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금융과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상징으로 꼽히는 버크셔 해서웨이(Berkshire Hathaway)가 거대한 변신을 하고 있다. .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Warren Buffett)과 그의 영혼의 동반자 고(故) 찰리 멍거(Charlie Munger)가 물러나면서 새로운 도약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심에 그렉 아벨(Greg Abel)이 있다. 워런버핏이 심혈을 기울여 선택한 버크셔 해서웨이의 새 선장이다.
그렉 아벨은 1962년 캐나다 앨버타주 에드먼턴(Edmonton)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캐나다 서부 프레리 지역은 지독하게 추운 겨울과 광활한 자원, 그리고 솔직하고 정직한 노동 가치가 지배하는 공간이었다. 아버지는 소화기 및 안전 장비를 판매·유통하는 회사에서 일했다. 어머니는 가정주부이자 서기로 일하던 평범한 노동자 가정이었다. 어린 시절의 그렉 아벨을 규정한 두 가지 키워드는 ‘하키’와 ‘고된 육체노동’이었다. 캐나다 소년들에게 하키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닌 삶의 양식이자 사회적 관계의 틀이다. 아벨은 빙판 위에서 거친 스케이팅을 즐기며 신체적 단련과 팀워크, 그리고 상대의 허점을 간파하는 집요함을 배웠다.
그는 어린 나이부터 스스로 돈을 벌며 자립심을 키웠다. 유리병을 수거해 되돌려주거나 신문 전단지를 돌리는 일부터 시작해, 아버지가 일하던 공장에서 화물 포장과 장비 정비를 돕는 고된 노동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러한 성장 배경은 그에게 화려한 언변이나 겉치레 대신 '근면함'과 '현장 중심의 리더십'을 뼈속 깊이 각인시켰다. 훗날 그가 수백억 달러의 거래를 주도하는 최고경영자가 된 이후에도 오만한 태도를 보이지 않고 공장의 기계 소음이나 발전소의 파이프라인 현장을 먼저 챙기는 실용주의적 면모는 바로 이 시절 단련된 노동 윤리에 기반한다.
1984년, 아벨은 앨버타 대학교(University of Alberta)에서 상학 학사(Bachelor of Commerce) 학위를 취득하고 회계학을 전공했다. 그가 회계학을 선택한 것은 자본주의의 공용어인 '숫자'를 정복하겠다는 명확한 계산에 따른 것이었다. 대학 졸업 후, 그는 세계적인 회계법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의 에드먼턴 사무소에서 공인회계사(CPA)로서 첫발을 내딛었다. PwC에서의 경험은 그를 철저한 '수치 검증의 전문가'로 만들었다. 공장 재고를 조사하고, 기업의 재무제표에 숨겨진 부실과 유동성 위험을 감지해 내는 분석 능력은 이 시기에 완성되었다. 이후 그는 미국 산호세 및 산프란시스코 사무소로 자리를 옮기며 에너지 산업의 수직 통합 과정과 실무 지식을 쌓아나갔다.
1992년, 아벨의 인생에 결정적 전환점이 찾아온다. 당시 지열 발전 사업을 영위하던 '칼에너지(CalEnergy)'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이곳에서 아벨은 발전소의 재무 분석과 자산 매입 업무를 담당하며 자원 에너지 인프라 산업의 구조적 수익 모델을 깨달았다. 아벨은 특유의 침착함과 하루 16시간 이상 재무제표와 계약서를 뜯어보는 경이로운 몰입력으로 선배 경영진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었다. 1999년, 칼에너지가 영국의 거대 전력회사 및 미국의 미드아메리칸 에너지(MidAmerican Energy)를 인수했을 때, 아벨은 핵심 임원이자 사장으로서 대규모 유틸리티 메이저의 인프라 정비와 규제 대응을 총괄하기 시작했다.
