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글로벌이코노믹 로고 검색
검색버튼

美 제재 뚫은 中 민간 정유사 ‘티폿’, 이란 석유 싹쓸이

美 재무부, 헝리석유화학 등 이란 거래망 타격
위안화 결제·그림자 선단 앞세워 제재 회피
원유 공급망 흔들…국제유가 상승 압력 커져
중국 칭다오 항구에 정박해 원유를 하역하는 유조선. 사진=연합뉴스. 이미지 확대보기
중국 칭다오 항구에 정박해 원유를 하역하는 유조선. 사진=연합뉴스.
중동 지역 군사 긴장감이 커지는 가운데, 미국 정부가 이란의 핵심 자금줄인 중국 민간 정유사 이른바 '티폿(Teapot)'을 정조준하고 나섰다.
지난 1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미국 재무부는 이란산 원유를 대거 사들이는 중국 티폿과 관련 해운사들을 제재 명단에 올리며 자금 차단에 들어갔다.

위기에 빠진 이란 경제를 지탱하는 중국의 숨은 원유 수입망을 끊어내겠다는 미국의 강력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촘촘해진 미국의 포위망과 엇갈린 반응


미국은 이란 항구를 막고 유조선을 나포하는 등 압박 수위를 한층 높이고 있다. 특히 이란이 수출하는 원유를 거의 모두 쓸어 담는 중국 소규모 민간 정유사들이 주요 표적이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주 이란산 원유를 수십억 미국 달러어치 사들인 까닭으로 중국 헝리석유화학 자회사와 무역선 40척을 제재했다.

이어 지난달 28일에는 중국 정유사들의 이란산 석유 거래를 돕는 금융기관도 제재를 받을 수 있다고 엄중히 경고했다.

그런데도 중국 당국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주 브리핑에서 "미국의 일방 제재는 국제법에 근거가 없다"라며 자국 기업의 권리를 지키겠다고 맞섰다.

원유 시장 조사업체 케이플러(Kpler) 자료를 보면, 중국의 이란산 원유 수입량은 2017년 이후 꾸준히 늘어 지난해에는 하루 평균 140만 배럴에 이르렀다. 이는 2025년 중국 전체 원유 수입량 가운데 12%를 차지하는 엄청난 규모다.

제재 무력화하는 위안화와 '그림자 선단'


서방의 거센 제재에도 티폿이 살아남은 비결은 치밀한 회피 수단과 독자 결제망에 있다. 헝리석유화학을 비롯한 티폿들은 대형 국영 정유사와 달리 해외 자산이 거의 없어 미국 금융망에서 쫓겨나도 잃을 것이 적다.

더구나 거래 대금을 미국 달러가 아닌 중국 위안화로 치르면서 미국의 감시망을 가볍게 벗어났다.

바다 위에서는 '그림자 선단'이 활약한다. 선박 위치 발신기를 끄고 바다 한가운데서 원유를 몰래 옮겨 싣는 위험한 방식을 쓴다.
미국 비영리단체 '핵 없는 이란을 위한 연합(UANI)'의 대니얼 로스 연구 책임자는 "테헤란 정권을 유지하는 것은 바로 중국 티폿 정유사들"이라고 꼬집었다.

UANI가 파악한 이란산 원유 비밀 운송 의심 선박은 2020년 70척에서 올해 초 600여 척으로 급증했다.

선박 추적업체 보텍사(Vortexa)의 에마 리 중국 담당 분석가는 "제재를 받는 시장 자체가 너무 커지면서, 시장 참여자들이 제재를 두려워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진단했다.

헝리석유화학이 지난해 올린 매출은 2018년보다 세 배 뛴 300억 미국 달러(약 44조 3100억 원)를 웃돌았다.

전면 차단의 한계와 시장의 우려


미국의 전방위 압박이 도리어 글로벌 원유 시장 불안을 키울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콜럼비아대학교 글로벌 에너지 정책 센터의 에리카 다운스 연구원은 중국 티폿이 이란산 원유 최대 구매자로 떠오른 현상에 대해 "치밀한 계획이라기보다는 우연에 가깝다"라고 평가했다.

2018년 미국 행정부가 대이란 제재를 강화하자, 중국 국영 기업들이 몸을 사린 틈을 타 티폿이 이란산 원유를 헐값에 독차지했다는 뜻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제재 실효성에 의문을 던지는 해석이 우세하다. 이미 덩치가 커진 지하 경제망을 완전히 뿌리 뽑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만약 미국이 유조선 나포를 크게 늘리거나 이란 수출 시설을 직접 타격하는 등 극단 조치를 꺼내 든다면, 국제 유가는 걷잡을 수 없이 뛸 수밖에 없다.

증권가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이 원유 전량을 수입에 기대는 한국 경제에도 묵직한 변수가 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중동발 지정학 위기와 미·중 갈등이 얽힌 복합 위기 속에서 유가 상승 압력이 커지면 국내 산업 전반에서 비용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미국이 국제유가 안정을 위해 이란 제재 수위를 어떻게 조절할지가 글로벌 에너지 시장 향방을 가를 핵심 잣대라는 게 시장 참여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맨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