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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인물] TSMC 모리스 창 "파운드리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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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창 TSMC 전 CEO
모리스 창은 TSMC 라는 세계 최고의 파운드리를 만든 반도체 영웅이다. 본명은 중국어 본명은 장중머우 張忠謀이다. 모리스 창은 태생적으로 타이완 국적자가 아니었다. 대륙 중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건너온 중국계 미국인이다. 그는 50대의 늦은 나이에 연고도 없는 타이완으로 건너가 대만의 국가적 수호신산(護國神山)이라는 TSMCFMF 일구어냈다.반도체 산업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설계'와 '생산'을 분리하는 파운드리(Foundry)라는 완전히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시한 인물이다. 인류의 디지털 문명을 한 단계 격상시킨 반도체 혁명가이기도 하다.
모리스 창은 1931년 중국 저장성 닝보에서 재무 관료의 아들로 태어났다. 전형적인 대륙 출신의 중국인이었던 그는 어린 시절 중일전쟁과 국공내전의 포화를 피해 홍콩, 상하이, 충칭 등을 전전하는 혹독한 유랑 생활을 겪었다. 1949년 중국 대륙이 공산화되기 직전, 그의 가족은 홍콩을 거쳐 미국으로의 이민을 단행하였다.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하며 천재성을 증명하였고, 이듬해 MIT로 편입하여 기계공학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958년 당시 신생 반도체 기업이었던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에 입사하면서 그의 반도체 인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TI에서 근무하는 동안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전기공학 박사 학위까지 취득한 그는 특유의 완벽주의와 집요한 수율 개선 능력으로 능력을 인정받아 입사 20년 만에 전 세계 반도체 사업 부문을 총괄하는 수석부사장 자리까지 올랐다. 그 당시 아시아계 이민자로서는 미국 대기업 내에서 깨기 힘든 가장 높은 유리천장을 뚫어낸 독보적인 존재였다.

1980년대 초, TI의 경영진이 반도체 제조보다 가전제품 시장으로 눈을 돌리면서 모리스 창은 전략적 갈등을 겪기 시작하였다. 반도체의 미래가 제조 공정의 고도화에 있다고 믿었던 그는 결국 TI를 떠나 글로벌 일반 반도체(General Instrument)의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으나, 여전히 미국 주류 업계는 그의 거대한 야망을 담아내기에는 보수적이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그의 인생을 바꾼 타이완 정부의 프러포즈가 찾아온다. 1985년 당시 타이완의 경제부 장관이었던 리궈딩(李國鼎)은 타이완의 낙후된 산업 구조를 고부가가치 하이테크 산업으로 체질 개선하기 위해 전 세계를 뒤지며 최고 적임자를 찾고 있었다.

리궈딩은 미국 반도체 업계의 전설적인 거물인 모리스 창에게 타이완 공업기술연구원(ITRI) 원장직을 제안하며 삼고초려를 단행하였다. 대만 국적도 없고, 연고도 없으며, 평생을 미국식 합리주의 속에서 살아온 모리스 창이 이 제안을 수락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미국 시장에서는 이미 거대 IDM(종합 반도체 기업)들이 기득권을 쥐고 있어 새로운 패러다임을 시험할 수 없었지만,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보장된 타이완이라는 백지 위에서는 자신이 평생 구상해 온 반도체 제조의 혁신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54세의 나이에 보장된 미국의 부와 명예를 내려놓고, 기술적 황무지와 다름없던 타이완 해협을 건너는 모험을 선택하였다.
1987년 모리스 창이 타이완 정부 및 네덜란드 필립스의 합작 투자를 이끌어내며 설립한 회사가 바로 TSMC다. 창업 당시 TSMC는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아무런 존재감이 없는 미미한 후발주자에 불과하였다. 인텔, 삼성, 도시바 등 글로벌 거인들이 설계와 생산을 독식하던 시절, 모리스 창이 이 이름 없는 기업을 세계 1위의 독점 제국으로 키워낸 비결은 철저하게 차별화된 세 가지 전략에 기반한다.