2008년 버크셔가 인수한 미드아메리칸 에너지(현 버크셔 해서웨이 에너지)의 최고경영자(CEO)로 전격 발탁되어 재생에너지 투자를 대대적으로 주도했다. 2018년에는 철도, 에너지, 제조, 유통 등 버크셔의 실물 사업부 전체를 통솔하는 비보험 부문 부회장에 올랐다. 2021년 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에 의해 버크셔 해서웨이의 차기 총수로 공식 확정되기에 이르렀다. 그렉 아벨이 버크셔의 영토 안으로 들어온 것은 이보다 훨씬 앞선 1999년이었다. 워런 버핏은 현금 흐름이 꾸준하고 진입장벽이 높은 미드아메리칸 에너지를 매우 매력적인 투자처로 판단하고, 이 회사의 지분을 대거 매수하여 버크셔의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이때 버핏의 눈에 띈 인물이 바로 미드아메리칸의 실무 책임자였던 그렉 아벨이었다.
버핏이 그렉 아벨에게 감탄한 지점은 단순히 그가 재무제표를 잘 본다는 수준이 아니었다. 버핏의 투자 철학 핵심은 "이해할 수 있는 비즈니스에 투자하고, 능력이 검증된 성실한 최고경영자에게 자율권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아벨은 이 기준에 정확히 부합하는 인물이었다. 2008년, 아벨이 미드아메리칸(이후 버크셔 해서웨이 에너지, BHE로 사명 변경)의 CEO에 올랐을 때 버핏과의 호흡은 정점에 달했다. 유틸리티 및 에너지 사업은 각 주 정부의 까다로운 규제를 받고, 천문학적인 시설 자본(CAPEX)이 지속적으로 투입되어야 하는 대단히 고되고 복잡한 비즈니스다. 그러나 아벨은 완벽에 가까운 리스크 관리와 뛰어난 협상력으로 규제 기관과의 마찰을 최소화하는 한편, 인수합병(M&A)을 통해 BHE를 미국 최대의 에너지 기업 중 하나로 성장시켰다.
버핏은 매년 주주총회와 주주 서한에서 아벨을 극찬했다. 버핏은 차가운 이성과 집요한 현장 통찰을 겸비한 그를 가리켜, 복잡한 비즈니스 상황을 단 몇 분 만에 완벽히 파악하고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이미 계산을 끝내두는 드문 자질을 갖춘 인물이라고 칭송했다. 2018년, 버크셔는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보험 부문 총괄로 아지트 자인(Ajit Jain)을, 그리고 보험을 제외한 철도(BNSF), 에너지(BHE), 제조, 유통, 서비스 등 버크셔 전체 매출의 거대한 비중을 차지하는 비보험 부문(Non-insurance operations) 총괄 부회장으로 그렉 아벨을 선임한 것이다. 이는 아벨이 버크셔의 실물 제국 전체를 사실상 다스리는 총사령관으로 올려졌음을 의미했다. 마침내 2021년, 찰리 멍거 부회장의 언급 이후 버핏은 방송을 통해 자신이 물러나면 바로 그렉 아벨이 경영권을 승계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하며 아벨은 명실상부한 '버크셔의 황태자'로 입증되었다.
아벨의 행보 중 전 세계 금융시장의 가장 큰 화두는 '압도적인 현금 보유량'과 '대대적인 현금 자금의 선별적 재배치'이다. 2020년대 들어 버크셔의 현금성 자산은 수백조 원(2,000억 달러 안팎)을 상회하는 역사상 최고치를 갱신해 왔다. 시장에서는 버핏과 아벨이 주식 시장을 비관적으로 보고 현금을 쌓아두기만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렉 아벨의 주도 아래 전개되는 현금 집행 과정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이는 단순한 방어가 아닌 ‘자본 배치(Capital Allocation)의 전략적 대전환’임을 알 수 있다.
