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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루피아화 폭락에 ‘외환 비상사태’ 선포… 중앙은행 금리 깜짝 인상

정기회의 아닌 ‘기습 인상’ 단행… 올 들어 루피아화 가치 8% 폭락하며 지역 최악 성적
프라보워 정권의 무분별한 포퓰리즘·중앙은행 안보 독립성 훼손이 투자자 엑소더스 부추겨
‘경제 수장’ 스리 무롄디 전 장관 경질 후 자본시장 신뢰 파탄… 군·경 동원한 통제에 민심 흉흉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환전소에서 인도네시아 루피아 지폐가 목격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환전소에서 인도네시아 루피아 지폐가 목격되고 있다. 사진=로이터
인도네시아 정부가 자국 통화인 루피아화의 거침없는 폭락세를 방어하기 위해 사실상의 ‘외환 비상사태’를 전격 선포했다.
중앙은행이 시장의 예측을 깨고 정기회의 일정을 건너뛴 채 ‘기습적인 금리 인상’이라는 충격 요법을 단행했으나, 프라보워 수비안토(Prabowo Subianto) 행정부의 무분별한 포퓰리즘 경제 전략과 독재주의적 시장 통제 기조가 바뀌지 않는 한 자본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엄중한 경고가 나왔다.

10일(현지시각) 미국 경제 전문 매체 블룸버그 통신(Bloomberg) 보도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중앙은행(BI)은 이번 주 시장의 예상을 뒤엎고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는 ‘깜짝 조치’를 단행했다. 불과 하루 전만 해도 고위 관료가 깜짝 금리 조정 가능성을 부인했기에 자본 시장의 충격은 더욱 컸다.

이란 전쟁 장기화에 따른 글로벌 유가 폭탄이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자극을 가중시키는 가운데,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은 정기 정책 회의 일정 사이의 공백을 깨고 긴급 방어 펜스를 친 것이다.

자본시장의 격렬한 붕괴… 루피아화 가치 올 들어 8% 폭락 ‘최악’


블룸버그 통신은 이 같은 일정 외 기습 금리 인상에 대해 "관료들이 시장의 가파른 폭락이나 급격한 경제 전망 악화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극도로 허둥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코 좋지 않은 신호"라고 짚었다. 현재 인도네시아 자본시장은 글로벌 투자자들의 가혹한 이탈 속에 ‘포위된 시장’으로 전락했다.

루피아화 가치는 달러화 대비 연일 사상 최저치를 갈아치우며 올해 들어서만 약 8% 폭락,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처참한 성적표를 노출했다. 장기 국채 금리(수익률) 역시 지난 2022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으며 채권 시장마저 심각한 마진 쇼크에 직면했다.

이러한 위기의 배후에는 지난 2024년 집권한 특전사 장성 출신의 프라보워 대통령과 그의 경제팀이 내놓은 무리한 정책 도발이 자리 잡고 있다. 프라보워 정권은 지난 한 달 동안 수익성이 높은 주요 원자재 수출 통제권을 정부가 강제로 장악한 데 이어, 민간인들이 루피아화를 달러화로 환전하는 조치까지 까다롭게 제한해 투자자들을 뒤흔들었다.

무엇보다 의회에 중앙은행(BI)의 성과를 직접 감시·조사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물가 안보를 책임지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여기에 프라보워 대통령의 조카를 중앙은행 부총재 자리에 앉히는 노골적인 족벌주의 인사로 시장의 신뢰를 완전히 분쇄했다.

설상가상으로 정권의 핵심 포퓰리즘 공약이자 막대한 국가 예산이 투입되는 ‘학교 무료 급식 프로그램’의 책임자가 대규모 식중독 사고와 부패 혐의로 전격 경질되는 등 국정 난맥상까지 고스란히 노출됐다.

경제 disasters 막으려 군·경 전면 배치… 수하르토 실각 잔혹사 데자뷔


경제 파탄에 따른 민심 이반과 대규모 시위 가능성에 직면하자, 프라보워 대통령은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조직인 군대와 경찰을 민간 영역에 전면 배치하는 독재주의적 통제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인도네시아 의회는 9일, 경찰관이 민간 행정직 공직을 합법적으로 겸임할 수 있도록 경찰법을 전격 개정했다. 이는 군·경의 민간 개입을 대대적으로 허용했던 과거 수하르토(Suharto) 독재 정권 시절의 악령을 소환하는 조치다.
1998년 유혈 거리 시위로 수하르토 정권을 축출한 이후 인도네시아 국민들은 공공 생활에서 군사 기구를 배제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왔으나, 프라보워 대통령은 자신의 핵심 무료 급식 사업 이행을 명분으로 전역에 수만 명의 군대를 배치해 치안 통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현지에서는 범죄 혐의자에 대한 '즉각 사살(Shoot-on-sight)' 명령과 공권력의 과도한 무력 행사 의혹이 겹치며 민간 안보 공포가 극도로 고조된 상태다.

“스리 무롄디 전 장관을 긴급 수혈하라”… 경제팀 전면 쇄신 요구 비등


블룸버그 통신은 자본 시장의 전면적인 신뢰 붕괴를 막기 위해 프라보워 대통령이 뼈를 깎는 경제 기조 전환과 전면적인 인적 쇄신에 나서야 한다고 강하게 권고했다.

가장 치명적인 패착은 지난 9월, 자본 시장의 든든한 신뢰 보루였던 스리 무롄디 인드라와티(Sri Mulyani Indrawati) 재무장관을 전격 경질한 것이었다. 세계은행(World Bank) 부총재 출신인 그녀는 조코 위도도 전 정권과 프라보워 정권 초기의 격동기 속에서 재정 지출 규칙과 중앙은행의 자율성을 철저히 사수하며 글로벌 자본의 안보 펜스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반면 그녀의 후임자인 푸르바야 유디 사데와(Purbaya Yudhi Sadewa) 장관은 취임 초기, 인도네시아 재정에 대해 비관적 리포트를 낸 시티그룹(Citigroup) 소속 경제학자를 향해 거친 보복성 언사를 퍼붓는 등 ‘메신저 공격’에만 몰두해 자본시장의 비웃음과 자본 이탈 체증을 가중시켰다.

블룸버그는 프라보워 대통령이 당장 사 자존심을 꺾고 스리 무롄디 전 장관을 재무장관으로 긴급 복귀시켜 시장에 안정 신호를 보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아직 파국을 막을 골든타임은 남아 있다. 루피아화가 폭락하고 중앙은행이 비상수단을 동원하고 있으나, 1997~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통화 가치가 형체도 없이 파괴되고 수하르토가 실각하며 수년간 테러와 종족 분쟁의 화염에 휩싸였던 대참사 수준까지 가려면 아직 통상적인 방어 룸이 존재한다는 분석이다.

전장터에서 단호한 결단력을 훈련받은 군 장성 출신의 대통령은 이제 자본시장이라는 거대한 전장 위에서 거대한 시험대에 섰다.

프라보워 대통령이 허황된 거대 포퓰리즘 프로젝트를 과감히 축소하고 거시경제 규칙을 준수하는 결단을 내릴 것인지, 아니면 독재주의적 군사 통제에 의존하다 파멸로 직행할 것인지 전 세계 자본시장의 냉정한 시선이 쏠리고 있다.


신경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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