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성 2배'의 허상... 중국 기업의 '가짜 AI 활용'이 주는 경고
"업무량만 늘었다" 한국 직장인 76%의 비명... 리더의 '환상' 깨야 성공한다
"업무량만 늘었다" 한국 직장인 76%의 비명... 리더의 '환상' 깨야 성공한다
이미지 확대보기배런스는 최근 위니 장 인스시아드(INSEAD) 교수와 칭화대, 베이징대 연구팀의 조사를 인용해 "중국 기업의 사례는 AI 도입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영진과 직원 사이의 심각한 인식 괴리를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이 연구는 2024년부터 2025년까지 중국 내 법률, 금융, 제조 등 다양한 분야의 관리자와 직원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기대와 현실의 엇박자, '스트레치'와 '슬랙'
연구팀은 경영진의 기대와 직원의 경험 사이에 발생하는 불일치를 두 가지 형태로 정의했다. 바로 '스트레치 격차(Stretch Gap)'와 '슬랙 격차(Slack Gap)'다.
'스트레치 격차'는 리더의 기대가 현실을 앞서갈 때 발생한다. 경영진은 AI가 효율성을 극적으로 높여줄 것이라 믿지만, 실무자는 AI의 신뢰성 부족으로 인해 오히려 업무 가중을 겪는 상황이다. 한 마케팅 분석가는 "상사는 AI가 일주일 치 업무를 하루 만에 끝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수정 작업만 두 배로 늘었다"고 증언했다.
반대로 '슬랙 격차'는 리더의 기대치가 너무 낮은 경우다. 상사가 "AI는 쓸모없다"고 무시하는 동안, 실무자는 몰래 AI를 활용해 업무 효율을 높인다. 조사에 참여한 한 변호사는 "상사는 AI를 불신했지만, 나는 비밀리에 계약서 초안 작성에 활용해 몇 시간의 노동을 줄였다"고 밝혔다. 두 경우 모두 직원은 '사실대로 말할 것인가'라는 딜레마에 빠진다.
서구권 상황도 다르지 않다. 업워크 리서치 연구소가 미국, 영국 등 주요국 경영진과 직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경영진의 81%는 AI로 인해 직원에 대한 요구사항을 늘렸다고 답했다. 반면 직원 71%는 탈진을 호소했고, 65%는 생산성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계질서가 낳은 '보여주기식' 활용
연구팀이 발견한 가장 우려스러운 현상은 '보여주기식 적응'이다. 상사의 부풀려진 기대에 맞추기 위해 직원이 AI의 효과를 과장하는 행태다. 직원들은 AI가 만든 결과물을 수동으로 뜯어고치면서도 그 공을 AI에게 돌린다.
한 디자이너는 "팀장이 AI로 이번 캠페인을 끝냈다고 자랑했지만, 그 뒤에는 AI가 처리하지 못한 부분을 밤새 수습한 직원들의 노력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직원이 어려움을 숨길수록 리더는 AI의 능력을 맹신하게 되고, 기대치는 더 높아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는 결국 조직의 사기 저하로 이어진다.
반대편에는 '비밀스러운 적응'이 있다. AI를 쓴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게으르거나 능력이 부족하다고 평가받을까 두려워 숨기는 경우다. 한 주니어 변호사는 단순 인용 확인이나 템플릿 작성에 AI를 활용해 시간을 절약했지만, "고급 추론이 불가능해 AI는 우리 업무와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상사 앞에서는 입을 다물었다.
연구팀은 "중국의 뿌리 깊은 위계 질서와 권위에 대한 복종 문화가 이러한 현상을 증폭시킨다"고 분석했다. 다만 평등주의를 강조하는 미국이나 유럽, 한국 기업에서도 경쟁이 치열한 환경이라면 낙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비슷한 양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마법'이 아닌 '도구'로 바라봐야
성공적으로 AI를 도입한 조직의 공통점은 '심리적 안전감'이었다. 기술의 한계와 성과에 대해 솔직하게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 곳만이 실질적인 성과를 냈다.
한 게임 회사 직원은 AI가 디자이너를 대체할 수 있다고 믿는 관리자에게 시연을 통해 AI가 초안 작성에는 유용하지만 최종 작업에는 부적합함을 증명했다. 리더가 기대를 조정하자 업무량은 안정됐고 직원들은 자발적인 실험을 이어갔다.
위니 장 교수는 "리더는 AI 전도사나 회의론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며 "집단 학습을 통해 기대를 조정해 나가는 '센스메이커'가 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는 복잡하고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정보를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해 집단이 방향을 잡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나 조직을 뜻한다. 구체적인 실천 방안으로는 ▲거창한 목표 설정 전 리더가 직접 도구 써보기 ▲결과물뿐만 아니라 도출 과정 묻기 ▲개인적으로 AI를 잘 활용하는 직원에게 노하우 공유 요청하기 등을 제시했다.
한 직원의 고백은 눈여겨볼 만하다. "상사가 AI를 마법으로 착각하기를 멈춘 뒤에야, 우리는 비로소 AI를 유용하게 쓰기 시작했다."
AI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기술 성능보다 조직 소통 방식이 생산성을 결정짓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국내 산업계 현실도 이와 맞닿아 있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MS)와 링크드인이 공개한 '2025 업무동향지표'에 따르면, 한국 지식근로자 76%가 생성형 AI를 업무에 도입했으나, 이 중 상당수가 "AI 활용 압박 탓에 업무 복잡도와 강도가 오히려 높아졌다"고 호소했다. 이는 세계 평균을 웃도는 수치로, 준비 없는 도입이 부른 부작용이다.
전문가들은 "AI는 '요술봉'이 아닌 '협업 파트너'"라며 "경영진이 구체적인 활용 지침 없이 막연한 성과만 요구할 경우, 조직 내 'AI 피로감'만 커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제는 단순한 속도전이 아닌, 업무 과정을 근본적으로 다시 설계해야 할 때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