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 공급망 통합· SMR 공동 개발 합의… 동남아 원전 수주전 본격 가담
GE버노바·히타치 'BWRX-300' 앞세워 아세안 청정에너지 시장 선점 나서
GE버노바·히타치 'BWRX-300' 앞세워 아세안 청정에너지 시장 선점 나서
이미지 확대보기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풀어야 하는 인도·태평양 국가들에게 이 연합은 거부하기 어려운 선택지가 되고 있다. 그러나 판이 미·일 중심으로만 기울고 있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바로 그 시점에 한국에도 손을 내밀고 있다.
이미지 확대보기도쿄 포럼에서 공급망 합의 공식화
로이터통신은 지난 14일(현지시간) 도쿄에서 개최된 '인도·태평양 에너지 안보 장관 및 비즈니스 포럼'을 인용해, 미·일 양국이 원자력 분야의 포괄적 협력 및 일본 내 공급망 구축에 최종 합의했다고 전했다.
댄 립먼 웨스팅하우스 글로벌 비즈니스 이니셔티브 사장은 이날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미·일 양국 정부는 잠재적 원전 거래에서 일본 내 공급망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 합의점에 이르렀다"고 확인했다. 이어 "프로젝트가 구체적으로 확정되고 배포 준비가 갖춰질 때까지 거래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며 장기적 실행 의지를 분명히 했다.
앞서 공개된 미·일 공동 팩트시트에는 미쓰비시중공업(MHI), 도시바, IHI 등 일본 중공업 대표 기업들이 웨스팅하우스의 핵심 공급망 파트너로 명시돼 있다. 립먼 사장은 이들을 "중대한 역할을 수행할 핵심 파트너"로 직접 언급했다. 협력 범위는 웨스팅하우스의 주력 모델인 가압수형 원자로(PWR)와 함께, 차세대 기술로 꼽히는 소형모듈원자로(SMR)까지 포괄한다.
트럼프·다카이치 회담의 '에너지판 후속 조치'
이번 합의는 지난해 10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정상회담에서 도출한 일본의 5500억 달러(약 824조 4500억 원) 규모 대미 투자 패키지의 핵심 실행 과제다. 투자 패키지 전체에서 원전 협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18%에 해당하는 1000억 달러로 추산된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 규모를 두고 "미국의 원전 설계 기술과 일본의 정밀 제조 역량이 만나는 산업 결합의 가치가 수치로 가시화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공급망 병목을 겪어 온 서방 원전 업계가 일본의 제조 기반을 끌어들임으로써 실행력을 끌어올리려는 전략적 선택이기도 하다.
GE버노바·히타치, 동남아 SMR 수주전 동시 출격
같은 날 미국 전력기기 제조사 GE버노바(GE Vernova)와 일본 히타치는 공동 성명을 통해 동남아시아 시장 진출 전략을 공개했다. 양사는 차세대 소형 원자로 'BWRX-300'을 앞세워 에너지 수요가 급팽창하는 아세안 국가들에 청정 기저전력을 공급하는 사업 기회를 공동으로 모색하기로 했다.
BWRX-300은 GE히타치 뉴클리어 에너지가 공동 개발 중인 30만㎾급 비등수형 소형모듈원자로(SMR)로, 캐나다와 폴란드에서도 도입 절차가 진행 중인 모델이다. 전력 인프라 구축 압박이 커지고 있는 베트남·필리핀·인도네시아 등이 잠재 수요처로 거론된다.
미국, 한국에도 손 내밀었다… APR-1400 협상 수면 위로
미·일 밀착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에도 원전 협력의 문을 열어두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캐너리 미디어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미 에너지부(DOE) 고위 관계자들은 최근 한국 외교관 및 한국전력(KEPCO)과 미국 내 신규 원자로 건설 협력 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
배경에는 웨스팅하우스 AP1000의 지연과 비용 문제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30년까지 대형 원전 10기를 건설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으나, AP1000의 대주주 측이 비용 초과 보험 조항이 빠진 정부 지원 조건에 소극적으로 나오면서 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이 틈새에서 UAE 바라카 원전을 기한과 예산 내에 완공한 한국의 APR-1400이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APR-1400은 이미 2019년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설계 인증을 취득했으며, 올해 1월 웨스팅하우스와 한전 간의 지적재산권 분쟁 합의로 법적 걸림돌도 일부 해소됐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최근 국회에서 "미국 내 원전 프로젝트 투자를 위해 협상 중"이라고 직접 확인했다.
원자력 업계 전문가들은 "미국이 원전 제조 역량을 잃어버린 40년을 단기간에 만회하려면 한국의 시공 경험과 인력이 필요하다"며 협력의 실익을 강조하고 있다. 미·일 원전 동맹이 형성되는 동시에 미·한 원전 협력의 씨앗도 뿌려지고 있는 셈이다.
원전 르네상스의 속도, 예상보다 빠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해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2050년까지 전 세계 원자력 발전 용량이 지금의 두 배 이상으로 늘어야 한다고 전망했다. 이 수요를 선점하기 위한 각국의 경쟁에서 미·일 연합은 기술력·자금력·외교력을 한꺼번에 투입하는 종합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다만 판세는 이분법적으로 굳어있지 않다. 미국은 미·일 공급망을 다지는 동시에 한국의 시공 역량도 필요로 하고 있다. 한국이 APR-1400의 미국 진출을 현실화한다면, 이는 단순한 수주를 넘어 방위비·관세 등 한미 간 현안 전반에서 협상력을 높이는 전략 자산이 될 수 있다.
1000억 달러짜리 미·일 원전 동맹이 인도·태평양의 에너지 판도를 바꾸는 사이, 한국이 그 재편의 주체로 끼어들 공간은 아직 열려 있다. 정부와 업계의 속도가 그 공간을 채울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