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트론, '엔비디아 효과'로 2위 등극…대응 늦은 페가트론은 6위 추락
상위 20곳 중 대만 기업만 9곳…中은 '아이폰 성수기' 힘입어 4위 방어
상위 20곳 중 대만 기업만 9곳…中은 '아이폰 성수기' 힘입어 4위 방어
이미지 확대보기생성형 인공지능(AI)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글로벌 제조 지형도를 완전히 뒤바꿨다. AI 서버 수요를 선점한 대만 기업들은 글로벌 생산 기지의 주도권을 확실히 움켜쥔 반면, 전통적인 PC·스마트폰 조립에 머무른 기업들은 순위표 아래로 밀려났다.
디지타임스(DIGITIMES)가 2025년 12월 집계한 '3분기 글로벌 EMS(전자제품 제조 서비스)·ODM 상위 20개사' 분석에 따르면, 상위 20개 기업의 총매출은 1961억 4000만 달러(약 288조 원)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2024년 1분기 1225억 달러) 대비 폭발적으로 성장한 수치다. 성장의 핵심 동력은 단연 AI였다.
대만의 독주, 中·北美 압도
이번 성적표의 핵심은 '대만의 압승'이다. 상위 20개 기업 중 폭스콘(Foxconn), 위스트론(Wistron), 퀀타(Quanta), 와이윈(Wiwynn) 등 대만 기업이 9곳이나 이름을 올렸다. 상하이 증시에 상장된 USI 역시 ASE가 대주주인 점을 감안해 대만계로 분류됐다.
대만 기업들의 시장 장악력은 수치로 증명된다. 미·중 무역전쟁이 시작된 2018년, 대만 기업 점유율은 79.4%였으나 중국 기업들의 공격적인 인수합병(M&A)으로 2024년에는 중국 비중이 21.2%까지 치고 올라왔었다. 그러나 AI 붐이 시작되면서 판세가 다시 뒤집혔다. 대만 기업들의 매출 점유율은 2025년 2분기 72.5%를 기록하며 70% 벽을 다시 넘어섰고, 3분기에도 70.9%를 유지했다.
반면 북미 기업(자빌·플렉스 등 4개사)은 AI 데이터센터 전력 시스템 수요 등으로 수혜를 입었음에도 기타 산업 부문의 부진으로 점유율이 10.4%까지 떨어졌다. 중국 기업(럭스쉐어·BYD 등 7개사)은 비수기였던 상반기에 점유율이 16%대까지 하락했다가, 성수기인 3분기에 18.7%로 소폭 반등하는 데 그쳤다.
AI가 가른 희비…위스트론 웃고 페가트론 울었다
기업별 성적표를 뜯어보면 AI 대응 속도가 곧 생존 속도였음이 드러난다. 부동의 1위 폭스콘은 3분기 매출 689억 7479만 달러(약 101조 원)를 기록, 전체 20개사 매출의 35.2%를 홀로 책임지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지각변동은 2위 싸움에서 일어났다. 오랫동안 2위 자리를 지켰던 페가트론(Pegatron)은 AI 서버 시장 진입 실기(失機)로 매출이 5.2% 역성장하며 6위로 추락했다. 그 빈자리는 위스트론이 꿰찼다. 엔비디아의 주요 AI 메인보드 공급사이자 델(Dell)의 서버 파트너인 위스트론은 매출 190억 2148만 달러(약 27조 원)를 기록, 2분기에 이어 3분기에도 2위 자리를 수성했다. CSP(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사) 랙 시스템 강자인 퀀타(165억 9116만 달러)는 3위를 기록했다.
가장 놀라운 성장세를 보인 곳은 와이윈이다. 마이크로소프트와 메타, AWS를 고객사로 둔 와이윈은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무려 195.2% 폭등했다. 2024년까지 10위권 밖이었던 이 회사는 단숨에 5위(89억 3860만 달러)로 뛰어올랐다.
中의 반격…아이폰·VR로 '성수기 효과'
중국 기업들은 AI보다는 전통적인 '성수기 효과'에 기댔다. 3분기는 스마트폰 등 소비자 가전의 최대 성수기다. 중국 럭스쉐어(Luxshare)는 애플 아이폰 17 조립 수주와 데이터센터 케이블 사업 확장에 힘입어 매출 134억 4940만 달러(약 19조 원)로 4위를 기록했다. 전 분기 대비 55.1% 성장한 수치다.
메타의 VR 헤드셋과 스마트 안경을 생산하는 고어텍(GoerTek), 애플 부품을 공급하는 렌즈 테크놀로지(Lens Technology) 역시 전 분기 대비 각각 45.1%, 31.4% 성장하며 체면치레를 했다.
결국 2025년 3분기 글로벌 제조 시장은 'AI 디바이드(격차)'가 극명하게 드러난 시기였다. 폭스콘·위스트론·와이윈 등 AI 파도에 올라탄 기업은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했지만, 페가트론·콤팔 등 흐름을 놓친 기업은 마이너스 성장의 늪에 빠졌다. AI가 단순한 기술 트렌드를 넘어, 기업의 서열을 다시 쓰는 가장 강력한 잣대가 된 셈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