첫째,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We do not compete with our customers)"는 불가역적 신뢰의 법칙이다. 모리스 창이 창업 초기부터 내건 이 슬로건은 현대 반도체 분업 생태계의 초석이 되었다. 당시 종합 반도체 기업들은 외부 기업의 칩을 위탁 생산해 주면서도 동시에 자사의 독자적인 제품을 설계하여 판매했기 때문에, 고객사들은 늘 기술 유출과 경쟁의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모리스 창은 TSMC는 평생 단 하나의 자체 브랜드 제품도 만들지 않고, 오직 고객의 도면을 완벽한 실리콘 칩으로 구워내는 파수꾼 역할만 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이 강력한 신뢰의 방어막이 생기자 엔비디아, 애플, AMD, 퀄컴 같은 천재적인 팹리스 기업들이 저마다의 핵심 기밀 도면을 들고 TSMC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경쟁자가 아닌 완벽한 동반자라는 인식은 TSMC를 대체 불가능한 중심축으로 만든 최고의 무기였다.

둘째, '수율의 연금술'과 자본의 선제적 초격차 투자다. 모리스 창은 반도체 위탁 생산의 핵심 경쟁력이 단순히 칩을 만드는 것에 있지 않고, 웨이퍼 한 장에서 불량품을 최소화하고 양질의 칩을 얼마나 많이 뽑아내느냐는 '수율(Yield)' 싸움에 있음을 꿰뚫어 보았다. 그는 TI 시절부터 축적한 하드웨어 제조 노하우를 바탕으로 초창기부터 가혹할 정도로 엄격한 공정 통제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나아가 경기가 불황에 빠져 경쟁사들이 투자를 줄일 때마다, 모리스 창은 도리어 차세대 미세 공정 공장(Fab) 건설에 수조 원의 막대한 자본을 쏟아붓는 반주기적 투자를 단행하였다. 이 선제적 투자는 경쟁사들이 기술적 추격을 시도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만드는 거대한 진입 장벽을 형성하였고, 결국 나노미터 단위의 초미세 공정 시장을 TSMC가 독식하는 결과로 귀결되었다.

셋째, 타이완 특유의 엔지니어 헌신 생태계(Cluster) 구축이다. 모리스 창은 미국 실리콘밸리의 이직 문화와 개인주의적 성향으로는 24시간 멈추지 않고 돌아가야 하는 초정밀 반도체 라인을 완벽하게 통제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지하였다. 그는 신주과학단지를 중심으로 수천 명의 박사급 엘리트 엔지니어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장을 지키며 교대 근무를 수행하는 촘촘한 인간 군락 생태계를 조직하였다. 기술적 결함이 발생하면 새벽 3시에도 전공 학위를 가진 엔지니어들이 전원 소집되어 몇 시간 만에 문제를 해결하는 이 가공할 만한 조직적 헌신성은 서구권 기업이나 여타 아시아 경쟁사들이 결코 복제할 수 없는 TSMC만의 독보적인 1위 비결로 자리 잡았다.
모리스 창이 일구어낸 TSMC의 독점적 위상은 이제 단순한 경제적 가치를 넘어 타이완이라는 국가의 생존을 담보하는 절대적인 정치·안보적 무기가 되었다. 오늘날 전 세계 국제정치학자들은 이를 '실리콘 쉴드(Silicon Shield, 반도체 방패)'라 부르며, 모리스 창을 타이완을 구한 실제적인 수호신으로 추앙한다. 만약 중국의 무력 침공으로 인해 타이완 본토에 위치한 TSMC의 미세 공정 공장들이 단 일주일만 가동을 멈춘다면, 전 세계 스마트폰 공급의 80%,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가속기 공급의 99%가 즉각 중단된다. 이는 미국과 서방 진영의 경제적 파멸뿐만 아니라 중국 자체의 테크 생태계 붕괴로 직결되는 파국적 시나리오다. 따라서 시진핑 체제의 중국 역시 함부로 타이완 해협에서 물리적 도발을 감행하지 못하며, 미국은 타이완의 안보 위기를 자국의 핵심 이익과 동일시하며 해군 전력을 전진 배치하고 있다. 타국적의 외지인으로 타이완에 들어왔던 모리스 창이, 결국 타이완이라는 국가 전체를 전 세계 강대국들이 목숨 걸고 지켜야만 하는 가장 안전한 섬으로 탈바꿈시킨 셈이다.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라며 자신을 극단적으로 낮추었으나 결과적으로 전 세계 테크 거인들의 머리 꼭대기 위에서 통행세를 거두어들이는 절대 갑의 제국을 완성한 모리스 창. 50대의 늦은 나이에 국적과 언어의 장벽을 넘어 대만으로 향했던 그의 위대한 투찰과 집요한 경영 철학은, 인공지능 시대의 거대한 폭풍 속에서 우리가 어떤 전략을 짜야 하는지 가장 명확한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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