 석학들이 공동 설립한 신생 바이오 벤처 모더나의 CEO직을 전격 수락한 것이다. 당시 모더나는 직원이 세 명에 불과한 작은 연구소 수준의 벤처였다. 사명 모더나(Moderna)는 '변형된 RNA(Modified RNA)'에서 유래했다. 당시 글로벌 제약업계에서 mRNA는 '상용화가 불가능한 실패의 과학'으로 낙인찍혀 있었다. mRNA 분자는 체내에 주입되는 즉시 면역계의 가혹한 공격을 받아 수 분 만에 파괴되었고, 치명적인 전신 염증 반응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거대 글로벌 빅파마들조차 수억 달러의 연구비를 날린 뒤 줄줄이 사업을 접고 철수하던 절망의 시기였다. 그러나 화학공학도 출신인 방셀의 시선은 본질적으로 달랐다.
그는 인체를 거대한 하드웨어로, mRNA를 '생명의 디지털 소프트웨어 코드'로 재정의했다. "인간 세포는 단백질을 합성하는 고성능 자동화 공장이다. 우리가 컴퓨터 소프트웨어 코드를 업데이트하듯 올바른 mRNA 염기서열만 입력해 준다면, 세포는 스스로 질병을 격퇴할 치료용 단백질과 항체를 무한히 생산해낼 수 있다." 방셀은 기존 의학계의 깊은 회의론을 뒤로하고, 지질나노입자(LNP)를 이용한 약물 전달체 기술과 염기 변형 플랫폼 구축에 모더나의 모든 자본과 명운을 쏟아부었다.
2020년 1월 중국 연구진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SARS-CoV-2)의 유전체 염기서열을 인터넷에 전격 공개했다. 방셀의 진가는 바로 이 위기의 순간에 폭발했다. 모더나 연구진은 바이러스 실물을 단 한 차례도 직접 만져보지 않은 상태에서 오직 컴퓨터 화면 속 디지털 데이터만을 바탕으로 단 48시간 만에 백신 후보물질(mRNA-1273)의 설계를 끝마쳤다. 10년 이상 소요되던 전통적 백신 개발 사이클을 단 며칠로 단축한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방셀은 임상 1상이 개시되기도 전에 수억 달러 규모의 자금을 차입해 대규모 양산 설비를 증설하고 핵심 원부자재를 사전 매점하는 극단적인 베팅을 감행했다. 실패할 경우 회사가 흔적도 없이 파산할 수 있는 외줄타기였으나 그는 자신이 구축해온 mRNA 플랫폼의 수학적 재현성을 절대적으로 신뢰했다.
방셀의 승부수는 완벽히 적중했다. 모더나 백신은 대규모 임상 3상에서 94%가 넘는 경이적인 예방 효능을 입증하며 2020년 12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긴급사용승인을 획득했다. 전 세계 언론은 방셀과 모더나에 '코로나 영웅'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모더나는 2021년 단 한 해에만 185억 달러(약 24조 원)의 매출과 122억 달러의 순이익을 달성하며 일약 글로벌 빅파마의 반열로 퀀텀 점프했다. 눈부신 성공 이면에는 혹독한 자본주의적 비판과 구조적 한계도 공존했다. 선행 연구자들과의 원천 기술 특허권 분쟁이 격화되었고, 백신 고가 정책으로 인해 저개발국의 접근성을 소외시켰다는 '백신 불평등' 비판이 쏟아졌다. 더욱이 엔데믹 전환과 함께 백신 수요가 급감하자 회사의 매출은 급락했다. 월가 일각에서는 모더나를 단일 품목의 요행에 기댄 '반짝 스타'로 폄하하기 시작했다.
방셀은 결코 동요하지 않았다. 그는 "코로나19 백신은 모더나의 독자적인 mRNA 운영체제(OS) 위에서 구동된 단 하나의 시범 애플리케이션에 불과하다"며 진짜 승부처는 감염병 너머 난치병 치료에 있음을 천명했다.
제약사를 '테크 기업'으로 바꾼 방셀의 플랫폼 경영학
스테판 방셀의 경영 철학은 전통 제약 바이오 기업의 문법을 근본부터 파괴했다. 그는 제약사를 약품 제조 공장이 아닌 '디지털 소프트웨어 기업'의 관점으로 운영했다. 전통적인 신약 개발 방식은 질병의 원인이 되는 표적 단백질을 찾은 뒤 수만 개에서 수십만 개의 화학 화합물을 무작위로 합성하고 걸러내는 스크리닝 과정에 5~10년의 긴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또한 신약 후보물질이 바뀔 때마다 공장 전체의 화학적 합성 공정을 완전히 새롭게 설계해야 하는 비효율을 안고 있었다.
