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지정학 위기에 자산 잠식 가속… 은퇴 후 '손실 방어' 자산 관리 시급
단기적 생활비 압박 속 중장기 자산 수명 연장 위한 포트폴리오 재설계 요구
단기적 생활비 압박 속 중장기 자산 수명 연장 위한 포트폴리오 재설계 요구
이미지 확대보기미국 은퇴자들이 고물가 지속과 지정학 리스크에 따른 비용 상승으로 심각한 자산 잠식 위기에 직면했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슈로더가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은퇴자 58%는 보유 자산이 언제 고갈될지 모르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고금리 기조 속에서도 고물가가 고착화하면서 고정 소득으로 생활하는 은퇴 가구의 실질 구매력이 급격히 떨어졌음을 보여준다. 국내 은퇴 자산 시장도 국민연금 고갈 우려와 맞물려 있어 미국 은퇴자들의 자산 수명 위기는 한국 시장에도 착안할 점이 크다.
고물가·지정학 리스크 합작… 고정 소득층 직격탄
슈로더가 3월 20일부터 4월 15일까지 진행한 은퇴자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절반은 은퇴 후 지출이 예상보다 많다고 답했다. 물가상승률은 지난 2022년 9.1%로 정점을 찍은 뒤 둔화했으나 여전히 공고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이란과의 무력 충돌로 인한 유가 급등과 관세 인상은 상품 가격을 다시 밀어 올렸다. 갤럽의 4월 조사에서도 미국인 절반 이상은 고물가를 가장 큰 재정 문제로 꼽으며 가계 재정이 악화했다고 답변했다.
은퇴자들의 자산 수명을 위협하는 요인은 △자산의 실질 가치 하락 △의료비 부담 증가 △시장 변동성 등 크게 세 가지다.
자산 축적과 인출의 차이… 턱없이 부족한 은퇴 자금
증시 호황으로 주식 보유자들은 이익을 봤으나 대다수 미국인의 은퇴 준비는 미흡한 실정이다. 퇴직연금 서비스 기관 엠파워의 올해 1월 데이터에 따르면 60대 가입자의 401(k) 잔고 중앙값은 18만 7249달러(약 2억 8200만 원)에 불과했다. 70대는 이보다 적은 9만 5931달러(약 1억 4400만 원)로 집계됐다. 기대수명이 80세를 넘어 90세까지 늘어나는 상황에서 1억~2억 원 안팎의 자산으로 30년 이상의 은퇴 기간을 버티기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데브 보이든 슈로더 미국 확정기여형(DC) 부문 대표는 "은퇴 자산을 모으는 시기와 이를 인출해 쓰는 시기의 자산 관리는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 설명했다. 은퇴 후에는 자산 성장보다 손실 방어가 유효성 확보의 핵심이라는 뜻이다. 슈로더 조사에서 응답자 66%는 은퇴 전 더 철저하게 재무 계획을 세우지 못한 점을 후회했다. 전문 재무 고문과 협력하는 비율은 32%에 그쳤다. 재정 상태를 두고 '악몽 같다'거나 '어렵다'고 답한 취약 계층은 24%에 달했다.
한국도 위험자산 비중 낮고 공적연금 의존도 높아… 소득 공백 대응 시급
한국 은퇴자들의 자산 구조는 인플레이션 방어에 취약하다. 지난해 금융투자협회 조사에 따르면 국내 가구의 비금융자산(부동산 등) 비중은 70%를 웃돌며, 금융자산 내에서도 현금·예금 비중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이 40%대 수준에 머무는 상황에서 고물가가 지속되면 실질 구매력은 빠르게 악화한다.
단기적으로는 퇴직 후 국민연금 수급 전까지 발생하는 소득 공백기('소득 크레바스')를 메우기 위해 고령층의 노동시장 재진입이 늘어날 전망이다. 중장기적으로는 노후 자산의 급격한 잠식을 막기 위해 주택연금 활용도를 높이고 개인연금을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 등을 통해 타깃데이트펀드(TDF)나 배당형 자산으로 전환하는 포트폴리오 다변화가 필수 과제다.
투자자 체크포인트, 은퇴 자산 방어 여부를 판단할 3가지 지표
국내외 자산시장 전문가 및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들의 조언을 바탕으로, 투자자가 노후 자산의 고갈을 막기 위해 추적해야 할 핵심 지표를 제시한다.
첫째, 실질 인출률 (Safe Withdrawal Rate)이다. 매년 원금을 해치지 않고 꺼내 쓸 수 있는 자금의 비율이다. 고물가 시기에는 통념인 4% 법칙보다 낮은 3%대 조정을 검토해야 자산 수명을 연장한다.
둘째, 물가 연동 자산 비중이다. 현금과 채권 중심 포트폴리오의 인플레이션 방어 잠식도를 측정한다. 물가연동채(TIPS)나 배당성장주 같은 헤지 자산을 편입해 구매력을 보존해야 한다.
셋째, 연금 전환 비율 (Annuatization)이다. 보유 자산 중 종신 연금 형태로 확보된 고정 현금 흐름의 규모다. 하락장 변동성과 장수 위험을 동시에 방어할 수 있는 보장성 자산 비중을 점검해야 한다.
단기적으로 미국 은퇴자들은 소비 지출을 줄이거나 파트타임 근무를 재개하는 방식으로 고물가 국면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중장기적으로는 자산 운용의 패러다임이 '고수익 추구'에서 '정기적 현금 흐름 창출 및 원금 보호'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연령이 높아질수록 변동성 관리가 자산 수명을 결정짓는 만큼, 국내 금융소비자 역시 노후 자산의 동적 인출 전략과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서둘러 점검해야 한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