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만삭스·UBS·우드 매킨지 등 주요 투자은행, 유가 전망치 일제히 상향…"역사상 최대 공급 차질"
호르무즈 해협 봉쇄 장기화 땐 한국 원유 수입의 70% 직격…정유·석화·반도체까지 도미노 충격
호르무즈 해협 봉쇄 장기화 땐 한국 원유 수입의 70% 직격…정유·석화·반도체까지 도미노 충격
이미지 확대보기국제에너지기구(IEA)가 역사상 최대 규모의 비상 비축유 방출에 나섰지만 시장 불안은 가라앉지 않고 있으며, 원유 수입의 70%를 중동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도 정유·석유화학·반도체 산업 전반에 걸친 도미노 충격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에너지 전문매체 오일프라이스닷컴은 13일(현지시각) 골드만삭스, UBS, 우드 매킨지, 맥쿼리 등 주요 금융기관들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후 1분기·2분기 유가 전망치를 대폭 올렸으며, 분쟁이 수개월로 이어질 경우 역사상 유례없는 원유 가격 폭등이 현실화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골드만삭스 "3월 100달러 돌파"…UBS는 120달러, 우드 매킨지는 200달러를 넘본다
13일(현지시각) 기준 브렌트유는 배럴당 100달러 80센트, 미국 기준유인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95달러를 웃돌았다. 전쟁 발발 전인 지난달 27일 브렌트유가 72달러대에 머물렀던 점을 감안하면, 보름 남짓 사이에 40% 가까이 치솟은 셈이다.
골드만삭스는 3월 브렌트유 평균이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호르무즈 해협 통항 차질이 두 달가량 이어질 경우 올해 4분기 평균 93달러, 단기 급등 구간에서는 100달러를 다시 웃돌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는 불과 수 주 전 예측치인 4분기 평균 71달러에서 30% 가까이 뛰어오른 수치다. UBS는 한 발 더 나아가 호르무즈 해협의 원유 흐름이 계속 묶인다면 수요 파괴가 본격화되는 배럴당 120달러 구간까지 밀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가장 강도 높은 경고는 에너지 분석업체 우드 매킨지에서 나왔다. 우드 매킨지 애널리스트들은 이번 주 초 브렌트유가 수 주 안에 배럴당 150달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밝혔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유가 급등과 유사한 패턴이지만, 규모는 비교 자체가 불가하다는 게 이들의 판단이다. 당시 러시아 원유는 중국·인도로 흐름만 바꿨을 뿐 시장에 공급되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물량 자체가 멈춰 있다.
우드 매킨지 애널리스트들은 같은 보고서에서 “배럴당 200달러는 2026년 가능성의 범주 밖에 있지 않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라고 밝혔다. 맥쿼리 역시 해협 봉쇄가 수 주간 지속될 경우 150달러 이상의 폭등 가능성을 경고했다.
코먼웰스 은행 광물·에너지 상품 리서치 담당 이사 비벡 다르는 "위기가 수 주가 아닌 수개월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은 시장이 이번 공급 차질의 충격을 과소평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며 "실제 공급 부족이 현실화되면 브렌트유는 배럴당 120달러에서 150달러까지 급등해 개발도상국들의 수요 파괴를 강제할 것"이라고 말했다.
IEA 4억 배럴 방출도 '미봉책'…하루 1500만 배럴 순손실엔 역부족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석유제품 수송량이 하루 2000만 배럴에서 급감했고, 걸프 국가들의 원유 생산량은 최소 하루 1000만 배럴 줄었다. IEA는 이번 사태를 "역사상 최대 원유 공급 차질"로 규정했다.
사태 수습을 위해 IEA 32개 회원국은 11일(현지시각) 비상 비축유 4억 배럴 방출에 만장일치로 합의했다. 1974년 IEA 창설 이후 최대 규모다. 미국도 자국 전략 비축유(SPR)에서 별도로 1억 7200만 배럴을 투입하기로 했다.
IEA 파티흐 비롤 사무국장은 파리 본부에서 "이번 조치는 시장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중요한 행동이지만, 원유·가스 시장 안정에 가장 중요한 것은 호르무즈 해협 통항 재개"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시장은 냉담했다. 에너지 컨설팅업체 랩이던 에너지 그룹의 밥 맥낼리 대표는 "IEA의 비축유 방출은 많아야 하루 1500만 배럴에 달하는 순공급 손실의 일부만 보전할 수 있다"며 "이란의 공격 능력이 군사적으로 제거되거나 휴전이 이뤄지지 않는 한 유가는 계속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CNBC 비축유 방출 발표 뒤에도 유가가 오히려 오른 것은 이 같은 시장의 냉정한 셈법을 보여준다.
이란 혁명수비대(IRGC)는 미국·이스라엘과 관련된 모든 선박을 공격 대상으로 삼겠다고 선언하며 "배럴당 200달러를 각오하라"고 공개 압박했다.
RBC 캐피털 마켓의 헬리마 크로프트 글로벌 상품 전략 총괄은 "이란은 해상 봉쇄나 기뢰 없이 드론 공격만으로 보험사와 해운사가 해협을 스스로 기피하게 만들었다"며 "1970년대 석유 파동 이후 최대 에너지 위기"라고 진단했다.
한국 원유의 70%가 막혔다…정유·석화·반도체까지 '도미노 충격' 경보
이번 사태는 단순한 국제 유가 문제가 아니다. 한국 경제는 호르무즈 해협에 에너지 공급의 목줄을 걸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무역협회 수출입 통계에 따르면 2025년 총 원유 수입량 1억3700만 t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이라크·쿠웨이트·카타르 등 호르무즈 해협 경유 물량이 69.6%를 차지한다. 액화천연가스(LNG) 역시 수입량의 14.9%가 같은 경로를 통해 들어온다.
한국해양진흥공사는 해협 통행 제한이 한 달간 이어지면 국내 원유는 약 40항차, LNG는 약 8항차 도입에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분석했다. 이미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중동~중국 노선 운임은 지난달 13일 대비 약 3.3배 뛰었다.
한국무역협회 분석에 따르면 국제유가가 10% 오를 경우 국내 수출은 0.39% 줄고 수입은 2.68% 늘어나 무역수지가 급격히 나빠진다.
금융계에서는 "호르무즈 해협의 실질적 봉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보다 에너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원유와 가스는 물론 석유제품, 비료 가격이 단기간에 급등세를 나타낼 것"이라고 진단했다.
석유화학 기업들은 기초 원료인 나프타(납사)의 54%를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중동에서 들여오고 있어, 공급이 끊기면 공정을 멈추는 '셧다운'이 불가피하다.
'수급 불안 장기화→유가 상승→전기요금 상승'의 악순환이 현실화될 경우 전력 소비량이 큰 반도체·철강 산업도 직격탄을 피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는 현재 민·관 합산 약 7개월분의 비축유를 확보해 단기 수급 대응력은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재정경제부는 "한국수출입은행에 공급망기금 비상대응반을 가동하고 중동 외 지역 원유 구매자금 지원 한도를 기존 90%에서 100%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비축유는 어디까지나 시간을 벌어주는 완충재일 뿐, 전쟁이 수개월로 길어질 경우 버팀목은 한계에 부딪힌다.
월가가 '200달러'를 입에 올리기 시작한 지금, 호르무즈 해협의 다음 행방이 한국 경제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경고가 시장 안팎에서 높아지고 있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