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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정의 일본 엿보기]72세 디자이너 다카시마 씨가 말하는 '사명의 두 번째 인생'

[초고령 일본 엿보기] 일본인은 왜 은퇴하지 않는가
'초고령 일본 엿보기-일본은 왜 은퇴하지 않는가'를 주제로 활기차게 살아가고 있는 일본의 현역 시니어들을 만나고 있다. 이번에 만난 사람은 72세의 다카시마 요시미(高島芳美) 씨였다. 지난 8일 다카시마다이라 역 근처 카페에서 그를 만났고, 15일에는 릿쿄대학에서 또 만났다. 많은 사람들이 은퇴 후에는 쉬는 삶을 떠올리지만 그는 지금도 매일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고 했다. 오후에는 야마토운수 물류센터에서 젊은 직원들과 함께 땀을 흘리고, 릿쿄대학의 와다 유(和田裕) 교수와 도시재생을 위한 시민운동에도 참여하면서 틈틈이 지역 재생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고향 홋카이도에서는 향토음식과 유기농업을 통해 지역을 살리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72세의 현역 디자이너 다카시마 요시미씨. 사진=신현정 중부대 교수이미지 확대보기
72세의 현역 디자이너 다카시마 요시미씨. 사진=신현정 중부대 교수

그는 자가가 하는 모든 일을 하나의 말로 설명했다. "이건 일이 아니라 제 사명입니다"

그가 말하는 '제2의 인생'은 무엇일까.

헬스장 대신 물류센터로 간다

현재 다카시마 씨는 일본을 대표하는 택배회사인 야마토운수 물류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무거운 짐을 나르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그는 오히려 이 시간을 즐긴다.

"돈을 내고 헬스장에 다니는 대신 몸을 단련하면서 월급까지 받는 셈이죠."

물류센터에는 10대부터 70대까지 약 90명이 함께 일한다. IT기업을 그만둔 청년, 조직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 새로운 삶을 시작한 사람 등 저마다 다른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에게 이곳은 단순한 직장이 아니다. 그에게는 최고의 '인간 연구실'이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사회를 배우는 것 역시 그의 중요한 공부이기 때문이다.

72세의 나이에도 활발하게 활동 중인 디자이너  다카시마 요시미씨(가운데)가 지역 주민들과 함께 홋카이도 전통 향토 음식인 '산쇼즈케'(三升漬)를 만들고 있다.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담금 고향의 맛을 되살리며 지역 문화와 사람을 잇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신현정 중부대교수 이미지 확대보기
72세의 나이에도 활발하게 활동 중인 디자이너 다카시마 요시미씨(가운데)가 지역 주민들과 함께 홋카이도 전통 향토 음식인 '산쇼즈케'(三升漬)를 만들고 있다.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담금 고향의 맛을 되살리며 지역 문화와 사람을 잇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신현정 중부대교수

무너진 회사가 제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하게 했다

원래 그는 디자이너였다. 40세에 디자인 회사를 창업했지만 7년 만에 회사는 부도가 났다. 1억 엔이 넘는 빚을 떠안았고 개인 파산도 경험했다.

그러나 그는 그 시간을 실패라고 말하지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가 두 번째 인생의 시작이었습니다."

은인의 도움으로 다시 디자인 업계에 돌아왔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디자인보다 가격 경쟁이 우선이 되는 현실에 회의를 느꼈다.
"정말 가치 있는 제안보다 가장 싼 견적이 선택되는 현실을 보며 이제는 그만둘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디자인 회사를 떠났지만 디자인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디자인의 대상이 상품에서 사회로 바뀌었을 뿐이다.

사람과 지역, 미래를 디자인하다


그 이후 그의 무대는 지역사회가 됐다. 고향 홋카이도 도마초(当麻町)에서는 유기농업을 하는 주민들을 돕고, 도쿄에서는 도마 출신 동문회를 이끌며 지역과 세대를 잇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또 한때 '이상적인 주거 단지'로 불린 신도시 다카시마다이라 단지가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활력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며 지역 재생 프로젝트를 직접 기획하고 운영에도 참여하기도 했다.