방셀이 확립한 모더나의 mRNA 플랫폼 방식은 차원이 달랐다. 유전체 데이터 분석을 통해 필요한 단백질의 디지털 염기서열을 컴퓨터로 설계하고, 표준화된 단일 mRNA 합성 공정을 통해 수일에서 수개월 내에 후보물질을 즉시 제조해낸다. 생산시설 역시 약품마다 새로 지을 필요 없이 단일 생산 라인을 그대로 유지한 채 투입되는 mRNA의 디지털 염기서열 코드만 변경하면 감염병 백신, 희소 유전질환 치료제, 암 백신을 연속으로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무한한 확장성을 갖추었다. 이와 함께 방셀은 연구실 전체에 로봇 자동화 공정과 인공지능(AI) 시뮬레이션을 전면 도입했다. 수천 개의 mRNA 분자 구조를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사전 검증해 실패 확률을 미리 통제했다. 감정이나 관행을 배제하고 철저한 데이터 지표로만 조직을 통솔하며, 리스크를 계량화해 과감하게 자본을 투입하는 엔지니어형 리더십이 결합된 결과였다.
방셀의 시선은 인류 질병의 최종 종착지인 '개인 맞춤형 신생항원 암 백신(INT)'으로 향했다. 모더나가 글로벌 제약사 MSD(머크)와 공동 개발 중인 '인티스메란 오토진(mRNA-4157 / V940)'은 기존의 감염 예방 백신과 개념 자체가 다른 '치료용 백신'이다. 작동 프로세스는 철저히 환자 개인의 암세포 유전체에 맞춰진다. 암 환자의 수술 부위에서 종양 조직과 정상 혈액을 채취해 유전체를 정밀 시퀀싱한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정상 세포에는 없고 오직 해당 환자의 암세포 표면에만 발현되는 고유한 돌연변이 단백질(신생항원·Neoantigen)을 최대 34개까지 단시간에 선별해낸다. 선별된 34개 신생항원의 유전 암호는 하나의 맞춤형 mRNA 가닥으로 설계되어 단 몇 주 만에 환자 맞춤형 백신으로 합성된다. 이 백신이 환자의 체내에 주입되면 세포가 신생항원 단백질을 스스로 발현하고, 이를 인지한 환자의 면역 T세포들이 군대처럼 훈련받아 체내 곳곳에 숨어 있는 동일한 돌연변이 암세포를 현미경처럼 정밀하게 추적해 궤멸한다.
여기에 암세포의 면역 회피 신호를 무력화하는 MSD의 면역관문억제제 '키트루다'를 병용 투여해 공격력을 극대화한다.화학항암제나 표적항암제 같은 기존의 치료법들이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동일한 기성품 약제를 불특정 다수의 환자에게 투여하여 부작용과 내성 문제를 겪었던 것과 달리 모더나의 암 백신은 환자 단 한 사람만을 위해 설계되는 궁극의 정밀 의학이다. 실제로 진행된 대규모 글로벌 임상 3상(INTerpath-001) 중간 분석 결과에서 수술 후 고위험 흑색종 환자에게 이 맞춤형 암 백신과 키트루다를 병용 투여했을 때 기존 표준치료제 단독 투여군 대비 암의 재발 및 원격 전이 위험이 현격히 감소하는 결정적 치료 효능이 확인되었다.
수술 후 암의 재발 공포에 떨어야 했던 환자들에게 완치의 사다리를 놓아준 역사적 사건이었다.
에필로그: 21세기 미래 의학의 나침반
스테판 방셀은 단순한 전문 경영인의 범주를 넘어섰다. 그는 의학을 오랜 화학적 화합물 합성의 영역에서 '생명 정보의 디지털 코딩' 영역으로 전환시킨 21세기 바이오 혁명의 독보적 개척자다. 조롱과 실패가 뒤따르던 mRNA 기술을 불굴의 추진력으로 밀어붙여 코로나19라는 전 인류적 재난에서 백신 기적을 일궈냈고, 엔데믹 이후의 혹독한 실적 한파와 시장의 불신 속에서도 암 정복이라는 인류 최대의 과제를 향해 묵묵히 전진했다. 개인 맞춤형 생산에 따른 높은 치료 비용, 정교한 글로벌 콜드체인 물류망 구축, 각국 규제 당국의 높은 승인 장벽 등 앞으로 넘어야 할 과제는 여전히 만만치 않다. 그러나 스테판 방셀이 개척해낸 mRNA 혁명은 이제 "암은 불치의 재앙이 아니라 인체의 면역 시스템을 정밀하게 프로그래밍해 완치할 수 있는 질환"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의학적 정의를 써 내려가고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