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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국채 금리 4% 돌파… 이란 전쟁發 30조 달러 채권시장 '유동성 공황' [국채시장 경고]

시장 깊이 40~50% 급락, 단기 선물은 평균 대비 80% 증발… 지난해 '관세 충격'과 맞먹는 충격
월가 대형 은행들 자동 호가 시스템 일제 차단… 수동 거래 전환으로 시장 기능 마비 직전
2년물 금리, 이달에만 0.62%p 급등… 2022년 9월 이후 최악의 월간 상승 폭
이란과의 전쟁이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총 30조 달러(약 4경 5180조 원) 규모의 미 재무부 채권 시장이 유동성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이란과의 전쟁이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총 30조 달러(약 4경 5180조 원) 규모의 미 재무부 채권 시장이 유동성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사진=로이터
유동성 가뭄의 실체…"거래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미국 뉴욕 채권 시장에 전례 없는 거래 절벽이 들이닥쳤다. 이란과의 전쟁이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30조 달러(45180조 원) 규모의 미 재무부 채권 시장이 유동성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특정 자산의 가격을 크게 변화시키지 않으면서 대규모 주문을 흡수할 수 있는 시장의 능력을 말하는 '시장 깊이(Market Depth)'가 전쟁 발발 이전과 비교해 40~50%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27(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는 현재 미 국채 시장에서 진행되는 구조적 붕괴의 실체를 보도했다.

메건 스위버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이자율 전략 분석가는 "지금이 전쟁의 정점인지 누구도 확신하지 못한다""이 불확실성이 투자자들을 시장 밖으로 내몰고 있다"고 진단했다. 단기 국채 선물 시장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한 대형 자산운용사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주 선물 시장의 깊이는 올해 평균치 대비 최대 80%까지 증발했다. 이는 지난해 4월 트럼프 대통령이 '해방의 날' 관세 정책을 발표하며 시장을 강타했던 당시와 맞먹는 충격 강도다.

특히 323일에는 월가 대형 은행들이 평소 24시간 가동하던 자동 호가 시스템을 일제히 차단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란과 생산적 대화를 나눴다"고 밝혔으나, 이란 측이 수 시간 내 즉각 부인하면서 호가 스프레드가 급격히 벌어졌기 때문이다. 딜러들은 기계 대신 트레이더가 직접 상대방을 찾아 협상하는 수동 거래 체제로 급전환했고, 이 과정에서 시장 기능은 마비 직전까지 내몰렸다.
국내 채권 운용 업계 관계자는 "미 국채 시장의 자동 호가 시스템이 차단되면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채권 딜러들의 실시간 호가 참조 자체가 불가능해진다""이는 단순 가격 변동과는 차원이 다른 구조적 문제"라고 설명했다.

에너지 공포가 불 지핀 금리 상승… '인하 기대'에서 '인상 우려'180도 역전


시장 혼란의 진원지는 에너지 가격이다.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치솟으면서 이미 고점을 지났다고 여겨졌던 인플레이션이 재점화될 수 있다는 공포가 빠르게 퍼졌다. 이 공포는 곧바로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를 내리기는커녕 추가 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로 증폭됐다.

통화 정책 방향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2년 만기 국채 금리는 326일 하루 만에 0.12%포인트 급등하며 4% 선을 넘어섰다. 3월 한 달 동안에만 0.62%포인트가 뛰어올랐는데, 이는 20229월 이후 가장 가파른 월간 상승 폭이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금리 선물 시장은 올해 2~3차례의 금리 인하를 기정사실처럼 반영했지만, 이제는 추가 인상 가능성까지 가격에 담기 시작했다.

국채 경매 시장도 냉기가 감돌고 있다. 이번 주 실시된 690억 달러(1039100억 원) 규모의 2년물 입찰과 700억 달러(1054200억 원) 규모의 5년물 입찰에서 민간 투자자 수요가 크게 위축됐다. 그 결과 국채 인수를 최종적으로 책임지는 프라이머리 딜러(국채 전문 딜러)들이 떠안은 낙찰 비중이 2022~2024년 이후 최대 수준으로 불어났다. '시장이 정부 부채를 받아줄 의사'가 사라지고 있다는 경고 신호다.

충격, 채권에서 주식으로… "금융 시스템의 벤치마크가 흔들린다"


미 국채 시장의 혼란은 채권 시장 내부에서 그치지 않는다. 미 국채 금리는 전 세계 기업 대출, 모기지, 주식 밸류에이션 등 모든 자산 가격의 기준 금리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스콧 루브너 시타델 주식 전략 책임자는 "미 주식 시장의 유동성도 극도로 얇아진 상태"라며 "원하는 시점에 자산을 매각하기 어려워지면서 충격이 배가되고 있다"고 밝혔다. 채권과 주식 시장이 동시에 유동성 부족을 겪으면서, 개별 자산의 가격 하락이 연쇄 매도를 부르는 악순환 고리가 형성되는 양상이다.

제임스 카터 W1M 채권 공동 책임자는 "지정학적 불안이 진정되면 시장이 빠르게 정상화될 수도 있다"면서도,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른 물가 압박이 지속될 경우 투자자들이 시장에 복귀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 금융시장으로 번진 파고… 원화·코스피 동반 압박


미 국채 시장의 유동성 경색은 태평양을 건너 한국 금융시장을 직접 압박하고 있다. 2년물 국채 금리가 4%를 넘어서자 한미 금리 격차가 다시 확대되며,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심리적 저항선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치솟았다. 글로벌 자산 배분이 달러로 쏠리는 과정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국내 주식 매도세가 강해졌고,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대형 IT 종목을 중심으로 코스피의 시장 깊이도 급격히 얇아진 상태다.

국내 채권 금리 역시 미 국채 수익률 상승과 연동해 오르며 기업들의 자금 조달 여건을 악화시키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미 국채 시장의 이상 징후가 해소되지 않는 한, ·달러 환율 변동성과 외국인 자금 이탈 흐름이 2분기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보고 있다.

중동의 지정학적 불씨가 꺼지지 않는 한, 30조 달러 채권 시장의 가격 발견 기능 훼손과 이에 따른 전 세계 금융 비용 상승이라는 이중 충격은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 시장의 지배적 시각이다. 지금 이 순간, 미 국채 시장이 흔들린다는 것은 곧 세계 금융 시스템 전체의 기초가 흔들린다는 뜻이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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