겉으로 보면 서로 다른 활동처럼 보이지만 그에게는 모두 하나의 목표로 이어진다. 사회를 조금이라도 더 좋게 만들고 싶다는 게 그의 목표다.

다카시마 씨는 '일(仕事)'이라는 단어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풀이한다. "저는 일을 '생활을 위한 노동'이 아니라 뜻을 품고 하는 일(志事)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것도, 지역을 살리는 것도, 농업을 돕는 것도, 지방선거에 도전한 것도 모두 같은 이유에서였다. 생계를 위한 일이 아니라 자기가 사회에서 맡아야 할 역할을 실천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다카시마 요시미씨가 지역 주민들과 함께 정성껏 만든 홋카이도 전통 향토음식을 환한 미소로 홍보하고 있다. 고향의 맛과 문화를 이웃에게 알리는 이 활동은 그가 실천하는 또 하나의 '지역 사회 디자인'이자 다음 세대에 사람과 가치를 남기기 위한 소중한 실천이다. 사진=신현정 중부대 교수이미지 확대보기
다카시마 요시미씨가 지역 주민들과 함께 정성껏 만든 홋카이도 전통 향토음식을 환한 미소로 홍보하고 있다. 고향의 맛과 문화를 이웃에게 알리는 이 활동은 그가 실천하는 또 하나의 '지역 사회 디자인'이자 다음 세대에 사람과 가치를 남기기 위한 소중한 실천이다. 사진=신현정 중부대 교수

사람을 남기는 삶


요즘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다음 세대다. 그는 젊은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 교학상장(敎學相長, 가르치고 배우면서 서로 성장한다는 뜻)을 꿈꾸는 '유라대화숙(夢良話塾)'을 열어 차세대 리더를 키우고 있다. 그가 말하는 리더는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아름다운 삶을 디자인하는 사람(美生活Stylist)'이다.

그의 삶을 이끄는 좌우명은 메이지 시대 정치가 고토 신페이(後藤新平)의 말이다 "돈을 남기는 것은 하수요, 일을 남기는 것은 중수이며, 사람을 남기는 것이 상수다."

그래서 그의 관심은 젊은 세대에만 머물지 않는다. 몇 해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생전에 담근 홋카이도의 향토음식 산쇼즈케(三升漬)를 지역 어르신들과 함께 되살리는 일에도 힘을 쏟고 있다. 산쇼즈케는 매운 고추와 쌀누룩, 간장을 동일비율로 섞어 발효시킨 홋카이도와 도호쿠 지방의 전통 보존식이자 발효조미료다. 그것은 고향의 문화를 이어가기 위해서 이기도 하고, 부모에게 전하는 늦은 감사이기도 하다.

제2의 인생은 직업이 아니라 역할을 바꾸는 일


다카시마 씨는 새로운 직업을 찾은 사람이 아니다. 상품을 디자인하던 디자이너에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지역을 살리며, 미래를 디자인하는 사람으로 자신의 역할을 바꾸었다. 그가 말하는 제2의 인생은 은퇴 후 새로운 직장을 얻는 일이 아니었다. 사회와 맺는 관계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일이었다.

그의 마지막 말이 뇌리에 오래 남았다. "사람은 몇 살이 되어서도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초고령 일본에서 만난 다카시마 씨는 은퇴를 삶의 끝이 아니라, 자기가 세상에 무엇을 남길 것인 지를 다시 묻는 출발점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대답은 분명했다. 돈이나 직업이 아니라 결국 사람을 남기는 삶이야말로 가장 오래 남는 디자인이라고.

신현정 중부대학교 교수이미지 확대보기
신현정 중부대학교 교수

도쿄=신현정 중부대교수/릿쿄대학교 객원교원


신현정 중부대교수/릿쿄대학 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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