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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인물] 오쿠다 히로시... 프리우스 산파역 "일본 재계의 별"

오쿠다 히로시 전 일본 경단련 회장/사진=로이터 이미지 확대보기
오쿠다 히로시 전 일본 경단련 회장/사진=로이터
일본 산업계의 거목이자 토요타자동차의 세계화를 이끈 오쿠다 히로시(奥田 碩) 전 토요타 사장 겸 회장이 향년 93세로 별세하였다. 그는 28년 만에 토요타 창업주 가문(도요다 가문)이 아닌 외부 출신 전문경영인으로 사장에 올라 대기업병에 걸린 토요타를 대대적으로 수술한 개혁가였다. 또한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일본 최대 경제단체인 '일본경단련(日本經團連)'의 초대 회장을 지내며 일본 재계를 이끈 사령탑이었다.
오쿠다 히로시는 1932년 일본 미에현에서 태어나 히토쓰바시대학 상학부를 졸업하고 1955년 토요타자동차판매에 입사하였다. 영업과 경리 부문에서 뼈가 굵은 그는 해외사업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당시 토요타 내부에는 본사가 위치한 아이치현 동부 지역의 폐쇄성을 비유한 일명 '미카와 먼로주의'라는 내향적 문화가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오쿠다는 이 순혈주의와 안주 문화를 가장 먼저 깨뜨린 인물이다.

1980년대 미·일 무역 마찰이 극에 달했을 때, 그는 북미사업준비실을 이끌며 미국 켄터키주 공장 부지 선정을 주도하였다. 켄터키 공장은 향후 토요타가 미주 시장을 점령하는 전초기지가 되었으며, 미국 빅3(GM, 포드, 크라이슬러)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공존과 조화(Harmony)'를 강조하는 전략적 수완을 발휘하였다.1995년, 창업가 출신인 도요다 다쓰로 사장이 건강상 이유로 퇴임하자, 오쿠다는 28년 만에 창업가 외 가문 출신으로서 사장직에 전격 발탁되었다.

오쿠다 히로시 경영 개혁의 정점은 세계 최초의 양산형 하이브리드 자동차인 '프리우스(Prius)'의 탄생이었다. 프리우스 개발 프로젝트(G21)는 당초 연비를 기존 대비 1.5배 개선하는 중소형차 개발로 시작되었으나, 1995년 사장으로 취임한 오쿠다는 개발진을 향해 파격적인 명령을 내렸다.
"연비 1.5배 상승으로는 부족하다. 2배를 개선하라. 이를 달성하려면 하이브리드 시스템 외에는 대안이 없다." 당시 토요타 엔지니어들에게 연비 2배 개선은 미지의 영역이었다. 모터와 가솔린 엔진을 동시에 제어하는 컴퓨터 소프트웨어 기술이 미비했고, 시운전 단계에서 차가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는 시제차가 수두룩했다. 개발 책임자였던 우치야마다 타케시(후일 토요타 회장)를 비롯한 연구진은 1998년 출시를 목표로 밤샘 작업을 이어갔다.1996년 말, 오쿠다 사장은 또 한 번의 전격적인 결단을 단행하였다. 출시 일정을 1년 앞당겨 1997년 12월 교토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 시점에 맞춰 출시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지구 온난화와 환경 규제가 21세기 자동차 산업의 핵심 이슈로 부상할 것임을 파악하고, 세계의 시선이 교토에 집중되는 순간 토요타가 친환경 기술의 퍼스트 무버(First Mover)임을 선언하려 한 것이다.

개발진은 배터리 과열과 시스템 다운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배수진을 쳤고, 마침내 1997년 12월, "21세기에 딱 맞춰 출범했다"는 슬로건과 함께 1세대 프리우스가 세상에 공개되었다. 당초 대당 제작 원가가 판매가(215만 엔)를 훨씬 초과하여 "팔수록 손해"라는 비판도 있었으나, 오쿠다는 양산 체제를 밀어붙여 초기 손실을 감수하고 시장을 선점하였다. 이 결단이 향후 토요타를 2000년대 글로벌 완성차 1위 기업으로 도약시킨 결정적 발판이 되었다.

오쿠다 히로시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이력이 바로 '일본경단련(日本經團連) 회장'이다. 2002년, 일본의 경제단체인 '경단련(경제단체연합회)'과 '일경련(일본경영자단체연맹)'이 하나로 통합되어 명실상부한 일본 경제계의 총본산인 '일본경단련'이 출범하였다. 오쿠다는 이 통합 조직의 초대 회장으로 추대되어 2006년까지 4년간 재임하였다. 옛 경단련 수장 시절까지 합치면 무려 7년 동안 일본 재계를 이끈 사령탑이었다.토요타는 창업주 가문이라는 신화에 갇히지 않고, 오쿠다라는 강력한 전문경영인을 발탁하여 세계 1위 완성차 업체로 도약하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기술진의 반대를 무릅쓰고 프리우스 개발 기간을 1년 단축시킨 과감함이 없었다면 토요타의 하이브리드 신화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쿠다는 경단련 회장으로서 국가 경제의 구조개혁을 주도하면서도, 근로자의 고용 안정과 사회적 신뢰를 버리지 않았다. 기업의 이익과 국가적 과제를 연결하는 원숙한 재계 리더십이 요구되는 시점이다.오쿠다 히로시는 시대를 앞서가는 탁월한 안목과 과감한 추진력으로 토요타를 일구고 일본 경제의 틀을 고쳐 짠 거장이었다. 그의 일생과 경영 궤적은 오늘날 침체와 변혁의 갈림길에 선 세계 글로벌 기업인들에게 영원히 디딤돌이 될 귀중한 유산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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