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보조금 전기차의 부품 70%를 역내에서 생산하도록 강제하는 '산업가속화법' 초안 마련
저가 공세 중국산 전기차와 핵심 소재 의존도 제어, 역내 제조 기반 사수 보호무역 조치.
배터리 소재 자립 우려로 오는 25일 최종안 발표 전까지 치열한 로비와 규정 수정 예상
저가 공세 중국산 전기차와 핵심 소재 의존도 제어, 역내 제조 기반 사수 보호무역 조치.
배터리 소재 자립 우려로 오는 25일 최종안 발표 전까지 치열한 로비와 규정 수정 예상
이미지 확대보기파이낸셜타임스(FT)는 17일(현지시각) 보도에서 EU 집행위원회가 작성한 ‘산업가속화법(Industrial Accelerator Act)’ 초안을 인용해 이같이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EU는 오는 25일 이 법안을 공식 발표하고, 공공 조달과 보조금 지급 기준에 ‘역내 생산 비중(Local Content)’을 명문화할 계획이다.
이번 조치는 중국의 저가 물량 공세와 높은 에너지 비용, 엄격한 기후 규제로 고사 위기에 처한 유럽 제조업을 살리기 위한 긴급 처방으로 풀이된다.
전기차 보조금 받으려면 "EU서 조립하고 부품 70% 채워라"
FT가 확인한 법안 초안에 따르면, 정부의 구매 보조금 혜택을 받거나 공공기관이 구매·리스하는 전기차, 하이브리드차, 수소연료전지차는 반드시 EU 역내에서 조립해야 한다. 특히 가격 기준으로 배터리를 제외한 자동차 부품의 최소 70%가 EU 내에서 생산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적용 범위는 모빌리티 산업에만 그치지 않는다. 건설 부문에서도 알루미늄 제품의 25%, 창문과 문에 쓰이는 플라스틱의 30% 이상을 EU 역내 생산품으로 채워야 보조금이나 공공 계약을 따낼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는 유럽의 핵심 기반 산업인 철강, 화학, 제조 부문 전반에 ‘유럽산’의 비중을 강제로 높이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브뤼셀의 한 관계자는 "중국의 저가 공세로 유럽 내 공장들이 문을 닫고 수천 명이 해고되는 상황을 더 방관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전했다. 실제로 유럽 제조업은 중국산 제품의 시장 잠식과 에너지 가격 상승이라는 이중고를 겪으며 2조 6000억 유로(약 4455조 원) 규모의 제조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배터리 소재 공급망 '중국 의존도'가 최대 걸림돌
업계에서는 이번 법안이 실현되기까지 상당한 진통이 따를 것으로 본다. 특히 배터리 핵심 소재의 역내 조달 규정이 가장 큰 난제로 꼽힌다. 법안은 배터리 주요 구성 요소 상당 부분도 EU 내에서 발원해야 한다고 명시했으나, 현재 유럽 전기차 산업은 배터리 기술과 원자재의 상당 부분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반응도 엇갈린다. 독일 BMW는 이러한 규제가 "불필요한 비용 상승과 관료주의적 폐해만 낳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면 폭스바겐(VW)과 스텔란티스는 지난달 '메이드 인 유럽(Made in Europe)' 체계를 지지하며 역내 생산 비중을 높이는 제조사에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 도입을 강력히 요청했다.
자동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70%라는 수치가 초안에서 괄호([ ])로 묶여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이는 수치 자체가 확정되지 않았으며 향후 협상 과정에서 조정될 여지가 크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보호무역 장벽 높아지는 유럽… 향후 전망은
EU 집행위원회는 이번 보도와 관련해 공식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다. 하지만 법안의 핵심이 공공 조달 시 탄소 배출량뿐만 아니라 '역내 생산 비중'을 직접적으로 따지는 쪽으로 기울면서, 유럽 시장을 공략하는 역외 기업들의 부담은 한층 커질 전망이다.
시장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EU가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대응해 자신들만의 강력한 공급망 블록을 구축하려 한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일각에서는 영국, 터키, 일본 등 주요 교역 파트너를 역내 조달 범위에 포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어, 오는 25일 발표될 최종안의 구체적인 범위와 수치에 전 세계 제조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한국 기업에 미칠 파급 영향, 공급망 재편의 기회인가 위기인가
이번 EU의 '산업가속화법'은 유럽 시장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 자동차 및 배터리 업계에 거대한 파고를 예고한다. 법안의 최종 확정 과정에서 구체적인 비율(70%)이나 적용 예외 조항이 조정될 가능성은 남아 있지만, 특히 '부품 70% 역내 조달' 규정은 현지 생산 시설이 미비한 부품 협력사들에 직접적인 타격이 될 수 있다. 현재 현대차·기아 등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유럽 현지 공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핵심 부품의 역내 조달 비중을 단기간에 70%까지 끌어올리는 것은 막대한 비용과 설비 투자를 수반하는 과제다.
반면, 이미 유럽 내 생산 거점을 선제적으로 확보한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에는 기회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중국산 배터리와 소재에 대한 강력한 진입 장벽이 세워짐에 따라, 역내 조달 요건을 충족할 수 있는 한국 배터리가 유일한 대안으로 부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양극재 등 배터리 핵심 소재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유럽 내 공급망을 얼마나 빨리 구축하느냐가 향후 유럽 시장 점유율 수성의 성패를 가를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이번 법안이 미국 IRA보다 더 강력한 '유럽판 자국 우선주의'로 흐를 가능성을 경계하며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