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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국채, 패권의 엔진서 시한폭탄으로

해밀턴의 1790년 부채 통합, 달러 패권 토대 마련
나랏빚 39조달러·이자 1조달러에 지속 가능성 시험대
미국 국가부채가 39조달러까지 불어나면서 해밀턴식 국가신용이 만든 달러 패권의 지속 가능성이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사진=챗GPT이미지 확대보기
미국 국가부채가 39조달러까지 불어나면서 해밀턴식 국가신용이 만든 달러 패권의 지속 가능성이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사진=챗GPT

미국 건국 250주년을 맞아 한때 미국 금융 패권의 출발점이었던 국가부채가 세계 금융시장의 구조적 위험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알렉산더 해밀턴 초대 재무부 장관이 1790년 독립전쟁 부채를 하나의 국가부채로 통합한 결정은 신생 미국의 신용을 세우는 혁명적 조치였다. 그러나 2세기 넘게 지난 지금 미국의 나랏빚은 39조달러(약 5경9700조원)까지 불어났다. 연간 이자 비용만 1조달러(약 1531조원)에 달해 국방 예산을 웃도는 수준이 됐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은 미국 부채가 과거에는 국가 경쟁력의 원천이었지만 이제는 연방정부와 채권시장을 짓누르는 구조적 위험으로 바뀌었다고 5일(현지시각) 분석했다.

◇ 해밀턴의 ‘부채 통합’이 만든 미국 신용

미국 금융 패권의 출발점은 독립전쟁 직후의 부채 처리였다.

영국과 싸우기 위해 대륙회의는 국내외에서 돈을 빌렸고 각 주도 별도로 전쟁 부채를 떠안았다. 독립 직후 미국은 정치적으로도 재정적으로도 취약한 신생국이었다. 투자자들은 새 헌법 아래 출범한 연방정부가 전쟁 당시 빚을 부인하거나 채권자에게 손실을 강요할 수 있다고 봤다.

해밀턴은 정반대 길을 택했다. 연방정부가 각 주의 전쟁 부채를 떠안고 이를 하나의 국가부채로 통합했다. 동시에 미국 정부는 과거 차입을 전액 상환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단순한 회계 정리가 아니었다. 미국이라는 새 국가가 빚을 갚는 나라라는 평판을 쌓는 출발점이었다. 신용이 생기자 미국 국채 수요가 늘었고 미 국채는 곧 유럽 시장에서도 거래되기 시작했다.
신뢰를 확보한 미국은 더 낮은 비용으로 돈을 빌릴 수 있었다. 이후 미국은 새 부채를 활용해 루이지애나 매입 같은 국가 확장도 추진할 수 있었다. 부채는 당시 미국에 부담이 아니라 자원을 끌어오는 도구였다.

◇ 국채가 달러 패권의 기반 됐다


해밀턴의 설계는 오늘날 미국 금융질서의 핵심으로 이어졌다.

미국 국채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간주된다. 각국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 글로벌 기업의 현금성 자산, 금융기관의 담보 자산으로 널리 쓰인다. 미 국채의 신뢰는 달러가 세계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는 핵심 기반이다.

이른바 ‘과도한 특권’도 여기서 나온다. 미국은 재정적자가 커도 다른 나라보다 낮은 비용으로 돈을 빌릴 수 있다. 투자자들이 미국 정부의 상환 능력과 달러 체제의 안정성을 믿기 때문이다.

미국 국채시장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깊고 유동성이 큰 시장이다. 유통 중인 미 국채 규모는 30조달러(약 4경5900조원)를 넘고 하루 거래액도 1조달러(약 1531조원)를 웃돈다.

이 구조는 미국에 막강한 금융권력을 줬다. 달러가 쓰이는 곳마다 미국의 금융 영향력이 작동하고 미국 국채는 글로벌 자금의 최종 피난처 역할을 한다.

◇ 39조달러 부채, 신용의 역설


문제는 성공한 체제가 스스로 부담을 키웠다는 점이다.

포춘에 따르면 미국 부채는 이제 39조달러(약 5경9700조원)에 달한다. 민간이 보유한 연방부채는 미국 경제 전체 규모와 맞먹는 수준으로 커졌다. 연간 이자 비용은 1조달러(약 1531조원)를 넘어 국방비를 웃돌고 있다.

