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모건 수석 이코노미스트 "에너지 충격 수개월 지속 시 실물경제 파국" 강력 경고
금리 인하 기대 산산조각…각국 중앙은행 '물가 대 경기' 딜레마 직면
한국, 에너지 수입 의존 구조…수출·가계 동반 타격 불가피
금리 인하 기대 산산조각…각국 중앙은행 '물가 대 경기' 딜레마 직면
한국, 에너지 수입 의존 구조…수출·가계 동반 타격 불가피
이미지 확대보기시장이 주목하는 숫자는 '배럴당 125달러(약 18만7300원)'다. 배런스는 13일(현지 시각) 이란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가격 급등이 세계 중앙은행들의 금리 인하 행보를 가로막고, 결국 1970년대식 장기 침체를 불러올 수 있다고 강도 높게 경고했다. 국내 금융투자업계의 한 이코노미스트는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구조적으로 높은 한국은 유가 충격이 무역수지와 소비자물가에 즉각 전이된다"며 "125달러 선 돌파가 현실화하면 한국 경제도 결코 안전지대가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이미지 확대보기배럴당 125달러, 왜 '임계점'인가
현재 국제 벤치마크인 브렌트유 선물은 배럴당 101달러 안팎에서 거래되고 있다. 지난 2년간 평균 가격 대비 약 35% 높은 수준이다. 수치만 보면 공황을 떠올리기엔 이른 감이 있다. 하지만 JP모건의 브루스 카스먼(Bruce Kasman)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카스먼 이코노미스트는 "과거 세계 경제를 뒤흔든 에너지 충격은 예외 없이 2년 평균치 대비 50% 이상의 급등을 동반했다"고 설명했다. 이 기준을 현재에 대입하면 '파국적 임계점'은 배럴당 150달러(약 22만4800원)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에도 유가는 2년 평균치를 50% 이상 웃돌았다.
그런데도 전문가들이 125달러를 '마지노선'으로 강조하는 이유는 지속 기간 때문이다. 카스먼 이코노미스트는 "125달러 수준에서 수개월 동안 머문다면 과거 위기에서 나타난 파괴적 파급 효과가 본격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피크(peak)를 넘는 충격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높은 수준의 가격이 길게 이어지는 것 자체가 치명타라는 의미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주유소 가격표에만 찍히는 것이 아니다. 이란 충돌 이후 농업 필수 원료인 요소(尿素·비료 원료) 가격은 이미 60%가량 뛰었다. 컨설팅업체 크롤리 글로벌 어드바이저(Crowley Global Advisors)의 모니카 고먼(Monica Gorman) 전무이사는 "해운사들이 안전 위협으로 항로를 우회하면서 실질적인 선박 공급이 줄었고, 이로 인한 운송비 급등은 식품·의류·전자제품 등 모든 소비재 가격을 연쇄적으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금리 인하의 꿈은 끝났나…중앙은행 '진퇴양난'
배런스와 JP모건의 분석을 종합하면 이달 금리 인하가 사실상 불가능해진 국가는 트뤼키예·폴란드·남아프리카공화국·칠레 등으로 좁혀진다. 브라질과 멕시코도 인하 가능성을 열어두고는 있으나 동결로 방향을 틀 위험이 높다. 일본은 지정학적 불안에 짓눌려 금리 인상 타이밍을 조율해야 하는 이중고에 빠졌다.
하반기는 더 어둡다. 유럽중앙은행(ECB)은 물가 압박에 대응하기 위한 추가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시장이 12월 연방기금 금리(Federal Funds Rate)가 이달 초 예상치보다 40bp(0.4%포인트) 더 높은 수준으로 형성될 것으로 점치고 있다. 물가를 잡으려면 금리를 올려야 하고, 금리를 올리면 경기가 꺾이는 '정책 함정'에 각국 중앙은행이 걸려든 셈이다.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의 기억
역사는 반복되는가. 1973년 욤 키푸르 전쟁이 중동의 화약고를 건드렸을 때, 유가는 불과 수개월 만에 300%가량 폭등했다. 그 결과는 현대 경제사에서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된 재앙이었다. 1968년부터 1983년까지 15년에 걸쳐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86.4% 치솟았고, 주유소 앞에 끝없이 늘어선 차량 행렬은 그 시대 공황의 상징이 됐다.
당시 위기를 끊어낸 것은 폴 볼커(Paul Volcker) 연방준비제도 의장의 혹독한 처방이었다. 1979년 취임한 볼커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전례 없는 20%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물가는 제압됐지만, 실업률이 10%를 넘어서고 수백만 가계가 파산하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두고 '치료가 병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사례'로 꼽는다.
물론 구조는 달라졌다. 1973년 미국 에너지 소비에서 석유 비중은 약 46%였으나, 2024년에는 36%로 낮아졌다. 자동차 연비도 크게 개선됐다. 하지만 석유는 여전히 현대 산업 문명의 혈액이다. 화석연료 가격이 전기차 배터리 원자재 운송비에도 영향을 미치는 시대에 에너지 충격의 파급력은 오히려 더 광범위해졌다. 공급망 충격이 장기화할 경우 과거 닉슨 행정부 시절 통제 불능으로 번진 경제 위기가 재현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 가지 변수가 세계 경제의 운명을 가른다
이란 전쟁 3주째를 맞아 테헤란 당국이 석유 생산 시설에 대한 추가 공격 가능성을 공공연히 내비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세계 경제의 향방은 결국 세 개의 핵심 변수에 달려 있다.
첫째, 유가 지속성이다. 배럴당 125달러를 돌파하느냐보다, 그 수준에서 얼마나 오래 버티느냐가 충격의 크기를 결정한다. 둘째, Fed와 ECB의 정책 충돌이다. 경기 침체를 막으려는 미국과 물가 억제에 집중하는 유럽의 통화정책이 엇박자를 낼 경우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은 증폭된다. 셋째, 호르무즈 해협 봉쇄 리스크다. 전 세계 원유 수출의 약 20%가 통과하는 이 요충지에 대한 이란의 봉쇄 위협은 에너지 가격의 예측 불가능한 폭등을 의미한다.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완전한 휴전이 이뤄지지 않는 한 해상 운송 리스크와 에너지 가격 불안은 구조적으로 지속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이 정책 실패와 외부 충격의 합작품이었듯 현재의 위기 역시 지정학적 변수와 통화정책의 엇박자가 맞물려 폭발력을 키우고 있다.
한국 경제도 피할 길이 없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구조적 취약성 아래, 유가 125달러 돌파는 수입물가 상승 → 소비자물가 전이 → 내수 위축으로 이어지는 충격파를 예고한다. 50년 전 볼커의 쓴약이 불가피했던 순간처럼, 시장은 지금 다시 누군가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기로 앞에 섰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있다. 유가 125달러, 그 숫자가 세계 경제의 '적신호'로 바뀌는 날이 오지 않기를 모두가 바라고 있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