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데이터센터 전력난 돌파구 열리나…삼성·SK하이닉스 차세대 메모리 경쟁 구도 흔들
이산화루테늄 박막서 세계 최초 구현, MRAM·SSD 성능 비약 예고
이산화루테늄 박막서 세계 최초 구현, MRAM·SSD 성능 비약 예고
이미지 확대보기그 해법이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출현했다. 일본 공동 연구팀이 '자성체의 혁명'으로 불리는 알터자성(Altermagnetism) 소재를 실제 박막 형태로 구현하는 데 성공하면서,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판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산화루테늄 박막에서 '알터자성' 세계 최초 확인
미국 기술 전문 매체 네오윈(Neowin)은 지난 14일(현지시간), 일본 국립재료과학연구소(NIMS)·도쿄대학교·교토공과대학·도호쿠대학 공동 연구팀이 이산화루테늄(RuO₂) 박막에서 알터자성을 실험적으로 입증했다고 보도했다. 이론의 영역에만 머물던 알터자성이 실제 소재로 구현된 세계 최초 사례 중 하나로, 기존 강자성체·반강자성체가 각각 안고 있던 근본적 한계를 단번에 넘어서는 '제3의 자성체'가 탄생했다는 점에서 학계와 산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강자성·반강자성의 딜레마를 동시에 넘어선 '제3의 자성'
강자성체는 자성 방향이 일정해 데이터 기록과 판독이 수월하지만, 소자가 극소화될수록 주변 자기장 간섭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져 집적도를 끌어올리는 데 물리적 한계에 부딪혀 왔다. 반강자성체는 내부 스핀이 서로 맞상쇄되어 외부 자기장 간섭에는 철벽 방어를 구축하지만, 저장된 정보를 전기 신호로 읽어내기가 극히 까다롭다는 치명적 약점을 지닌다.
알터자성체는 이 두 난제를 동시에 해소한다. 외부에서 측정되는 순자화(net magnetization) 값은 사실상 '0'에 수렴해 자기장 간섭 문제를 원천 차단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스핀 방향에 따라 전기 저항이 달라지는 '스핀 분할 자기저항' 현상이 발생해 전기 신호만으로 데이터를 빠르고 정확하게 판독할 수 있다.
도쿄대학교 연구진은 "알터자성은 순자화가 없으면서도 강한 스핀 분할을 유지하는 독특한 특성 덕분에 차세대 스핀트로닉스 소자 구현에 가장 적합한 후보"라고 평가했다. 스핀트로닉스는 전자의 전하뿐 아니라 회전(스핀) 상태까지 정보 처리에 활용하는 기술로, 전원을 차단해도 데이터가 보존되는 비휘발성과 초고속 작동이 핵심 특징이다.
'원자 정렬'이 비결… 에피택시얼 성장으로 잠든 특성 깨워
이번 성과의 기술적 핵심은 원자 단위의 정밀 공정에 있다. 연구팀은 사파이어(Al₂O₃) 기판 위에 이산화루테늄 원자를 단일 방향으로 정렬하는 '에피택시얼 성장' 공법을 적용했다. 모자이크 타일을 무작위로 배열하면 전체 문양이 흐릿하지만 결정축을 맞춰 정렬하면 패턴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원리와 같다. 결정축을 일치시키자 기존 방식으로는 포착되지 않던 알터자성의 특성이 비로소 뚜렷하게 나타났다.
연구팀은 X선 회절(XRD) 분석과 투과 전자현미경(TEM) 관찰로 박막의 결정 구조를 검증한 끝에 스핀 분할 자기저항 측정에 성공했다. 알터자성체가 학술 이론의 울타리를 넘어 실제 메모리 소자로 기능할 수 있음을 실험으로 증명한 것이다.
도호쿠대학교 관계자는 "이번에 개발한 분석 방법은 다른 알터자성 후보 물질에도 그대로 적용 가능하다"며 "AI 시대의 고속 연산과 대용량 저장에서 발생하는 병목 현상을 해소할 핵심 소재로 실용화를 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SK하이닉스에도 파장 불가피… MRAM 경쟁력 재점검 시급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MRAM은 이미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에버스핀(Everspin Technologies) 등 해외 기업이 틈새 시장에서 양산을 진행 중인 분야"라며 "알터자성체라는 새 변수가 가세하면 차세대 메모리 경쟁 구도는 지금과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에버스핀은 최근 256Mb xSPI STT-MRAM 제품을 발표했으며, 2026년 7월까지 생산 인증(Production Qualification)을 완료하고 2026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대량 생산 및 공급을 시작할 예정이다. 이미 산업용 및 차량용 시장을 겨냥한 64Mb 제품은 인증을 마치고 공급 중이며, 고신뢰성이 요구되는 산업 분야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다.
국내 AI 데이터센터 시장도 변수다. 국가인공지능위원회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정부는 2027년까지 약 2조 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해 '국가 AI 컴퓨팅 센터'를 구축할 계획이며, 2027년까지 'AI 3대 강국(G3)' 도약을 목표로 민간 기업들의 65조 원 투자와 발맞춰 공공 인프라를 대폭 확충하고 있다. 차세대 저전력 메모리 기술의 조기 확보 여부는 국내 AI 인프라 경쟁력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산·학계의 선제적 대응이 요구된다.
상용화까지 관문 남아… '5년 내 핵심 의제' 부상 확실시
전문가들은 이번 성과가 학술적 의미를 넘어 반도체 공급 부족과 에너지 비효율이라는 두 가지 구조적 문제를 동시에 해소할 단서가 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 업계에서는 기술 상용화 시 자기 임의 접근 메모리(MRAM)는 물론 차세대 SSD와 하드디스크(HDD)의 성능이 현재 대비 수십에서 100배 수준으로 향상될 것으로 전망한다.
다만 실험실 성과가 양산 라인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수율 확보, 저비용 공정 개발, 소자 미세화 적합성 검증이라는 세 가지 관문을 넘어야 한다. 이산화루테늄의 원료인 루테늄이 희소 원소에 속한다는 점도 원료 수급 측면의 선결 과제로 꼽힌다.
그러나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AI 성능 고도화를 위해 HBM을 넘어선 차세대 메모리 솔루션을 서둘러 확보하려는 흐름이 뚜렷한 만큼, 알터자성 소재 연구는 향후 5년 안에 반도체 시장의 최전선 의제로 급부상할 것이 확실시된다. 전력 하나로 AI 패권이 갈리는 시대, '소비는 줄이고 속도는 높인다'는 오래된 명제를 실현할 열쇠가 박막 한 장 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