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발 에너지 쇼크에 스태그플레이션 공포 확산… 스타머 총리, 긴급 회의 소집
2008년 이후 최고 금리·재정 악화 겹쳐… 한국 채권·외환시장도 '이중 경계령'
2008년 이후 최고 금리·재정 악화 겹쳐… 한국 채권·외환시장도 '이중 경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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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10년물 5.05%… 16년 만의 '공포 수치'
파이낸셜타임스(FT)는 23일(현지시각) 영국 10년 만기 국채(길트, Gilt) 금리가 전 거래일 대비 0.06%포인트 오른 5.05%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6년 만의 최고치다. 통화정책 기대에 민감하게 연동되는 2년물 금리 역시 같은 날 0.08%포인트 뛴 4.65%까지 치솟았다. 장기물도 예외가 아니다. 20년물 국채 금리는 이미 5.54%를 웃돌고 있다.
수치만큼이나 충격적인 것은 속도다. 중동 분쟁이 불거진 이후 10년물 금리는 수 주 사이 무려 0.8%포인트 급등했다. 2년물은 같은 기간 97bp(0.97%포인트)나 뛰었다. 영국 국채 시장은 리즈 트러스 전 총리의 무계획적 감세안이 금융시장을 마비시켰던 2022년 9월 '미니 예산(Mini-Budget)' 사태 이후 최악의 한 달을 기록 중이다.
"금리 인하는 옛말"… 스왑 시장이 보내는 경고
잉글랜드은행은 지난 19일(현지시각)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3.75%로 묶었다. 그런데 결과는 예상보다 훨씬 매파(통화 긴축 선호)적이었다. 시장은 9인 통화정책위원회가 7-2로 분열할 것으로 점쳤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만장일치였다. 중앙은행이 내부적으로 얼마나 경계 수위를 높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잉글랜드은행은 에너지 가격 충격이 소비자물가지수(CPI) 인플레이션을 단기적으로 다시 끌어올릴 수 있다고 공식 경고했다.
스왑 시장(Swaps market)은 더 단도직입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투자자들은 이제 잉글랜드은행이 연내 0.25%포인트씩 네 차례, 총 1%포인트를 추가 인상할 가능성을 가격에 완전히 반영하고 있다. 연내 기준금리가 4.75%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다.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세 차례 인상이 시장의 '공식 기대'였던 것이, 단 일주일 만에 한 단계 더 높아진 셈이다.
이 이면에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공포가 자리한다. 에너지 가격이 치솟으면 물가는 오르지만, 소비는 얼어붙는다. 중앙은행은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하지만, 그 긴축이 이미 위축된 경기에 다시 냉각수를 붓는 이율배반적 상황이 펼쳐진다. 고물가와 저성장이 맞물리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공포가 채권시장 전반에 번지고 있다.
스타머 총리, 긴급회의 소집… 정치 리스크도 수면 위로
사태가 심상치 않자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잉글랜드은행 총재 앤드류 베일리와의 긴급회의를 소집해 위기 수습 방안을 논의했다. 국채 금리 급등이 정부의 재정 목표를 정면으로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재정 악화 우려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영국 공공부문 차입은 2026년 2월 한 달에만 143억 파운드(약 28조7200억 원)에 달했다. 시장 예측치인 85억 파운드(약 17조 원)를 70% 가까이 웃돈 수치로, 이는 코로나19 충격이 최고조에 달했던 2021년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높은 2월 차입 기록이다.
재정 적자 확대는 국채 발행 증가로 이어진다. 국채 공급이 늘어나면 가격이 내려가고(금리 상승), 변동성이 커진 틈을 타 손실을 감당하지 못한 투기 세력이 강제 매도에 나서면서 하락이 또 다른 하락을 부르는 악순환이 형성된다.
'삼중고'에 빠진 영국 경제… 전문가 진단
특히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이 부각되면서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영국의 취약성이 더욱 도드라지고 있다. 브렌트유와 유럽 천연가스 가격이 다년간의 최고치를 잇따라 경신하며 인플레이션 재상승 경고에 기름을 붓고 있다.
다만 신중론도 존재한다. MUFG의 데릭 핼퍼니 유럽·중동·아프리카(EMEA) 시장 조사 부문장은 "현재 국채 금리 움직임에는 과도한 측면이 있다"며 "연내 네 차례 금리 인상 기대는 시장이 에너지 충격을 지나치게 즉각적으로 반영한 결과"라고 밝혔다. 분쟁이 조기에 진정될 경우 기대치가 다시 하향 조정될 여지가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 채권·외환시장도 '이중 경계령'
영국발 충격은 한국과 무관하지 않다. 국내 채권 전문가들은 영국 금리 급등이 글로벌 채권 매도세를 자극해 한국 국고채 금리에도 상방 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원·달러 환율 불안이 겹칠 경우 외국인 자금 이탈 속도가 빨라질 수 있어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결정에도 간접 변수가 된다는 것이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역시 중동발 가격 충격에 취약하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국제 에너지 가격이 현 수준을 유지할 경우 국내 수출 제조업체의 원가 부담이 연간 수조 원 규모로 불어날 수 있다는 내부 추산도 나오고 있다. 영국 사태를 단순한 유럽의 금융 불안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이유다.
에너지 위기 장기화… '고금리 고착화' 경고
중동 사태의 향방이 영국 통화정책의 가장 결정적인 변수다. 잉글랜드은행은 지난해 5.25%에서 3.75%까지 내리며 완화 사이클을 가동했지만, 에너지 쇼크로 인한 인플레이션 재점화가 그 행보를 단번에 뒤집어놓을 수 있는 국면이다.
UBS는 최근 보고서에서 영국 국채의 2026년 회복 가능성을 언급하며 잉글랜드은행의 추가 금리 인하 여력이 남아 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이는 에너지 시장 안정, 재정 건전성 강화, 인플레이션 둔화라는 세 가지 조건이 동시에 충족돼야 가능한 시나리오다. 세 가지 모두를 단기간에 달성하기란 쉽지 않다. 안전자산의 반열에서 내려온 영국 국채가 신뢰를 회복하기까지, 시장의 겨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