아벨이 대대적인 현금 자금 투자를 지휘하는 핵심 전략과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고금리와 인플레이션 시대를 방어하는 실물 인프라 자산의 확보이다. 아벨은 평생 유틸리티와 인프라 사업을 다뤄온 베테랑이다. 통화 가치가 하락하고 인플레이션 압력이 심화되는 시기에 빅테크나 고평가된 성장주는 변동성이 극심해진다. 반면, 전력망, 파이프라인, 철도, 천연가스 터미널과 같은 실물 인프라는 물가상승률을 요금에 반영할 수 있는 독점적 가격 결정력을 가진다. 아벨은 축적된 대규모 현금을 바탕으로 도미니언 에너지(Dominion Energy)의 가스 수송 및 저장 자산을 대거 매수하는 등 천연가스 및 에너지 인프라에 현금을 집중 투입했다.
둘째, 인공지능(AI) 시대의 숨은 지배자인 전력 및 에너지 안보에 대한 대규모 집행이다. 빅테크 기업들이 AI와 데이터 센터 확장에 수백조 원을 쏟아붓고 있지만, 이 모든 기술 문명을 뒷받침하는 근본적인 병목은 바로 전력 공급이다. 그렉 아벨은 이 지점을 정확히 간파했다. 아벨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 에너지는 미국 내 태양광, 풍력 등 친환경 재생에너지 사업뿐만 아니라 기저 전력을 책임질 천연가스 및 전력망 인프라 구축에 수십억 달러의 현금을 대대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AI 시대가 발전할수록 전력 가치는 급상승하며, 버크셔의 현금 투자는 이 기초 체력을 선점하는 데 집중되고 있다.
셋째, 시장 불확실성에 대비한 안전유격(Safety Margin)과 확실한 M&A 타깃 사냥이다. 아벨은 버핏의 오랜 철학인 "철저히 계산된 리스크만 수용한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글로벌 금리가 상승하고 기업들의 부채 부담이 가중되는 시기에 버크셔가 보유한 압도적인 현금은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 아벨은 밸류에이션이 높은 주식을 무리하게 사들이기보다, 시장 폭락이나 유동성 위기가 찾아왔을 때 대형 우량 기업을 통째로 매수하거나 단숨에 유동성을 공급하여 유리한 조건의 자산을 확보하기 위해 현금의 칼날을 정교하게 갈고 있는 것이다.
버크셔 해서웨이 에너지(BHE)와 비보험 부문의 핵심 투자 전략은 독점적 지위를 가진 에너지, 전력망, 파이프라인 및 물류 인프라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인플레이션을 방어하고 경기 변동에 흔들리지 않는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창출하는 강점을 지닌다. 단기적인 주가 변동성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현금을 바탕으로 한 수직통합을 통해 장기적인 복리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 아벨이 보여주는 자본 배치의 본질이다. 워런 버핏이라는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스타 플레이어의 그늘은 깊고 어둡다. 버핏이 없는 버크셔 해서웨이를 상상하는 것은 수많은 투자자들에게 여전히 두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버핏이 자본주의의 정수이자 위대한 '투자가(Investor)'였다면, 그렉 아벨은 비즈니스의 세부 요소를 현장에서 철저히 제어하고 효율화하는 정교한 '운영자(Operator)'이자 '자본 배정자(Capital Allocator)'다.
그렉 아벨은 화려한 수사학으로 시장을 교란하지 않는다. 캐나다의 추운 빙판 위에서, 소화기 장비를 다루던 청년 시절부터 몸에 밴 정직함과 근면함, 그리고 회계사 시절부터 다져온 차가운 수치적 감각으로 버크셔라는 대형 선박의 키를 잡고 있다. 버크셔 해서웨이가 보유한 수백조 원의 현금 투자는 단순한 투기가 아니다. 이는 아벨이 그려나갈 새로운 시대 즉 에너지 전환, 인프라의 재편, 글로벌 공급망의 개편이라는 대전환기에 버크셔 제국을 한층 더 철옹성으로 만들기 위한 정교한 포석일 수 있다. 그렉 아벨이 만들어가고 있는 버크셔의 미래가 자못 궁금하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