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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얼음 녹자 불붙은 북극 패권전…美·中·러가 그린란드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트럼프의 '그린란드 필요론', 돌출 발언 아닌 안보·자원·항로 계산의 압축판
러시아, 북극 육지·EEZ 절반 장악…군사 기지 66곳 중 30곳 '최대 존재감'
중국 '빙상 실크로드' 구상에 맞서 美·나토, 그린란드로 북극 방어선 고정
북극 항로 지도. 러시아 해안을 따르는 '북동항로(북극항로)'와 캐나다 북부를 지나는 '북서항로'. 얼음이 녹으며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이 지름길의 경제적·군사적 가치가 급등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북극 항로 지도. 러시아 해안을 따르는 '북동항로(북극항로)'와 캐나다 북부를 지나는 '북서항로'. 얼음이 녹으며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이 지름길의 경제적·군사적 가치가 급등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덴마크의 자치령인 '그린란드(Greenland)'를 미국의 영토로 편입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하면서 전 세계의 이목이 다시금 북극으로 쏠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를 트럼프 특유의 기행으로 치부하지만 군사·지정학 전문가들의 견해는 다르다. 얼음이 녹아내리는 북극, 그중에서도 그린란드는 21세기 패권 경쟁의 '태풍의 눈'으로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CNN 방송의 최신 보도를 바탕으로 미국·중국·러시아가 왜 이 척박한 얼음 땅에 천문학적인 자원을 쏟아부으며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을 벌이고 있는지 심층 분석했다.

러시아의 독주: 북극의 절반을 집어삼킨 '철의 요새'


현재 북극 패권 경쟁에서 가장 앞서 나가는 국가는 단연 러시아다. 러시아는 북극권(Arctic Circle)의 지리적·군사적 주도권을 이미 확고히 하고 있다. 우선 영토와 경제적 장악력이 압도적이다. 러시아는 북극권 전체 육지와 해양 배타적경제수역(EEZ)의 약 50%를 통제하고 있으며, 북극 거주 인구의 3분의 2가 러시아인이다. 특히 북극 지역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2가 러시아에서 창출될 정도로, 비록 전 세계 경제 비중은 0.4%에 불과할지라도 러시아 입장에서는 국가의 미래가 걸린 핵심 전략 지역이다.

군사적 요새화 역시 서방을 압도한다. 캐나다 사이먼스재단(Simons Foundation)의 자료에 따르면, 북극권 내 주요 군사 기지·시설 66곳 중 무려 30곳이 러시아 영토에 위치해 있다. 이는 노르웨이(15곳)·캐나다(9곳)·미국(8곳)·그린란드(3곳)·아이슬란드(1곳) 등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의 기지를 모두 합친 36곳과 맞먹는 수치다. 러시아는 소련 붕괴 이후 방치됐던 기지들을 현대화하고 레이더와 미사일 시스템을 증강하며 북극을 난공불락의 '철의 요새'로 탈바꿈시켰다. 심지어 우크라이나 전쟁 중에도 북극 전력의 핵심인 핵잠수함 함대와 조기경보 체계에 대한 투자를 멈추지 않으며 서방을 긴장시키고 있다.

중국의 야욕: '근 북극 국가' 자처하며 '빙상 실크로드' 개척

북극과 국경을 맞대지 않은 중국도 자신들을 '근(近) 북극 국가(Near-Arctic State)'라고 칭하며 이 경쟁에 뛰어들었다. 중국의 목표는 명확하다. 바로 '길(Route)'과 '자원(Resources)'이다. 지구 온난화로 북극 해빙이 가속되면서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북극항로(Northern Sea Route)', 일명 '빙상 실크로드(Polar Silk Road)'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항로는 기존 수에즈 운하를 경유하는 경로보다 운송 기간을 약 2주나 단축시켜 물류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다. 2010년대 초반 연간 한 자릿수에 불과했던 통행량은 최근 연간 약 100회로 급증했다.

중국은 러시아와 전략적 제휴를 통해 이 항로를 자국의 수출입 동맥으로 삼으려 한다. 실제로 2024년 중·러 양국은 북극에서 합동 순찰을 실시하며 군사적 밀착을 과시했다. 중국은 자본과 기술력을 제공하고, 러시아는 길을 열어주는 강력한 '반미(反美) 북극 연대'가 형성된 셈이다.

미국과 나토의 반격: 그린란드는 최후의 방패이자 자원의 보고


미국에 그린란드는 단순한 땅이 아니라 본토 방어를 위한 최후의 방패이자 전진 기지로서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다. 지정학적으로 그린란드는 아이슬란드·영국으로 이어지는 해상 요충지인 'GIUK 갭(GIUK Gap)'의 핵심축이다. 러시아 잠수함이 대서양으로 진출하려면 반드시 이 해역을 통과해야 하므로, 이곳을 통제하는 자가 대서양의 제해권(制海權)을 쥔다. 또한 그린란드의 툴레 공군기지(현 피투피크 우주기지)에는 미국 본토로 날아오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가장 먼저 탐지하는 조기경보 레이더가 위치해 있어 미 안보의 심장부와도 같다.

그린란드 피투피크 우주기지(옛 툴레 공군기지)에 설치된 탄도미사일 조기경보시스템(BMEWS). 이 레이더는 러시아 대륙에서 발사되는 장거리 미사일을 감시하는 3대 핵심 시설 중 하나다. 사진=스타 앤 스트라이프스이미지 확대보기
그린란드 피투피크 우주기지(옛 툴레 공군기지)에 설치된 탄도미사일 조기경보시스템(BMEWS). 이 레이더는 러시아 대륙에서 발사되는 장거리 미사일을 감시하는 3대 핵심 시설 중 하나다. 사진=스타 앤 스트라이프스
최근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가입으로 북극 지형도가 '러시아 vs 나토'로 양분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덴마크의 방어 능력을 불신하며 직접 개입을 시사한 것은 이 전략적 요충지가 중·러의 영향권에 들어가는 것을 막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기후 위기는 이 지역의 경제적 가치를 폭등시켰다. 북극은 전 세계 평균보다 4배 빠른 속도로 온난화가 진행 중인데, 이로 인해 빙하 아래 잠들어 있던 막대한 자원이 드러나고 있다. 미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그린란드의 빙하 아래에는 스마트폰, 전기차, 최첨단 미사일 제조에 필수적인 희토류(Rare Earth Elements)가 약 150만 톤이나 매장된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세계 최대 생산국인 중국의 독점적 지위를 위협할 수 있는 규모다. 채굴 비용과 환경 파괴라는 난관이 존재하지만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전략 자원의 공급망 다변화가 절실한 서방 세계에 그린란드는 포기할 수 없는 '미래의 광산'이다.

과거 평화와 과학적 협력의 상징이었던 북극은 이제 강대국들의 탐욕과 안보 논리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최전선이 되었다. 트럼프의 '그린란드 매입설'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그것은 녹아내리는 빙하 위에서 펼쳐지는, 자원과 항로 그리고 군사적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21세기 신(新)냉전'의 서막이다.


황상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1234@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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