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153조 원 단지’ 무산… 인프라 시장 게임의 규칙 전면 재편
1GW급 초거대 시설 등장에 전력망 포화… 기축 자산 몸값 뛴다
1GW급 초거대 시설 등장에 전력망 포화… 기축 자산 몸값 뛴다
이미지 확대보기글로벌 인공지능(AI) 인프라 시장의 축이 토지와 자본 경쟁에서 전력과 허가 경쟁으로 완전히 넘어갔다. 세계 최대 규모로 추진되던 미국 데이터센터 사업이 주민 반대와 전력망 부족 장벽에 가로막혀 결국 최종 무산됐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인프라 경쟁의 본질은 서버 성능이나 자금력이 아니라, 전력과 인허가를 누가 먼저 확보하느냐에 따라 이미 판가름 나고 있다.
법원 판결에 무릎 꿇은 1000억 달러 프로젝트
에너지 전문 매체 오일프라이스(Oilprice)는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사모펀드 블랙스톤 계열의 데이터센터 개발사 QTS가 버지니아 대법원에 제기했던 상고를 2일 취하했다고 보도했다. 이로써 버지니아주 프린스윌리엄 카운티에 추진되던 2100에이커 규모의 '디지털 게이트웨이' 프로젝트는 완전히 백지화됐다.
총사업비 1000억 달러(약 153조 원)에 달하는 세계 최대 디지털 인프라 사업이 착공도 못 하고 멈춰 선 셈이다. 공동 개발사였던 컴퍼스 데이터센터가 지난 4월 소송을 포기한 데 이어 QTS마저 손을 들면서 3년에 걸친 법정 공방은 종지부를 찍었다.
이번 사업은 축구장 1100개 크기 부지에 37개 데이터센터 건물을 짓는 초대형 계획이었으나, 주민들의 거센 반발과 행정 절차 하자가 발목을 잡았다. 지난 3월 버지니아 항소법원은 카운티 정부가 주민 공청회 개최 사실을 신문에 공고할 때 주법이 규정한 6일의 시차 조항을 지키지 않았다며 용도지역 변경 승인을 무효로 판결했다.
사소해 보이는 공고 절차 위반이 거대한 인프라 사업을 무너뜨리는 치명타가 됐다. 이는 대형 인프라 사업에서 지역 사회의 법률과 절차 위험이 실질적인 투자 위험으로 직결됨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중형 도시급 전력 소비… ‘발전기 직접 들이라’는 유틸리티
인공지능 인프라는 더 이상 서버를 꽂는 산업이 아니라 전력을 확보하는 산업으로 성격이 완전히 바뀌고 있다. 이미 세계 최대 데이터센터 허브인 버지니아 북부는 수십 GW의 부하가 걸려 전력 공급이 한계에 직면했다.
장기 송전망을 늘리는 데 보통 5~10년이 걸리는 반면, 인공지능 경쟁이 급한 빅테크 기업은 이를 기다릴 여유가 없다. 이에 따라 전력 회사들은 데이터센터 개발사들에 아예 발전기를 직접 들고 오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빅테크 기업들이 현장에 가스발전기나 소형모듈원전(SMR), 대형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직접 구축하거나 전력구매계약(PPA)을 직결하는 형태로 대응하면서, 데이터센터 기업이 사실상 발전 사업자화되는 전력과 IT 인프라의 수직 통합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위험한 맨땅 개발 회피… 기축 자산으로 쏠리는 글로벌 자본
부지 확보와 인허가, 전력 공급 리스크가 치솟자 글로벌 자본의 투자 전략도 급변하고 있다. 인허가 위험이 큰 '그린필드(맨땅 개발)' 투자를 피하고, 이미 완공돼 전력이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브라운필드(기축 자산)'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이러한 움직임은 특정 기업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글로벌 인프라 자본 전반의 공통된 전략 변화다.
블랙스톤은 지난 5월 뉴욕증권거래소에 '블랙스톤 디지털 인프라스트럭처 트러스트'를 상장해 17억 5000만 달러(약 2조 6700억 원)를 조달했다. 이 자금은 인공지능 수요가 확실하고 이미 임대가 완료된 안전 자산을 매입하는 데 집중 투입된다.
최근 디지털 리얼티에 버지니아 소재 데이터센터 3곳의 지분을 넘기며 35억 달러(약 5조 3500억 원)의 현금과 주식을 확보한 것도 개발 리스크를 낮추고 안정적인 자산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려는 움직임이다.
신규 공급이 막히면서 이미 전력을 확보한 데이터센터 리츠(REITs)와 인프라 펀드의 프리미엄은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인프라 시장 주도권 가를 4대 투자 신호
인공지능 인프라 시장의 주도권 향방을 가늠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서버 증설 규모가 아니라 전력 역량을 보여주는 지표들을 꼼꼼히 뜯어봐야 한다.
가장 먼저 살펴볼 지표는 빅테크 기업의 청정에너지 확보율이다. 이 수치가 높을수록 갈수록 까다로워지는 환경 규제와 전력 부족 리스크를 안정적으로 분산했다는 뜻이며, 시장에서 리스크 헤지와 밸류에이션 프리미엄을 받는 근거가 된다.
미국 내 주요 거점의 송전망 용량 유연성도 필수 점검 대상이다. 버지니아처럼 전력망이 포화된 지역을 대체해 오하이오나 텍사스 등 전력 여유가 있는 지역이 차기 데이터센터 허브로 부상할 가능성을 판별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완공된 데이터센터의 임대료 상승률을 추적해야 한다. 이는 현재 시장의 공급 제약 강도를 나타내며, 상승세가 지속될수록 기존 자산을 보유한 기업의 가치가 뛰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결정적인 변수는 ‘전기를 1킬로와트시(kWh) 만드는 데 진짜로 돈이 얼마나 드는가?’를 계산한 핵심 성적표인 전력 균등화원가(LCOE)다. 인공지능 연산 비용에서 전력 요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인 만큼, 이는 기업의 장기 경쟁력을 가르는 핵심 변수다.
인공지능 경쟁의 최종 승자는 반도체 칩이 아니라 전력을 가장 효율적이고 싸게 확보한 사업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