부채가 늘어도 국채가 계속 팔리는 것은 미국의 강점이다. 그러나 최근 일부 국채 입찰에서는 필요한 수요를 끌어내기 위해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해야 했다. 미국 국채시장이 여전히 강하지만 투자자들이 더 많은 보상을 요구하는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 20년 동안 미국의 적자 확대는 더 가팔라졌다. 감세로 세입 기반은 약해졌고 사회보장과 메디케어 같은 복지 지출은 인구 고령화와 의료비 상승으로 계속 늘고 있다. 정치권은 지출을 줄이거나 세금을 올리는 선택을 미뤄왔고 그 결과 이자 부담이 다시 적자를 키우는 구조가 됐다.

해밀턴 시대의 부채는 신용을 만드는 수단이었다. 현재의 부채는 그 신용을 시험하는 압력으로 바뀌고 있다.

◇ 펜와튼 “GDP 210%가 한계선”


미국 부채가 언제 위기로 이어질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경고음은 커지고 있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펜와튼 예산모형은 최근 미국 연방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약 210%를 합리적으로 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이 수준을 넘으면 투자자가 요구하는 수익률을 감당하면서 이자 비용을 조달할 현실적 세금 기반이 사라진다는 설명이다.

현재 미국의 GDP 대비 부채 비율은 약 100% 수준이다. 미 의회예산국(CBO)은 이 비율이 2056년 175%까지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단순 경로만 놓고 보면 210% 한계선은 아직 수십 년 뒤의 문제처럼 보인다.

그러나 의료비 상승 속도에 따라 시간표는 크게 앞당겨질 수 있다. 펜와튼 예산모형은 성장률과 의료비 증가 가정에 따라 미국이 부채 한계에 도달하기까지 남은 시간이 19~25년 수준으로 좁혀질 수 있다고 봤다. 특히 의료비가 과거 추세대로 빠르게 오른다면 14년 안에 한계선에 도달할 확률도 25%로 제시했다.

이는 미국의 부채 문제가 먼 미래의 추상적 논쟁이 아니라 2030년대 후반부터 금융시장과 정치권의 핵심 리스크로 부상할 수 있다는 의미다.

◇ 국채시장 신뢰가 흔들릴 때가 진짜 위기


미국 부채의 위험은 숫자 자체보다 신뢰의 변화에 있다.

미국은 지금도 국채를 발행할 수 있고, 투자자들은 여전히 미 국채를 사들인다. 달러는 기축통화이고 미 국채시장은 대체하기 어려운 글로벌 안전자산 시장이다. 이 때문에 미국은 다른 나라라면 훨씬 이른 시점에 겪었을 압박을 늦출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구조는 투자자가 미국의 상환 의지를 믿는다는 전제에 달려 있다. 세입과 지출 구조를 고치지 못하고 부채가 계속 늘어나면 투자자들은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할 수 있다. 금리가 오르면 이자 비용은 더 커지고, 더 많은 국채 발행이 필요해지는 악순환이 생긴다.

펜와튼 예산모형이 지적한 것도 이 대목이다. 부채가 한계선에 실제 도달하기 전에, 투자자들이 미국 정부의 상환 능력이나 의지를 의심하기 시작하면 시장은 더 일찍 흔들릴 수 있다.

미국 부채가 세계 금융질서의 기반이라는 사실은 강점인 동시에 약점이다. 미 국채가 흔들리면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중앙은행, 은행, 연기금, 기업 자금 운용 전반에 충격이 번질 수 있다.

◇ 건국 250년, 미국 신용의 두 얼굴


미국 부채의 역사는 미국 패권의 두 얼굴을 드러낸다.

1790년 해밀턴의 부채 통합은 신생국 미국을 신뢰할 수 있는 채무자로 만들었다. 그 신뢰는 국채시장과 달러 체제를 키웠고, 미국을 세계 금융의 중심으로 세웠다. 부채는 미국이 영토를 넓히고 전쟁을 치르고 위기를 넘기는 데 필요한 자금을 끌어오는 수단이었다.

그러나 같은 부채가 이제는 미국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39조달러(약 5경9700조원)의 나랏빚과 1조달러(약 1531조원)의 이자 비용은 미국이 누려온 금융 특권이 무한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해밀턴이 만든 국가신용은 미국을 세계 금융강국으로 올려놓았다. 그러나 그 신용은 계속 관리될 때만 힘을 갖는다. 건국 250년을 맞은 미국이 직면한 질문은 부채를 활용해 패권을 키웠던 나라가 이제 그 부채를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느냐라고 포춘은 덧붙였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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