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성인 절반 챗봇 이용하고 4명 중 1명은 매일 사용…직장선 ‘AI 의심’, 연애선 비사용자 선호 확산
이미지 확대보기인공지능(AI)이 일상과 업무에 빠르게 스며들면서 AI를 쓰느냐 거부하느냐가 단순히 기술에 대한 선호 문제를 넘어 개인의 가치관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바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AI가 개인정보, 환경, 창의성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하는 사람들은 무분별하게 기술을 이용하는 주변 사람에게 불신을 느끼고 있는 반면에 AI 활용을 당연한 업무역량으로 받아들이는 기업과 이용자들은 사용을 거부하는 사람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같은 인식 차이가 직장동료, 친구, 가족, 연인 사이의 갈등으로 번지면서 AI가 정치나 종교처럼 인간관계를 가르는 새로운 가치관의 경계가 되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1일(현지시각) 보도했다.
◇AI 영상이 친구·가족 갈등으로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 일리노이주 에번스턴에 사는 43세 보석 디자이너는 AI 기업의 개인정보 활용과 환경 영향, 인간의 창의성·비판적 사고 저하를 우려해 AI 사용을 피하고 있다.
그는 최근 친구가 AI로 만든 동물 영상을 계속 보내면서 말다툼을 벌였다. 사람의 두 손 안에 들어갈 정도로 작은 송아지가 등장하는 영상이었지만 친구는 실제 영상이라고 주장했다.
사촌이 고인이 된 조부모의 사진을 AI로 움직이게 만든 일도 가족관계에 부담을 줬다. 그는 고인의 모습을 허락 없이 움직이게 만든 데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으며 사촌이 앞으로 AI를 어떻게 이용할지 두렵다고 말했다.
AI를 재미있는 콘텐츠 제작도구로 여기는 사람과 고인의 존엄·개인정보·진위 문제를 중시하는 사람 사이의 인식 차이가 친밀한 관계의 갈등으로 이어진 사례다.
AI 기술은 매우 짧은 기간에 주변부에서 일상의 도구로 이동했다.
블룸버그가 인용한 퓨리서치센터의 지난 6월 자료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약 절반이 챗GPT, 제미나이, 코파일럿 같은 AI 챗봇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성인 4명 가운데 1명은 매일 AI 챗봇을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용 확대와 함께 불안도 커지고 있다.
스탠퍼드대의 2025년 조사에서는 전 세계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AI를 이용한 제품과 서비스에 불안을 느낀다고 답했다. 이 비율은 2022년 39%에서 크게 높아졌다.
AI를 향한 감정은 지역에 따라서도 큰 차이를 보였다.
AI 제품과 서비스에 기대감을 느낀다는 응답은 중국에서 84%, 인도네시아에서 80%에 달했다. 미국은 38%, 영국은 37%, 스웨덴은 34%에 그쳤다.
블룸버그는 “특히 서구권에서 AI 사용을 의식적으로 거부하는 문화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AI 사용이 ‘어떤 사람인가’ 판단 기준으로
AI가 인간관계에 미치는 사회적 영향에 관한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다. AI에 대한 태도가 개인의 정체성 일부로 자리 잡았는지를 실증적으로 분석한 연구도 많지 않다.
그러나 AI 회의론자와 윤리·조직행동·갈등 분야 전문가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일부 사람에게 AI 사용은 이미 개인의 가치관을 가늠하는 대리 지표가 되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지적했다.
카네기멜런대 테퍼경영대학원의 한 윤리학 교수는 정치적 견해가 다른 친구나 동료를 경계하는 과정과 유사한 심리가 AI를 둘러싼 태도에도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직장에서는 동료가 보고서나 이메일을 몰래 AI로 작성했다고 의심하는 ‘AI 의심’ 현상도 등장했다.
이런 의심은 업무 결과물에만 머물지 않는다.
친구가 보낸 문자메시지나 이메일, 결혼 서약문, 축사까지 AI가 대신 작성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면서 상대방의 진심을 신뢰하기 어려워지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AI로 문장을 다듬거나 아이디어를 얻는 행위를 효율적인 도구 활용로 보는 사람이 있는 반면 다른 사람은 이를 진정성과 인간적 노력의 결여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특히 창작 분야에서는 AI 사용에 대한 도덕적·정치적 판단과 낙인이 강하게 나타난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창의성 높이지만 아이디어는 비슷해져
AI 회의론자들이 제기하는 우려는 개인정보와 환경 문제에서 인간의 사고력·창의성 저하까지 넓게 퍼져 있다.
뉴욕에서 공중보건 분야에 종사하는 한 여성은 개인정보 보호와 환경 영향을 이유로 생성형 AI를 피하고 있다. 그는 주변 사람들이 부정적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AI를 받아들이는 모습에 답답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스페인 발렌시아의 한 패션 디자이너는 AI에 반대하는 입장이 네트워킹 행사에서 반복적인 갈등 요인이 된다고 밝혔다.
