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억 달러 쏟아부은 싱가포르 '메가스피드', 美 제재 우회 통로 지목
절반 이상이 수출 금지된 최신형… 클라우드 통한 '꼼수 확보' 수사 착수
美 의회 "제재 구멍 막아라" 상무부 압박… 동남아 데이터센터로 전선 확대
절반 이상이 수출 금지된 최신형… 클라우드 통한 '꼼수 확보' 수사 착수
美 의회 "제재 구멍 막아라" 상무부 압박… 동남아 데이터센터로 전선 확대
이미지 확대보기블룸버그통신과 로이터통신은 23일(현지시각) 미국 상무부와 사법 당국이 싱가포르의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 '메가스피드 인터내셔널(Megaspeed International Pte.)'을 상대로 엔비디아 칩의 대중국 불법 유출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 조사는 개별 기업에 대한 감시를 넘어, 동남아시아가 미국의 첨단 기술 통제망을 뚫는 '취약점'으로 부상했다는 워싱턴 정가의 위기감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혜성처럼 등장한 큰손, 46억 달러어치 '싹쓸이'
블룸버그가 입수한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세관 데이터에 따르면, 2023년 설립된 메가스피드는 짧은 기간 내에 엔비디아 칩을 가장 많이 사들인 동남아시아 최대 구매자로 떠올랐다.
이 회사가 수입한 엔비디아 하드웨어 규모는 최소 46억 달러(약 6조8200억 원)에 이른다. 확보한 그래픽처리장치(GPU) 개수만 13만6000개가 넘는다. 주목할 점은 이 물량의 절반 이상이 엔비디아의 최신형 칩인 '블랙웰(Blackwell)'이라는 사실이다. 블랙웰은 현재 미국 당국이 중국 수출을 엄격히 금지하는 품목이다.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메가스피드의 소유 구조를 정밀 분석하는 한편, 해당 칩이 물리적으로 중국 국경을 넘었는지 추적하고 있다. 이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들은 "조사가 진행 중이며 아직 결정적인 위반 증거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클라우드 렌탈'… 합법과 편법 사이의 줄타기
메가스피드는 중국 밖 데이터센터에 고성능 컴퓨팅 서버를 구축하고, 고객에게 원격으로 연산 능력을 빌려주는 사업을 한다. 블룸버그는 중국 알리바바 그룹도 메가스피드의 고객사 중 한 곳이라고 지목했다.
현행 미국 수출 통제 규정상, 중국 기업이 해외 서버의 컴퓨팅 파워를 임대해 사용하는 행위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군사적 용도 등 특정 예외를 제외하면 허용되는 이른바 '회색지대'다. 메가스피드 측은 성명을 통해 "우리는 싱가포르 기업으로서 미국 수출 통제 규정을 포함한 모든 법규를 철저히 준수하고 있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엔비디아 역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등에 있는 메가스피드 관련 데이터센터를 수차례 불시 점검했으나 칩이 빼돌려진 증거는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엔비디아는 물리적 수출이 아닌 클라우드 기반의 하드웨어 접근 제공은 현행법상 허용된 사업 방식이라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워싱턴의 매파들 "구멍 뚫린 제재, 국가안보 위협"
그러나 워싱턴 정가의 기류는 다르다. 기술 유출을 막으려는 미 의회의 압박 수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미 공화당의 톰 코튼 상원의원은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메가스피드에 대한 공식 수사를 촉구했다. 로이터가 확인한 서한 내용에 따르면, 코튼 의원은 "만연한 칩 밀수 행위는 대통령의 권위를 훼손하고, 미국이 우위를 점한 첨단 기술에 적국이 접근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코튼 의원은 뉴욕타임스의 지난 10월 보도를 인용해 동남아시아를 경유한 엔비디아 칩이 중국 고객들에게 원격으로 제공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또한, 금지된 엔비디아 제품의 수리 수요가 급증했다는 점을 들어 중국이 이미 상당량의 제재 품목을 확보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는 수출 통제를 "국가안보의 핵심 도구"라고 규정하며 상무부에 더 강력한 집행을 요구했다.
이번 사건은 미국 정부가 직면한 딜레마를 여실히 보여준다. AI 칩 수출 통제를 강화하면서도 미국 기업들이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글로벌 클라우드 시장을 위축시키지 않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미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당국 중 어느 곳도 메가스피드나 엔비디아의 구체적인 법 위반 사실을 결론 내리지 못했다. 싱가포르 경찰과 말레이시아 당국은 자국 내법 위반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으나 뚜렷한 증거는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조사가 동남아시아 데이터센터 산업 전반에 대한 규제 강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한다. 워싱턴 일각에서는 첨단 칩의 판매 후 위치 추적(post-sale verification) 의무화 등 더욱 강력한 통제 장치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이 중국 본토를 넘어 동남아시아 등 제3국을 통한 우회로 차단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둘러싼 긴장감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