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소비세 2년 중단 공약에 5조 엔 소요…구체적 재원 없어 투자자 이탈
글로벌 채권시장 동반 급등…일본 자금 본국 회귀로 한국 등 신흥국 타격
글로벌 채권시장 동반 급등…일본 자금 본국 회귀로 한국 등 신흥국 타격
이미지 확대보기일본의 재정 건전성 악화 우려가 글로벌 채권 시장으로 확산하면서 미국 30년물 국채 수익률도 급등했고, 일본 투자자들의 해외 자금 회수 움직임이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 채권 시장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40년물 수익률 17년 만에 4% 돌파…10년물도 27년 만에 최고치
지난 20일 도쿄 채권시장에서 40년 만기 일본국채(JGB) 수익률은 전일 대비 0.27%포인트 급등한 4.22%를 기록했다. 이 채권이 2007년 발행된 이후 처음으로 4%를 넘어선 것이다. 30년물 수익률도 0.27%포인트 올라 3.88%에 이르렀다.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2.3%를 넘어서며 1998년 이후 27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채권 금리가 하루 만에 0.2%포인트 이상 뛰는 현상은 매우 이례적이다. 금리 급등(채권 가격 하락)은 다카이치 총리가 전날 식품에 적용하는 8% 소비세를 2년간 중단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 조치에는 약 5조 엔(약 46조5500억 원)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피델리티 인터내셔널의 마이크 리델 펀드매니저는 "거대 일본 투자자들이 해외 보유 자산을 팔아 본국으로 자금을 회귀시킬 유인이 커지고 있다"며 "이는 다른 나라 장기 채권을 압박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GDP 대비 국가부채 236%…재정 확대 공약에 투자자 경계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236%로 선진국 가운데 가장 높다. 일각에서는 최대 250%까지 치솟았다는 추산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다카이치 총리가 구체적 재원 마련 방안 없이 감세와 재정 지출 확대를 약속하자 시장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도카이 도쿄증권의 사노 카즈히코 수석 채권 전략가는 "오랜만에 채권시장이 잘못된 정책에 경고를 보내고 있다"며 "시장은 소비세 감세가 2년으로 끝날지에 회의적이어서 '국채 쇼크'라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JP모건 프라이빗뱅크의 탕위쉬안 아시아 거시 전략 총괄은 "일본의 국가부채가 GDP의 200%에 이르는 상황에서 정부가 재정 지출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며 "이는 초장기 일본 국채를 보유하려는 투자자들이 요구하는 위험 프리미엄을 더욱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다음 달 총선에서 승리하면 "책임 있는 재정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가타야마 사쓰키 재무상은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현명한 지출과 잠재성장을 끌어올리기 위한 전략 재정 조치를 병행해 부채비율을 낮출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바클레이스의 바바 나오히코 이코노미스트는 "다카이치 총리가 이전에는 소비세 인하를 강하게 반대했지만, 총선을 앞두고 야당 공약을 따라가면서 정책을 바꿨다"고 지적했다.
엔화 약세 가속화…글로벌 채권시장 동반 급등
국채 매도 압력은 외환시장으로도 확산됐다. 엔화는 달러당 158엔대 중반까지 떨어지며 일본 정부의 환율 개입 우려를 불러일으키는 수준에 이르렀다. 시티의 다카시마 오사무 외환 전략가는 "타카이치 총리의 엔화 약세에 대한 입장이 바뀌고 있다"며 "이제는 엔화를 방어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버거버만의 로버트 디슈너 선임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통화 방어를 위한 금리 인상은 어려운 선택"이라며 "재정 확대로 인한 성장을 상쇄할 뿐 아니라 국가가 더 높은 자금 조달 비용에 갇힐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날 미국 30년물 국채 수익률도 0.09%포인트 오른 4.93%를 기록하며 지난해 9월 이후 최고 수준으로 뛰었다. 30년물 일본 국채 수익률은 독일 국채를 넘어섰으며 스페인 국채에 근접했다. 투자자들은 최근 몇 년간 프랑스, 영국, 미국에 던졌던 재정 지속 가능성 질문을 이제 일본에 던지기 시작했다.
노무라연구소의 키우치 다카히데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타카이치 트레이드'가 끝나고 있을 수 있다"며 "장기 금리 상승이 이제는 경제와 금융시장에 부정적 요인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은 고령화 국가로서 더욱 강경해진 중국과 이웃하고 예측 불가능한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어 대규모 지출 외에 선택지가 많지 않다. 일본은 국방비를 늘리려 하고 있으며, 미국과 맺은 관세 협상에서는 향후 3년간 5500억 달러(약 808조 5000억 원)를 미국에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CLSA 니컬러스 스미스 전략가는 "타카이치 총리는 문제의 심각성을 오해한 사람이 아니다"며 "그는 정책 전문가이고 이슈를 철저히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장 참여자들은 그의 선거 공약이 투표 이후 실제 정책으로 어떻게 전환될지 지켜보고 있다. 키우치 이코노미스트는 "선거 전략으로 소비세 감면은 유권자가 이해하기 쉽지만, 다른 곳 지출 삭감이나 증세로 재원을 마련한다면 그것은 서민에게 또 다른 부담"이라며 "공짜 점심은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 자본시장과 수출기업 영향 엇갈려
일본 국채 금리 급등은 글로벌 채권시장 전체에 파급력을 미치고 있다. 세계 최대 해외 자산 보유자인 일본 투자자들이 국내 수익률 상승에 따라 해외 자산을 매각하고 자금을 본국으로 회수하는 '리패트리에이션' 현상이 나타날 경우, 한국 국채 수요 감소로 수익률 상승 압력이 가해질 수 있다는 분석이 금융권에서 나온다. 다만 한국 채권시장이 세계정부채권지수(WGBI) 편입으로 외국인 수요 기반을 확대한 점은 일본 자금 이탈 충격을 일정 부분 상쇄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엔화 변동성 확대는 한국 수출기업에 엇갈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한국무역협회 분석 모델에 따르면 원화 대비 엔화 환율이 1% 하락하면 한국의 대세계 수출물량은 0.49% 감소한다. 자동차와 조선 업종은 여전히 일본과 경합 관계에 있다. 그러나 한일 수출경합도는 2012년 정점 이후 하락세다. 한국 수출 구조가 고부가가치 상품과 미국 중심 외국인직접투자(FDI)로 재편되면서 환율 민감도는 과거보다 낮아졌다. 업계에서는 한국 기업들이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면서 단순 가격 경쟁 구도가 약화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외환시장에서는 '엔-원 동조화' 현상에 주목하고 있다. 원화와 엔화는 아시아 대리 통화로서 유사하게 움직이는 경향이 있어, 엔화 약세 시 원화도 약세 압력을 받는 경우가 많다. 다만 일본은행(BOJ)의 금리 인상으로 엔화가 강세 전환할 경우 과거 저금리 엔화를 빌려 투자했던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청산되면서 단기 변동성이 커질 수 있지만, 엔화 대비 원화의 상대적 가치를 안정시켜 한국 수출 기업의 가격 경쟁력 회복을 도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권에서는 일본의 재정 리스크 확대가 아시아 시장 전체에 미칠 영향도 우려하고 있다. 국가부채 비율이 세계 최고 수준인 일본에서 금리가 급등할 경우 정부 이자 부담 증가로 재정 건전성 우려가 제기되면서 아시아 시장 전체에 위험 회피 심리를 자극해 한국 금융시장에서 외국인 자금 이탈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 주목할 이슈로 꼽힌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