그는 사람들이 챗GPT를 실제 인간관계의 대체물처럼 사용하는 것을 우려하며 개인정보 침해와 딥페이크 문제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 AI 이용자들과 공통의 언어를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AI가 창의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창작자들의 반감을 키우고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들의 연구에 따르면 챗GPT는 개인이 제시하는 아이디어의 평균적인 품질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줬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AI를 이용하면 서로 비슷한 아이디어를 내놓는 경향도 강해졌다. 개별 결과물의 품질은 좋아지지만 획기적인 혁신에 필요한 집단 전체의 다양성은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작가와 시각예술가 단체들은 AI 기업들이 저작권이 있는 작품을 허가 없이 모델 학습에 사용했다고 주장하며 소송도 제기했다.
문신업계를 비롯한 일부 창작 분야에서는 AI가 기존 예술가의 작품을 모방하고 일자리를 잠식할 수 있다는 반감이 커지고 있다.
◇기업의 AI 의무화가 직장 갈등 불러
직장에서의 갈등은 AI가 선택사항이 아니라 사실상의 의무로 바뀌면서 더욱 커지고 있다.
기후 관련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는 한 직원은 기업과 사회가 AI 활용을 선택할 수 있는 추가 역량이 아니라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AI를 실제로 유용하다고 판단해 사용하는 것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AI를 이용한다는 사실 자체를 도덕적 우월성이나 업무능력의 증거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주요 기업들은 직원의 AI 활용을 독려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액센츄어와 스타벅스를 비롯한 일부 기업은 AI 사용을 승진이나 성과급과 연계하는 명시적인 유인제도까지 도입했다.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직원에게는 생산성과 적응력을 인정하는 보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기술에 윤리적 우려를 느끼거나 자신의 일자리를 위협한다고 보는 직원에게는 사실상 강제 사용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뉴욕 금융업계에서 일하는 한 직원은 팀의 AI 사용 의무가 암울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의 요구에 따를수록 언젠가 자신을 대체할 수 있는 기계를 직접 훈련하는 셈이 돼 자신의 경력 전망을 스스로 훼손하는 기분이라고 설명했다.
뉴욕의 한 소매업체 직원은 회사가 AI 교육을 이수하지 않은 직원의 사원 할인 혜택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그는 AI가 일부 업무에 유용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강제적으로 사용하도록 하는 방식에는 불만을 나타냈다.
AI 도입을 둘러싼 직장 내 갈등이 단순한 사용법이나 업무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고용안정과 자율성, 기업에 대한 신뢰의 문제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AI 거부도 하나의 정체성
갈등을 연구하는 사회·조직심리학자는 사람들이 AI를 중립적인 도구가 아니라 자신이 지지하는 미래사회의 상징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AI 사용을 원칙적으로 거부하는 행위는 불확실하고 복잡한 환경에서 개인에게 통제감과 도덕적 명확성을 돌려줄 수 있다.
스스로를 ‘AI를 쓰지 않는 사람’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비슷한 우려를 공유하는 집단에 소속돼 있다는 신호가 될 수도 있다.
문제는 기술에 대한 의견 차이가 상대방의 인격과 가치관에 대한 판단으로 옮겨갈 때 발생한다.
‘우리는 도구에 대한 의견이 다르다’는 생각이 ‘저 사람은 나와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판단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런 갈등은 한 차례의 큰 논쟁보다 반복적인 불편함과 서로를 판단한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쌓이면서 깊어진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연애 상대 선택에도 AI 사용 여부 반영
AI에 대한 태도는 연애 상대를 선택하는 기준으로도 자리 잡기 시작했다.
데이팅 앱 힐리가 미국 젊은층 3500명을 조사한 결과 Z세대의 64%와 밀레니얼 세대의 56%는 일상적인 의사결정을 AI에 의존하는 사람과 교제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반대로 개인적인 의사결정에 AI를 전혀 쓰지 않는다고 밝힌 사람을 매우 매력적으로 느낀다는 응답은 Z세대에서 60%, 밀레니얼 세대에서 54%로 조사됐다.
AI를 이용해 식당이나 여행지를 추천받는 가벼운 행동도 일부 사람에게는 자율성이나 판단능력 부족의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의미다.
AI가 작성한 문자나 연애편지, 결혼 서약은 표현이 매끄럽더라도 상대방이 직접 고민해 만든 말이 아니라는 점에서 진정성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
AI가 개인적인 관계에 깊이 개입할수록 이용 여부와 허용 범위를 둘러싼 갈등도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설득보다 관계를 우선해야 갈등 완화
AI 활용에 대한 의견 차이를 성공적으로 조율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상대방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 것이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서로의 입장을 바꾸기보다 논쟁보다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데 합의하는 방식으로 갈등을 관리한다는 것이다.
AI 이용자에게 기술의 부정적 영향을 무조건 인정하라고 요구하거나 AI 회의론자에게 변화에 적응하라고 압박하면 가치관 대립은 더 심해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상대방을 설득하려 하기보다 왜 AI를 이용하거나 거부하는지 궁금해하고 질문하는 태도가 더 효과적이라고 진단했다.
AI가 일상에 더 깊이 들어올수록 누가 무엇을 AI에 맡겼는지 의심하는 순간은 직장과 개인관계에서 더욱 자주 나타날 수 있다.
블룸버그는 AI의 사회적 파장이 기술의 성능 자체보다 사람들이 그 기술에 어떤 도덕적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