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관세 전쟁 후퇴와 중국 수요 절벽이 만든 ‘공급 과잉’의 덫
선물-현물 가격 괴리 심화, t당 1만 3000달러 지지선 붕괴 초읽기
선물-현물 가격 괴리 심화, t당 1만 3000달러 지지선 붕괴 초읽기
이미지 확대보기블룸버그 통신의 6일(현지시각) 보도에 따르면, 최근 이란 전쟁에 따른 세계 경제 성장 둔화 우려와 최대 소비국인 중국의 수요 절벽이 맞물리면서 전 세계 주요 거래소의 구리 재고가 올해 초 대비 50만t 이상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장부상 가격과 현장 수급 사이의 괴리가 위험 수위에 도달했음을 시사하며, 그동안 가격 상승을 주도했던 투자자들의 낙관론을 급격히 위축시키고 있다.
미국행 관세 차익 거래 종료… 글로벌 물류 흐름의 급격한 회귀
지난해 구리 가격을 사상 최고치로 견인한 핵심 동력인 ‘미국발 관세 선취매’ 열풍이 사실상 마침표를 찍으면서 시장의 판도가 뒤바뀌고 있다.
2025년 한 해 동안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보편 관세 부과 가능성에 대비해 미국 뉴욕상품거래소(Comex)로 금속 물량이 쏠리며 발생했던 가격 프리미엄이 완전히 소멸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미국 정부가 핵심 광물에 대한 광범위한 관세 부과 대상에서 구리를 제외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런던과 뉴욕 간의 가격 차이를 노린 차익 거래(Arbitrage) 유인책이 사라진 영향이다.
이러한 정책 변화는 즉각적인 물류 회귀 현상을 불러왔다. 그동안 미국 항구로 향하던 아프리카산 구리 물량이 다시 전통적 소비처인 유럽과 중국으로 기수를 돌리고 있다.
실제로 글로벌 원자재 중개 기업 머큐리아(Mercuria Energy Group)를 비롯한 대형 중개업체(트레이딩 하우스들)는 최근 미국행 공급 계약을 축소하고 보유 물량을 런던금속거래소(LME) 창고로 대거 인도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물량을 선점하기 위해 기록적인 웃돈을 지불하던 트레이더들이 이제는 현물 시장에서 물량을 처분하지 못해 애를 먹는 처지"라며 시장의 주도권이 공급자에서 구매자로 이동했다고 분석했다.
중국 제조 현장의 ‘탈(脫) 구리’ 가속화와 60만t의 재고 압박
구리 수요의 절반을 담당하는 중국의 소비 침체는 단순한 경기 순환을 넘어 ‘소재 대체’라는 구조 변화로 진화하고 있다.
상하이선물거래소(SHFE)의 구리 재고는 지난 6일 기준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으며, 민간 비축 물량까지 포함할 경우 2016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인 약 60만t 이상이 시장에 묶여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중국 내 구리 제련소들이 가동률을 높이며 생산량을 쏟아내고 있어 공급 과잉은 더욱 심화하고 있다.
더욱 치명적인 대목은 가격 급등에 대응하는 중국 제조 현장의 전략 변화다. 중국 가전업체들은 에어컨 냉매관 등 핵심 부품에서 구리를 빼고 저렴한 알루미늄이나 아연 합금을 사용하는 기술을 대거 채택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완보 에어컨(Wanbao Air Conditioning)은 최근 구리를 완전히 없앤 신제품을 999위안(약 21만 4000원)에 출시하며 기존 대비 20% 이상의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다.
이러한 ‘대체재의 역습’은 구리 가격이 t당 1만 3000달러(약 1930만 원) 선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드는 결정 요인이 되고 있다.
금융권의 신중론 선회… ‘슈퍼 사이클’ 신화 흔들리는 닥터 코퍼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의 시각도 낙관론에서 경계론으로 급격히 돌아서고 있다.
JP모건(JPMorgan)의 그레고리 시어러 분석팀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구리의 장기 전망은 유효하지만, 단기로는 실물 수급 지표가 심각하게 악화했다"며 강세장에 대한 확신을 하향 조정했다.
중동 전쟁의 장기화로 인한 달러 강세와 채권 금리 상승은 실물 자산인 구리에 강력한 하방 압력을 가하고 있으며, 이는 선물 투기 세력의 이탈을 부추기는 촉매제가 될 전망이다.
한국내 원자재 시장 관계자는 "과거 2008년 금융위기 직전이나 2011년 고점 당시에도 선물 가격과 현물 재고의 괴리가 이번처럼 벌어진 사례가 있다"면서 "실물 재고 50만t은 시장이 감당하기 매우 무거운 수준으로, 만약 투자 수요마저 위축될 경우 가격 조정의 깊이가 예상보다 깊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현재의 구리 시장은 인공지능(AI) 데이터 센터와 에너지 전환이라는 ‘장기적 장밋빛 미래’와 과잉 재고라는 ‘단기 늪’ 사이에서 위태로운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단기로는 t당 1만 2000달러(약 1780만 원) 선의 지지 여부가 향후 금속 시장 전반의 향방을 가를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이며, 투자자들은 선물 지수보다는 실물 창고의 재고 감소 속도에 더욱 주목해야 할 시점이다.
서진욱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